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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선과 사대부, 그리고 미래불교 [끝]

기자명 명법 스님

문인화 출현, 사대부 문화에 선 융합되면서 이뤄진 탁월한 사례

▲ 조선시대 김명국의 노엽달마도. 중국문인화는 조선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선의 미학’이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이 연재에서 ‘선화(禪畵)’라고 불리는 작품들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많은 독자들이 왜 그랬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연재를 시작할 때 이미 밝힌 것처럼 중국화의 전통에 ‘선화’ 또는 ‘선종화’라는 분류가 없기 때문이다.

선화와 선종화라는 개념은
일본식 오리엔탈리즘 불과

문인화 현상 버리지 않고도
마음에 담긴 깊은 내면 표현

수묵 이용한 그림의 출현은
그림 형성하는 정신의 변화

문화적 취향 변화의 근원은
선과 사대부 교류의 결과물

송대 선종의 사대부 교류는
오늘날 불교에 새 방향 제시

기존 틀 부순 새로운 시작이
미래불교 새롭게 하는 동력

이 개념들은 근대 이후 출현한 개념으로, 존재하지도 않았던 예술 장르가 마치 동아시아 미술의 정수로서 미술사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처럼 인식되는 이유는 선불교를 일본 정신과 문화의 정수로 포장했던 일본식 오리엔탈리즘의 논리를 그대로 차용한 데 있다.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알려진 ‘나한도’와 ‘달마도’ 등은 중국의 전통적인 분류법에 따르면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 즉 도교나 불교의 인물들을 그린 그림으로 분류된다. 도석인물화는 도교와 불교의 종교적 인물들의 특출한 모습을 그려낸 종교화의 일종으로 장수, 기복 등 종교적 목적에서 그려졌다. 그 중에는 달마와 같이 실재했던 인물도 있지만 대부분은 나한, 신선 등 상상의 존재들을 그렸다. 도석인물화에 대한 글들에 흔히 나오는 ‘단청(丹靑)’이라는 표현이 보여주듯이 이 그림들은 채색화로, 주로 사찰이나 도관의 벽에 그려졌던 것이다.

‘나한도’ ‘선인도’ ‘한산도’ ‘포대도’‘고사도’ ‘백의관음도’ 등 오늘날 ‘선화’로 분류되는 특징을 갖는 그림들이 출현한 시기는 당나라 말기에서 송나라 중후반기로 추정된다. 북송 시기 이공린(李公麟, 1049?~1106)의 ‘나한도’, 남송 시기 양해(梁楷, ?~1210년 경)의 ‘발묵선인도(發墨仙人圖)’, 일본미술에 큰 영향을 끼친 목계(牧谿, 1225~1265)의 ‘관음원학도(觀音猿鶴圖)’ 등이 그 대표적인 그림으로 이 그림들은 ‘수묵’을 이용하여 감필법, 백묘법, 발묵법 등의 기법으로 그려졌다.

수묵뿐 아니라 감필법, 발묵법, 파묵법 등의 등장은 서예와 회화가 융합된 결과로서, 원말 사대가의 한 사람인 예찬의 “일필(逸筆)이 초초(草草)하다”라는 표현은 단순성의 취미가 형상의 단순화뿐 아니라 회화의 매체인 붓과 먹의 쓰임에조차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원대 회화에 나타난 ‘고의(古意)’ ‘사기(士氣)’ ‘군자화(君子畵)’ 등의 개념은 모두 서법과 관계가 있다. 원대에 들어와 서법이 회화의 필법으로 수용된 까닭은 문인화를 통해 원대 사대부들의 굳세고 고명한 인격을 표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문화적인 행위가 사대부의 정체성 확인의 유일한 방법이 되었던 시대적 배경이 있다.

주관성 표현으로서의 예술은 마음이 자신을 표현하는 대로 마음의 운동을 드러내기를 기대한다. 대상의 외형에 대한 정확한 모사를 추구하는 것은 마음의 활동성과 주관성을 표현하는 데 부적합한데, 왜냐하면 모방은 이미 결정된 어떤 것의 존재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가의 주관성에 대한 관심은 회화의 매체, 즉 용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서법을 회화에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의경, 즉 작가의 주관성은 작품의 내용뿐 아니라 창작 행위나 매체 자체에서도 표현될 수 있다. 그러므로 창작과 감상의 주안점이 매체로 옮아가게 된다.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주관성은 좀더 섬세한 것, 즉 작가의 인격이나 사적인 특수성이기 때문에 매체는 자기표현의 방법이자 작가와 감상자 사이의 소통의 도구가 된다. 이것은 본격적으로 그림의 목표인 진(眞)과 그 매체인 필법이 인성(人性)을 현시한다는 문제가 당시 화단에서 논의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서법의 도입은 시에서 언어라는 매체에 두었던 관심과 상응하는데, 이것은 앞서도 강조했듯이 회화의 내용뿐 아니라 표현 방식, 즉 매체의 사용에서도 주관의 반성적 수양을 추구한 송대 예술의 내면화 경향의 결과이다. 의경이 작품의 내용과 내용을 전달하는 매체에 이중적으로 표출되는 이 특수한 주관 표현의 방식 때문에 중국 문인화는 굳이 재현을 버리지 않고도 마음의 내면성을 표현할 수 있었다.

