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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누가 법(法)을 거스를 수 있는가

기자명 김용규

누구도 물이 흐르는 본래의 법 거스를 수는 없어

대설과 동지(冬至)를 지난 시간인데도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는 아직 찾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한반도에 삼한사온(三寒四溫)의 전형이 깨진지는 벌써 오래되었고 해마다 겨울의 뉴스는 이상기후를 한두번씩 다루는 실정이 되었습니다.

들여다보면 이 이상기후 역시 연기(緣起)의 법에서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을 것입니다. 적도의 물 온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해수면이 상승하고 북극의 빙하는 계속 무너져왔습니다. 최근에는 무서운 속도로 북극을 뒤덮었던 빙하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온도가 바뀌면 바람의 길도 바뀌는 법, 지구 북반구의 겨울을 흐르던 바람도 이제는 새로운 방향으로 바뀌는 중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최근 어떤 해의 겨울에는 관측 이후 최고의 폭설이나 한파가 찾아왔고, 다른 어떤 해에는 관측 이후 이상하리만치 가장 따뜻한 겨울을 보냈다는 뉴스가 지구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긴 시간으로 볼 때 지구가 빙하기와 간빙기를 반복해 온 것이야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지만 지금처럼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기후에는 우리 인간들의 과도한 욕망(貪)이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속도와 편리의 욕망을 계속 충족하기 위해 만든 헤아릴 수 없는 발명품들은 거의 대부분 화석연료에 의존합니다.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메커니즘 역시 지구의 온도를 높여온 중요한 원인입니다. 생산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망하고, 소비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또한 망합니다. 그래서 자본은 시장에게 계속 소비를 부추겨야 합니다. 철마다 새로운 유행을 조장하고 편리의 한계를 확장하거나 속도를 압축한 새 제품과 서비스를 끝없이 내놓으며 ‘소비하라! 소비하라!’ 부추기는 것이지요.

지난 백여년간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왔습니다. 1인당 에너지 소모량이 늘고 있는데다가 인구의 증가도 가파른 상황에서 우리가 편리를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소비를 하면할수록 북극의 빙하는 녹아내리고 지구의 기후는 점점 더 요동치는 흐름을 보여주는 연기의 법 위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과연 인류는 지구에서 종(種)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나는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시국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시국은 공동체의 선(善) 따위는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고 주로 자신과 자신 주변의 욕망(貪)을 위해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부당하게 행사하면서 정치경제사회문화 공동체라는 인간의 숲이 허물어져 쑥대밭이 되고 엉망진창이 된 상태입니다.

최고 권력층에 의해 법이 훼손되면 그 파장은 보통의 시민들이 행한 훼손보다 더더욱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세상은 급속히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지금 물의 온도가 높아지고 해수면이 상승하고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물과 바람의 길이 뒤바뀌고, 그래서 재앙적 기후변화를 목전에 두고 있는 지구의 상태와 같이 우리의 공동체가 그렇게 재앙에 가까운 혼란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자연을 깊이 들여다보면 물이 흐르는 데도 반드시 길이 있습니다. 자연에서는 물 한 줄기도 반드시 제 길로 흐르는 법입니다. 아마도 법(法)이라고 하는 한자는 물(水)과 그 물이 흘러가는(去) 모양과 그 모양을 관통하는 이치를 품은 글자일 것입니다. 물은 반드시 아래로 흐릅니다. 방울방울이 모여서 내(川)로 흘러 강(江)이 되고 바다(海)가 됩니다. 바다의 물은 달의 인력과 연기하여 제 리듬을 가진 파도를 만들고, 또한 태양과 연기하여 미세한 입자의 형태로 하늘로 오른 뒤 구름으로 뭉치고 다시 땅으로 내려와 또 흐르고 흐르는 순환의 법 위를 걷습니다. 누가 저 법(法)을 거스를 수 있을까요? 글 읽고 외고 이해하고 분석하고 유추하는 탁월한 능력으로 누구보다 인간이 만든 법의 문장들을 잘 기억하고 해석하여 미꾸라지처럼 그 문장의 틈새를 빠져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누구도 물이 흐르는 이치의 저 법(法), 본래의 법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북극에서 부는 바람도, 우리 사회의 바람도 오직 거짓과 탐욕을 멈출 때 제 바람 길을 따라 흐를 것입니다.

김용규 숲철학자 happyforest@empas.com
 

[1373호 / 2016년 1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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