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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지신(地神) [끝]

땅의 신은 마왕에게 부처님 과거 공덕 증명하는 역할로 첫 등장

▲ 보리수 아래에 길상초를 깔고 있는 석가모니와 그 자리 아래쪽 땅의 여신.

석가모니가 죽음과 욕망의 신 마라(Māra)를 만난 것은 완전한 깨달음을 얻기 직전 또는 그 직후로 그려진다. 이때의 사건에 대해 경전들은 약간의 차이를 보여준다.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에서 석가모니는 깨달음을 얻기 직전, 자신이 직접 악마를 항복시킬 마음을 먹는다. 이런 생각을 알고 마라는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석가모니가 있는 나무 밑으로 가서 그를 포위한 다음 온갖 협박과 회유를 시도한다. 그러나 석가모니가 자신의 부대를 두려워하지 않자, 마라는 석가모니에게 세속의 성공을 보장한다. 세속으로 돌아가면 전륜성왕이 될 것을 예언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석가모니가 깨우쳤다는 정각의 내용은 성취하기 어려운 것이라, 석가모니가 그것을 얻었을 것이라는 것도 믿지 않았다.

선정의 확고함 신화적으로 표현
땅은 생멸의 자연적 순환 역사와
인류 과거 삶까지 증명하고 있어

부처님의 항마촉지인 손동작은
깨달음이 이 세상 위한 것 상징
흔들림 없는 정각의 세계 표현

힌두교에선 악의 공격받기 쉬워
초월적 신이 보호·방어해줘야 할
존재로 여겨서 여성적으로 묘사

여기서 석가모니는 먼저 마라에게 특별한 말을 던진다. ‘너는 한 번의 공덕(功德)으로도 마왕이 되었는데, 전생의 무수한 공덕을 지은 나에게 깨달음의 성취가 왜 어려울 것인가’라고. 그러자 마왕이 대꾸한다. ‘내가 공덕을 지은 건 당신이 지금 증명해주었는데, 그럼 당신이 수많은 과거세에 무한한 공덕을 쌓은 것은 누가 증명하는가’

이 때 석가모니가 앉은 채로 오른 손을 땅으로 뻗어 손가락으로 땅을 짚는다. 그러면서 말한다. ‘이 땅이 내가 쌓은 공덕을 알고 증명할 것이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땅이 진동하면서 지신(地神)이 올라왔고 석가모니의 공덕을 증명하노라고 말한다. 이렇게 땅의 신이 출현해 석가모니의 과거 생에 대한 역사를 증명하면서 마라는 사라지게 된다. 불교인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항마(降魔) 전설이다. 이 때 등장한 땅의 신은 여성으로 묘사되며, 스타바라(Sthāvarā) 즉 ‘확고부동한 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신견뢰(地神堅牢)나 견뢰지신(堅牢地神)이라는 이름은 아마도 여기에서 왔을 것이다. ‘랄리타비스타라’에 나타난 이 에피소드에서 땅의 여신은 땅 표면으로 완전히 몸을 드러내지 않고 상반신만을 드러낸다. 이 경전 속의 이야기는 수많은 조각을 통해 형상화되었으며, 석가모니불상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Bhūmisparśamudrā)은 이렇게 탄생했다.

▲ 땅의 여신 세부.

땅의 여신은 인도에서 불교 이전부터 존재했던 여신이다. 이들은 프리티비(Pṛthivī)나 부(Bhū), 부데비(Bhūdevī), 부미(Bhūmi) 등으로 불린다. 잘 알다시피 고대 인도에서 인간이 사는 땅은 마치 바다에 떠있는 섬처럼 묘사되었다. 인간의 세계가 신화적 존재인 여신으로 묘사될 때, 힌두교나 불교에서는 동일하게 미약한 여성적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이 여성적인 땅은 마치 거대한 바다에 떠있는 작은 섬으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이미지는 리그베다부터 우파니샤드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잘 나타난다. 땅의 여신, 또는 지신(地神)이 여성으로서 물속으로부터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는 생각은 거의 확실히 불교 이전부터 존재했었다. 따라서 후대에 만들어진 불교나 힌두교의 세계상(世界像 Imago mundi) 속에서 인간이 사는 세계 즉 염부주(閻浮洲 Jambudvipa)를 마치 하나의 섬처럼 설정한 것은 우연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이러한 성격은 고전기 조각을 통해서도 유사하게 나타나는데, 힌두교에서 땅의 여신 프리티비(Pṛthivī)는 악마에게 납치되었다가 비슈누의 멧돼지 화신인 바라하(Vāraha)에 의해 구출되는데, 심해 밑으로부터 바라하의 손에 이끌려 섬처럼 떠오르게 된다. 이 장면은 굽타 시대부터 상당히 유행하던 종교미술의 주제이기도 했다. 이 장면에서 땅의 여신은 바라하의 어금니를 잡고 물속에서 올라오거나 또는 바라하의 팔이나 팔꿈치 위에 얹혀서 올라오게 된다.

▲ 여인으로 형상화된 땅의 여신 프리티비. 프리티비를 안고 바다 위로 올라가고 있는 멧돼지 화신 바라하의 모습. 마말라푸람 7세기경.