중국미술사에서 이처럼 단순하고 암시적인 표현들이 출현한 당나라 말기에서 송나라에 이르는 시기는 바로 그림들이 그려진 시기와 일치한다. 이 사실은 이 그림들이 불교나 도교가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양식이 아니라 문인사대부의 회화창작 활동과 연관된 것임을 보여주는데, 위에서 언급한 이공린은 대표적인 문인화가라는 사실을 환기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수묵을 이용한 그림의 출현은 단순히 재료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림을 형성하는 정신의 변화를 의미하며 이 변화가 나타나게 된 데에는 분명 선종의 영향이 존재한다. 하지만 새로운 문화적 취향의 출현은 문인사대부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선승들과 밀접한 왕래를 했던 소식, 황정견, 이공린 등이 이러한 변화를 주도했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국가체제와 사상, 관혼상제 의례까지 삶의 전 영역을 유교의 이념으로 재구성하려고 한 송대 신유학의 도전에 맞서 송대 선종이 취할 수 있었던 생존의 전략은 황실이나 귀족의 지원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의 주도계층이었던 사대부들과의 교제를 통해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선종은 이 변화에 한 발 앞서 일체의 종교적 형식을 부정하고 일상성에 깊이 침투하여 그 속에서 깨달음을 실현하는 새로운 종교의 전범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당시 세속적 질서의 초월적이며 내적인 근거를 확립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던 송대 지식인의 입장에서 볼 때 이미 초월적인 깨달음을 일상의 삶에 철저하게 관철시킨 선의 가르침은 그들이 찾고 있던 바로 그것이었다.

선종의 인식론은 현상인식을 폐기하지 않으면서도 무한한 마음의 경계를 제시하였다. 이에 영향을 받아 사대부의 미적 관심은 외적인 것에서 주관의 내면성으로 전환되었다. 미적 의식은 현상적인 것에 의해 촉발되지만 동시에 그것은 현상적인 것을 초월하게 하는 힘을 지닌다. 사대부들이 선에서 발견했던 것은 바로 그 현상적인 것을 초월하는 힘, 즉 세상의 욕망에서 벗어난 맑고 담담한 마음이었다. 그것은 송대 사대부가 겪을 수밖에 없었던 곤궁들을 견디며 자신을 국가적 사명을 떠맡은 공적 존재로서 정립하기 위한 모든 노력이 결집하는 지점이었다. 그 결과 새로운 질서와 문화를 건립하고자 했던 송대 사대부들 사이에서 禪이 풍미하게 되었으며 그것은 송대에 불교가 중국사회에 융합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문인산수화의 출현은 사대부문화를 기층으로 하여 선이 융합됨으로써 이루어진 결과로, 그것은 중국문화의 융합적인 정신을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시는 선승과 사대부의 교제의 중심이며 회화는 그 결과이다. 송대의 사대부들은 그들이 대면하고 있는 역사 현실의 절박한 사명에 대하여 미적 이상과 인격을 설정함으로써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였다. ‘일(逸)’이라는 격과 ‘평담’이라는 취미의 형성은 송대 사대부들이 선으로부터 얻은 깨달음과 정신적 초월의 문화적 표현이다. 송대 사대부의 정신성을 표출하는 사대부 문화의 중심에 시·서·화를 하나로 통합한 사대부들의 예술이 있다.

모든 교제가 그렇듯이 일방향이 아니라 쌍방적인 것이기 때문에 선승 역시 사대부 문화의 영향을 받아 시와 게송을 짓고 문자를 다루는 새로운 선풍이 일어났다. 최근 선종사 연구에서 이 시대의 선을 ‘문자선’이고 지칭하는데, 문자화 경향은 시뿐 아니라 회화의 제작에도 영향을 주어 선문에서도 조사들의 행적과 형상을 간단한 필세의 그림으로 표현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선승이 그린 묵화의 발생은 선종 내부에서 발생한 독자적인 발전의 결과가 아니다. 선종이 동아시아의 정신세계뿐 아니라 문학과 예술 전반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새로운 취미의 형성은 세속 사회의 요구로부터 이루어진 것으로 문인사대부가 없었다면 결코 나타나지 않았을 현상이다. 불교가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거나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이 불교의 영향이라고 보는 관점은 자칫 불교를 공허한 것으로 만들기 쉽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다는 말은 곧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역사에 대한 성찰은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준다. 동아시아의 탁월한 미적 생산물과 그것에 제시된 보편적 가치는 선종과 당송 사대부들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만약 선이 선의 영역에 머물렀다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결과이다. 종교가 자신의 영역을 넘어간다는 것은 왜곡과 타락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세상 속에서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하는 자만이 새로운 세상을 살 수 있다.

송대 선종과 사대부의 교류는 오늘날 정체상태에 빠진 불교계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준다. 미래의 불교는 불교의 틀을 깨부수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함을 동아시아 역사는 실증해보이고 있다.

명법 스님 myeongbeop@gmail.com
 

[1373호 / 2016년 1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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