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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나의 관리학-상

“무하기 때문에 무한하고 무량하며 무궁무진합니다”

▲ 거리 탁발에 나선 대만 불광산 스님들이 행진하고 있다. 대만 불광산 제공

“빈승의 관리학은 대웅전 안에, 선방과 염불당 안에, 공양간 안에, 울력 작업 가운데, 인간관계의 조화 가운데에 있습니다. 출가 수행자들은 일상에서 의기투합한 도반들과 대중을 위해 기여해야 합니다. 함께 즐거움을 느끼고 같이 고생하면서 평온하면 항상 마음에 걸림이 없기 마련입니다.”

빈승의 아버님은 외동아들인데 출생 28일 만에 할아버지를 잃었다고 합니다. 홀로 계시던 할머니조차 10세 즈음해 돌아가시니 아버지 홀로 남았습니다. 출가자 대부분이 같은 산문이나 문중에 인물들이 넘쳐나는데 저의 은사스님과 사형은 모두 일찍 입적하셨습니다. 특히나 저는 대만으로 건너왔으니 저의 출가 생활은 마치 아버지가 독자이셨던 것처럼 ‘혈혈단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연이 구족하여 불광산을 창건하게 된 이후 출가 제자들이 1300여명이 되고 입실한 재가 제자도 100여명이 있습니다. 대만의 절들은 모두 다 아주 작은데 갑자기 이렇게 총림 같은 큰 사찰이 조성되자 저에게 어떻게 관리하려고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자주 있었습니다. 빈승은 관리학을 배운 적이 없었고 관리라는 것도 잘 몰랐기에 오직 모두가 같은 뜻을 품고 추구하는 방향이 같으니 불교를 위하고 사회 대중을 위해 기여하고 봉사하면서 인과를 중시하고 공개적이고 공정 공평하며 공유해 나간다면 별 탈이 없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빈승의 한 출가 제자는 홍콩대학교 관리학과를 졸업하였는데 이미 40~50년 전 관리학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인사관리, 재무관리, 학교관리, 도서관리, 병원관리, 공장관리 등 분야가 있었는데 고학력자라는 자부심이 강한 이 제자는 오만한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돈을 관리하는 것은 돈은 말을 못하니 네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물건을 관리하는 것도 물건이 말을 못하니 네 마음대로 옮길 수 있다. 사람을 관리하는 것은 다소 어려움이 있겠지만 사람 관리가 가장 어렵다고 할 수는 없으며 가장 어려운 것은 자기의 ‘마음’을 관리하는 것으로, 너는 ‘마음’을 관리 할 수 있느냐?”고 일러주었습니다.

빈승은 어려서 공부를 할 기회가 없어 학교를 다니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학교 구경조차 못했습니다. 어느 한번은 대만대학교에서 ‘관리학’에 대해 강연을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저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총림 출가 대중에게 48가지 소임과 청규계율 등이 있는 것처럼 불교에도 물론 관리학이 있긴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것에 대해서 저는 깊게 연구한 적이 없었기에 남들에게 관리에 대해 강연할 생각을 감히 갖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교육부장관을 역임했던 장기윤(張其) 선생은 양명산에 중국문화대학교를 설립하였고 1980년 인도문화연구소 소장을 저에게 맡겼습니다. 그리고 축사에서 “중국문화대학교는 그 자체가 하나의 큰 총림으로, 우리들의 주지이신 성운 큰스님께서 돌아오신 것을 환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비록 불광산을 창건하였지만 나 스스로 감히 ‘주지’라고 여기지 않았기에 이 말을 들은 저는 마음으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주지’라 함은 총림의 48가지 소임과 청규계율에 매우 밝아야 하는데 ‘주지 삼보’라고 하기에 빈승은 여전히 조건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년전 대만대학교 부총장인 탕명철(湯明哲) 교수가 저를 찾아오겠다고 하였는데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빈승은 좀처럼 남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합니다. 탕 교수는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 대해서 정말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우리 재가자들은 주말에 이틀을 쉬고 절기에 따라 공휴일에도 쉬지만 쉬는 날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재가자들은 매월 수만 위안의 월급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면서 월급이 더 오르기를 바랍니다. 불광산의 1000명이 넘는 출가 스님들은 휴일도 없고 월급도 없는데 저녁에 야근을 하고 밤새워서 일을 하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원인으로 이런 에너지를 가질 수 있는 건가요?”