또한 이 주제는 전쟁에서 승리한 당시의 왕들에 의해서 사원 등에 자주 조각되었던 주제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땅의 여신은 곧 세계의 땅, 나라의 국토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국토를 지키는 왕은 마치 비슈누의 화신과 같이, 악으로부터 나라를 수호하고 건실하게 만드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이 마치 비슈누의 화신과 같은 존재임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왕권의 적극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힌두교에서 바라보는 땅의 여신과 불교의 땅의 신은 본질적으로 일단의 차이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힌두교에서 땅의 여신이나 인간의 땅은 악과 재난으로부터 공격받기 쉽고 따라서 초월적인 신에 의해 보호되고 방어해야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훨씬 여성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반면 적어도 불교에서 바라보는 땅의 신은 ‘확고부동함’의 이미지가 훨씬 분명하고 강하게 나타난다. 힌두교와 달리, 도상이나 서술 속에서 여성적 이미지가 누락되어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지점이 하나 있다. 왜 석가모니는 땅의 신을 호출했을까. 이 에피소드가 창작되었을 당시, 땅의 신은 본래 인도 불교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견뢰지신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바처럼, 선정(禪定)의 ‘확고함’을 신화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일까. 모든 확실한 것의 토대는 땅이다. 땅은 살아왔던 것들이 죽고 또다시 죽기를 반복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그 자연적인 순환의 역사를 증명하는 것처럼, 과거의 삶도 역시 땅은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일까.

이 상징적인 손동작의 의미가 각자에게 다를 수 있겠으나, 깨달음의 확고함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의 깨달음이 ‘이 세상’에 속하며, ‘이 세상’을 위한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위의 항마 전설은 땅의 신이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장면이지만 그 이외의 경전에서 땅의 여신은 항마 전설만큼 거의 주목받지 못한다. 다만 ‘화엄경(華嚴經)’ 속에서 이 항마전설 속의 땅의 여신이 다시 등장하여 선재동자(善財童子)를 만나게 된다. 구법여행 중, 선재동자는 마가다국(國) 보리도량에 이르러 땅의 신을 만나게 되는데, 이 때 이 신의 이름은 자성부동신(自性不動神)으로 소개된다. 이미 석가모니의 깨달음 장소를 상정해놓고 있으며, ‘확고함(Sthāvarā)’을 뜻하는 땅의 신 본래의 이름을 다르게 부를 뿐이다. 뿐만 아니라 ‘화엄경’의 자성부동신이 여기서 보여주는 역할은 석가모니 앞에서 했던 역할과 동일하다. 자성부동신은 선재동자가 과거생을 거치면서 그가 지은 공덕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가를 보석으로 수량화해서 보여준다. 백천억 아승지 높이로 쌓인 보석을 선재동자에게 보여주는데, 이것은 석가모니의 과거 전생동안의 공덕을 증명해 보였던 항마 전설 속의 역할과 일치하는 것이다. 곧이어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할 선재동자의 모습을 예견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화엄경’에서 다소 특이한 것은 자성부동신이라고 부르는 땅의 신 이외에 여러 땅 신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광명최승왕경(金光明最勝王經)’의 ‘견뢰지신품(堅牢地神品)’에서는 과거 부처님들의 공덕을 증명하는 역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호법신장으로서 경전을 수지독송하거나 경명(經名)을 말하는 사람과 나라를 수호하겠다는 모습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견뢰지신이 경에 제시한 주문을 외우면 소원을 성취하게 된다는 초기 잡밀의 성격도 보여준다.

▲ 항마촉지인상 좌대 아래에 조각된 아파라지타 상. 대략 11세기경. 캘커타 인도박물관.

몇몇 경전에서 지신(地神)의 모습을 설명하는 경전도 있지만, 특별히 인상적인 기술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영락을 장식하고 보병(寶甁) 등을 들고 있는 모습 등으로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경전에 제시된 지신의 모습보다는 도상의 표현이 더 불교적인 지신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듯 보인다. 항마 전설을 표현하고 있는 도상에서 불상은 대체로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데, 이 불상의 좌대 아래쪽에는 보통 패망한 마라의 부하들이 새겨지거나 또는 땅의 신이 새겨지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일 때는, 땅의 여신이 단순히 지표면에서 상반신을 드러낸 모습으로 나타나거나, 아니면 공양상의 모습으로, 또는 마라의 부대를 굴복시키는 여신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 때 이 모습들은 기단부나 좌대에 주로 조각되는데, 그 중에서 마라의 부대를 굴복시키는 땅의 여신의 모습을 아파라지타(Aparājitā, 정복되지 않는), 또는 아찰라(Acala, 흔들림 없는) 상(像)이라고 부른다.

땅의 여신이 상반신만 표현되는 경우는 주로 항마 전설을 주제로 한 초기 조각에서 많이 나타나는 반면, 아파라지타 상의 경우는 후대 인도불교 조각 속에서 더 자주 나타난다. 특히 인도 동북부의 벵골지역이나 오릿사 등지에서 두드러진다. 불상 자체에 비하여 땅의 여신이 기단부에 상당히 작게 표현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들의 모습은 힌두교에서 보여주던 땅의 여신과는 달리, 땅의 의미가 갖는 견실함과 흔들리지 않는 정각의 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심재관 상지대 교양과 외래교수 phaidrus@empas.com
 

[1373호 / 2016년 1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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