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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설법, 불자답게 나를 찾아가는 길

설법은 결국 나를 찾아 떠나는 길

복잡다단한 관계망으로 얽힌 세속의 번뇌를 훌훌 털고 털어내고 길을 떠난 사람. 그 수행자의 삶은 일반인들의 상상 이상으로 힘들다. 수행자는 감각기관을 지키고 음식을 절제하고 태만과 타락을 물리치며 살아야 한다. 그 청정한 영혼으로 응축된 삶과 지혜를 누군가에게 그의 마음처럼 헤아려 다시 실타래처럼 풀어내는 설법의 길, 결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미국의 저명한 불교시인 알랭 베르디에는 “열반에 이르는 길은 마치 침묵을 찾아내는 과정”이라고 했다. 선종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불립문자로써 마음과 마음으로 전하는 묵계종교를 지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소통을 원한다.

화자·청자, 진리 향해 가는 도반
배우고 공감하는 아름다운 동행

뉴욕주립대 박상배 불교학 교수는 ‘태허조사 일대사인연을 말하다’이라는 책에서 “말이든 글이든 서로 소통하자는데 있음으로 말하고 글쓰기를 시작한 이상, 보다 많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특히 불교인은 불교를 공부해본 적도 없고 불교를 믿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내려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설법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의 기본원리는 인간의 5감을 활용한다. 그런데 불교는 여기에 ‘뜻’을 더해 육근을 바탕으로 한다. 5감, 즉 눈, 입, 코, 혀, 몸 이것으로 뜻을 살피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에도 한계가 많아 지구상 수많은 언어가 몸짓을 더해 온전히 소통하곤 한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염주를 손목에 차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염주는 번뇌를 없애고자 함인데 이 108번뇌의 시작 또한 육감에서 비롯된다. 기쁨과 슬픔, 과거와 현재, 미래로 가는 길이 여기서 시작되는데 어느 국가의 언어가 이 염주의 ‘뜻’을, 그 의미를 한마디로 말할 수 있겠는가.

경전은 깊고 넓은 뜻의 줄기를 이룬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하면 삼라만상은 서로 소통하며 교집합을 이룬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부처는 그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 비유법을 통해 보물찾기의 슬기와 암시를 준다. 마음 먹먹할 즈음에 소통의 문이 열린다. 이를테면 ‘어질게 살라’는 메시지를 “꽃은 바람을 거역해서 향기를 낼 수 없지만 선하고 어진 사람이 풍기는 향기는 바람을 거역하여 사방으로 번진다”는 법구경 한 문장으로, 한 편의 시로 정갈하고 명료하게 표현한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다’는 문장은 팔만대장경에서 “성공이 보이면 지치기 쉽다”고 갈무리한다. 그렇게 육감의 오묘한 순환과 진리 앞에서 우리는 전율한다.

수많은 지혜와 지식의 경지로 본성을 닦아내 깨달음에 이르렀을 때 그건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일러주는데 ‘칙수어전’은 “한 길의 담을 넘고자 하는 자는 한 길 반을 넘으려고 애써야 한다”고 일러준다. 관음종 총무원장 홍파 스님은 “바다는 어디를 찍어서 맛을 봐도 한 맛이듯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디를 찍어서 맛을 봐도 법화일미(法華一味)”라고 표현했다. 결국 설법의 길은 하나의 진리를 더불어 음미하고 깨닫고 배우는 여정이다. 더불어 기뻐하고 더불어 처음처럼 끝도 한결같이 그런 아름다운 행복을 만들고 영위하자는 것이다. 괴테는 “유능한 사람은 언제나 배우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배움은 미래를 위한 가장 큰 준비”라고 했으며, 공자는 “셋이 걸어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고 했다.

설법을 하는 자도 듣는 자도 지혜와 자비로 소통하며 가는 동행자다. 그렇게 배우고 공감하고 어깨동무하며 가는 아름다운 여정이다. 동행의 조건은 신심에 있음이 물론이다. ‘런던타임스’가 저명한 작가들에게 “이 세상에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특집에 맞는 에세이를 청탁했다. 그 중 작가 출신 언론인 체스터턴은 아주 짧은 메시지를 기술했다. “I am.” 바로 ‘나’라는 것. 저마다 이기심, 욕심, 전쟁 등을 기술 할 때 그는 “바로 나요(I am), 세상에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나라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혼자’라는 시에서 나를 이렇게 노래했다. ‘세상에는/크고 작은 길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도착지는 모두가 같다.// 말을 타고 갈 수도 있고, 차로 갈 수도 있고/ 둘이서 아니면 셋이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설법의 길은 결국 나를 찾아 떠나는 길이다. 더불어 불자답게 사는 길이다. 

박상건 동국대 겸임교수 pass386@hanmail.net
 

[1372호 / 2016년 12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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