예전에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저에게 질문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질문을 받고 보니 갑자기 정말 문젯거리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당신들 재가자들은 ‘갖는(有) 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휴가도 있고 월급도 있으며 재산도 있고 가정도 있고 아내와 자녀가 있습니다. 갖고자 하는 것은 다 쓰면 없어지기 마련이고 제한이 있는 한계가 있으니 당연히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출가인은 ‘공(空)하고 무(無)한 생활’을 하기 때문에 휴일도 없고 월급도 없지만 기꺼이 원해서 행하는 마음으로 사회 대중을 위해 기여하면서 대가를 바라지 않으니 이러한 욕망이 없습니다. “‘무(無)’하기 때문에 무한하고 무량하며 무궁무진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분은 대만대학교의 유명한 교수님으로 저의 이런 대답에 어떻게 마음 속으로 반응하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불광산의 관리학을 말하려고 하니 빈승은 “위아래 대중이 구분 없이 함께 기뻐하고 함께 수고하고자 하면서 마음이 평온할 수 있다면 그 어디에 거리낄 것이 있겠는가?”라고 느껴집니다. 승속 제자들에게 “비교하려 들지 말고 따지려 들지 말라”고 하고 “사람들과의 시시비비를 마음에 두지 않으면 평온하게 지낼 수 있다”고 자주 일러주고 있습니다. 제가 수행자들을 격려하고자 쓴 ‘십수가(十修歌)’가 있는데 나중에 점차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남들과 따지지 않는 것(一修人我不計較)이 첫 번째 수행이고, 서로 비교하지 않는 것(二修彼此不比較)이 두 번째 수행이고, 매사 예의를 지키는 것(三修處事有禮貌)이 세 번째 수행이고, 사람을 보면 미소를 띠는 것(四修見人要微笑)이 네 번째 수행이고, 손해를 보더라도 개의치 않는 것(五修吃虧不要緊)이 다섯 번째 수행이고, 남에게 관대하게 대하는 것(六修待人要厚道)이 여섯 번째 수행이고, 마음속에 번뇌가 없는 것(七修心內無煩惱)이 일곱 번째 수행이고, 좋은 말을 많이 하는 것(八修口中多說好)이 여덟 번째 수행이고, 교류는 군자들과 하는 것(九修所交皆君子)이 아홉 번째 수행이고, 모두들 불도를 이루게 하는 것(十修大家成佛道)이 열 번째 수행으로 누구든 이 열 가지를 수행할 수 있다면 불국정토에서 유유자적 즐길 것(若是人人能十修 佛國淨土樂逍遙)이다.”

저는 또 “둘째 철학사상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시시비비는 입을 많이 열었기에 생기고, 번뇌는 나서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듯이 역사를 살펴보면 역대 왕조의 첫 번째 황태자들이 시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나라의 태자 양용(楊勇)이나 당나라의 이건성(李建成) 등처럼 대부분 너무 나서다가 의심을 받고 희생된 것입니다. 만약 누구나 둘째의 자리에 기꺼이 머무르고자 하고 나를 내세우지 않는 지혜가 있다면 인간관계와 모든 일에 있어서 순조로웠을 것입니다.

저는 불가에서 발심하고 인내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우리들에게 아주 유용한 것임을 느꼈습니다. 발심을 하면 힘이 생기고 발심을 하면 기꺼이 원해서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불교를 위해서 기여하고자 발심하고 사중을 위해서 일하고자 발심하며 손해를 보더라도 참고 일하는 발심을 하는 것입니다. 발심하는데 무슨 이해득실을 따질 것이 있겠습니까?

