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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점 안 보기 [끝]

숙명의 굴레서 벗어나 스스로 삶 개척해야

 
서울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송모(34, 혜명화)씨는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힘들 때면 운세를 확인한다. 나쁘면 힘든 이유를 운세 때문이라 위안하고, 좋으면 금방 괜찮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신년운세를 점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운세는 위안 삼을 정도
100% 미래예측 불가능
전생 업보·팔자 탓보단
불자라면 기도·수행하길

평생 불자로 살았기에 점집을 방문하는 일이 종종 민망하지만 “재미삼아 보는 것이고 크게 믿지는 않으니 괜찮다”며 점집을 방문한다. 한편으로는 “어차피 미래를 본다면 조심할 것만 기억하면 된다”는 생각도 있다. 미래를 미리 안다는 것은 다가올 상황을 준비하기 위한 안전장치이자 마음가짐을 다잡는 계기라고 믿지만, 단지 마음을 위로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2017년 ‘붉은 닭의 해’ 정유년을 앞둔 연말이다. 연말연시가 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토정비결을 보거나 철학관이나 무속인을 찾아 사주를 보며 새해를 점치곤 한다.

사주(四柱)란 사람의 태어난 해[年]·달[月]·날[日]·시(時)를 간지(干支)로 계산하여 길흉화복을 점치는 법이다. 사람을 하나의 집으로 비유하고 생년·생월·생일·생시를 그 집의 네 기둥이라고 보아 붙여진 명칭인데, 각각 간지 두 글자씩 모두 여덟 자로 나타내므로 팔자라고도 한다. 사주팔자를 풀어보면 그 사람의 타고난 운명을 알 수 있다 해서 통상 운명이나 숙명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불자라면 사주풀이를 숙명론이나 운명론으로 받아들이는 폐단은 경계해야 한다는 게 스님이나 불교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전생의 업보다” “팔자는 못 속인다” 등 말들로 오해를 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 스님은 100% 예측할 수 없는 게 미래라고 확신했다. 삶에는 가변성이 있기에 정해진 운명대로만 인생이 움직인다고 볼 수 없다는 것. 스님은 30분 동안 대화하는 상대방이 담배를 3개 피웠을 경우, 어제도 담배 피웠을 것이라는 확률은 높아지지만 내일도 담배를 피울 것이란 확신은 할 수 없다고 했다. 오늘로 담배를 끊을 수도 있고, 하루 정도는 안 피울 수 있어서다.

법륜 스님은 “기계적인 필연론보다는 약간의 가변성, 불확정성을 인정하는 편이 더 현실에 가깝다”며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노력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고 결과는 내 일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했다.

인도철학의 무대에서 숙명론을 표방했던 대표적인 학파로 아지비까 혹은 사명외도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인간의 삶이 필연적인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고 봤다. 선한 행위든 악한 행위든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그러한 행위 자체가 결정된 법칙에 의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부처님은 아지비까를 비판했다.

“그대들이여, 만일 그렇다면 생명을 죽이더라도 이전에 정해진 원인에 의해서일 것이고, 도둑질을 하더라도 이전에 정해진 원인에 의해서일 것이고, 삿된 음행을 하더라도 이전에 정해진 원인에 의해서일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전에 정해진다고 진심으로 믿는 자에게는 도무지 의욕이나 열의가 있을 수 없고, 또한 ‘이것은 해야 하고 이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이와 같이 그들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진실하고 확고하게 알지 못한다.”

임승택 경북대 철학과 교수는 “불교는 숙명론과 근본적으로 다르며, 오히려 숙명의 굴레를 벗어나는 데 주력한다”며 “불교의 궁극적 목적인 해탈과 열반은 바로 그것을 벗어날 때 얻어지는 절대적인 자유의 경지”라고 강조했다.

오지 않은 미래에 매달려 집착하며 걱정하기보단 기도하며 수행하는 정진의 삶으로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스님들과 불교학자들은 말한다. 점을 보는 일은 단순한 심리적인 효과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희망적인 운세를 ‘믿는 마음’이 ‘삶을 변화시킨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팔자명리학(八字命理學)’에서 가장 근간이 되는 저작인 ‘연해자평(淵海子平)’에도 사주팔자가 맞지 않는 세 가지 사람 중 하나를 지극히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석지현 스님은 “인간의 마음은 찰나에 900번을 움직이며 1초마다 6만7500번 생멸한다”며 “이 마음을 쓰기에 따라 운명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능동적으로 살지 않고 되는대로 살고자 한다면 결국 사주가 맞아 떨어진다”고 했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1372호 / 2016년 12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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