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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고승 ‘용성 사상’ 담은 총서 발간 의미 있다

기자명 법보신문
  • 사설
  • 입력 2016.12.19 11:07
  • 댓글 2

조계종 대각회가 4년간의 노력 끝에 20권에 이르는 ‘백용성 대종사 총서’를 펴내고 고불식을 봉행했다. 용성 스님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한 후 철저히 분석하고, 나아가 저술에 대한 번역과 증의도 거쳤다고 하니 용성 스님이 추구했던 불교 대중화와 실천 사상을 계승 발전시키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평가할 만하다.

세납 16세 때 가야산 해인사로 출가한 용성 스님은 의성 고운사, 양주 보광사 등에서 정진하며 화두를 타파해 갔다. 1910년 지리산 칠불암 선원 조실로 추대된 후 후학들을 지도하며 고려와 조선을 거쳐 전해 내려 온 선풍을 이어갔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만해 용운 스님과 함께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 대표자로 참가해 독립운동에 나섰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재판 받는 법정에서도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또 독립운동을 할 생각’이라고 일갈했던 스님은 출옥 후 3년에 걸쳐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았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선지와 사상을 펼쳐갔다. 양산 내원사 만일선원 조실로 주석하면서 ‘화엄경’ 80권을 한글로 번역했는데 이는 불경 국역 사업의 신호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25년에는 서울 대각사에 대각교(大覺敎)를 창립해 새로운 불교운동과 국민계몽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우리 국민 모두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지혜로운 사람임을 역설하며 민족적 자부심을 고취시키는데 역점을 두었다. 용성 스님의 이러한 행보는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던 국민들에게 크나큰 희망으로 작용했다.

불교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선농일치 사상을 전파시키며 사원 경제의 자립을 도모했고, 불교잡지 간행, 일요법회, 찬불가 보급 등을 통해 대중불교의 기틀을 다졌다. 또한 스님의 계율수지 중요성을 누구보다 역설하고 나섰다. 총독부가 주지 자격 요건 중 비구계 수지 조항을 삭제하려 하자 ‘불교 교단은 원래 출가자와 재가자로 구분되며, 비구와 비구니는 대처식육(帶妻食肉)을 엄금하고, 수행에 전념하도록 되어 있다’는 내용을 담은 ‘건백서’를 총독부에 제출하며 강력하게 반대했다.

‘백용성 대종사 총서’는 이러한 용성 스님의 지나온 여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총서 발간에 이어 전산화 사업이 완료되면 많은 불자들과 연구자들이 용성 스님의 사상을 직접 볼 수 있게 된다. 한 가지 주목할 건 고승에 대한 문헌을 전산화작업까지 동원하며 이렇듯 집약적으로 출간한 예가 이전에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향후 고승대덕 스님들의 행적과 사상을 담는 총서를 발간할 때 ‘백용성 대종사 총서’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1372호 / 2016년 12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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