인내는 더욱 중요합니다. 출가자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이 생존을 하고 생활하려면 누구나 모든 것에 대해 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참을 수 있으면 인간관계를 알게 되고 정서적인 안정의 중요성을 알게 됩니다. 남이 하는 말 한 마디와 일 한 가지가 나와 연관이 된다면 나는 상황을 파악하고 받아들이며 책임을 지고 일을 처리하거나 해결을 하는데 있어서 참아내는 지혜와 참아내는 역량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빈승은 출가 입문하고자 하는 제자가 저에게 어떻게 출가자로 살아야 하는지, 출가자에 대한 견해가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삭발법어’를 오래 전에 썼습니다. 이 ‘삭발법어’는 단지 읽는 것으로 그만이 아니라 필히 깊이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이는 불광산 제자가 필히 실천하고 준칙으로 삼아야 하는 좌우명입니다.

“불광산은 좋은 기운 가득한 개산 이래 모든 인연과 교감하는 곳이다.(佛光山上喜氣洋 開山以來應萬方)
좋은 인연과 좋은 일이 많으니 청년들이 입문하여 불교를 빛낸다.(好因好緣多好事青年入佛教爭光)
발심하여 출가함은 가장 상서로운 일이라서 가족과 작별하고 고향을 떠났다(發心出家最吉祥 割愛辭親離故鄉)
천룡팔부 모여들어 칭송하고 찬탄하니 지혜의 삶을 추구하며 역사에 빛난다.(天龍八部齊誇讚 求證慧命萬古長)
삭발하고 승복으로 당당함이 드러나고 인욕하며 지계함을 결코 잊지 않는다.(落髮僧裝貌堂堂 忍辱持戒不可忘)
불법의 펼침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초발심의 의지를 흩트리지 않는다. (時時記住弘佛法 莫叫初心意徬徨)
출가인의 도리를 바르게 행하면서 마음을 흩트리거나 의기소침하지 않는다.(為僧之道要正常 不鬧情緒不頹唐)
부지런히 소임을 맡음은 사중을 위함이고 공경겸손하면서 좋은 말을 한다.(勤勞作務為常住 恭敬謙和出妙香)
맑은 차와 검소한 음식으로 자신을 기르며 무명옷과 이부자리인들 어떠하리.(清茶淡飯要自強 粗布衣單有何妨)
생활에서 누리고자 바라지 않으니 세속에 초연하여 진실한 세상을 본다.(生活不必求享受 超然物外見真章)
선악의 인과를 마음속에 새기고 인관관계의 시비는 잊을 수 있어야 한다.(善惡因果記心房 人我是非要能忘)
교리를 깊게 탐구하여 악업과 복덕이 명확하여 자비희사의 도리를 봉행한다.(深研義理明罪福 慈悲喜捨道自昌)
조석으로 예불독송을 빠트리지 않으며 경전독송과 절 수행으로 부처님을 모신다.(朝暮課誦莫廢荒 念經拜佛禮法王)
돈 없고 인연이 부족함은 내버려두고 오직 불법 추구만을 수행 목표로 삼는다.(無錢無緣由他去 只求佛法作慈航)
십년 이내에 해외관광을 다니지 않고 몸과 마음 안주하며 마음을 가다듬는다.(十年之內莫遊方 安住身心細思量) 
세상 총림 좋다고 하더라도 나는 한 곳에 머물면서 즐거움을 한없이 맛보노라.(任他天下叢林好 我居一處樂無疆)”

위 법어에서 빈승은 과거 전통 출가정신이 갖고 있는 의의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출가인은 본래 사중을 의지하고 마음을 잘 가다듬고 불도를 추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373호 / 2016년 1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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