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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동인

기자명 이병두

승려신분으로 근대화 이끈 선각자

 
범어사 출신의 승려 이동인은 풍운아였다. 1880년 전후에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에서도 그런 기운이 느껴진다. 목에 염주를 걸고 오른손에는 단주를 들고 있어 승려가 확실해 보이지만 왼손에 펼쳐 들고 있는 책이 불교 경전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왼편에 보이는 가방을 보면 당시의 일반 정서와는 다른 ‘근대’의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이 사진이 일본 체류 중에 찍은 것임을 드러내준다.

범어사 출신으로 일본서 수계
조선인 창씨개명 제1호 오명
일본·세계정세 국왕에 전달
사찰을 개화 중심지로 만들어

그는 1879년부터 일본 불교 진종대곡파(眞宗大谷派) 승려 오쿠무라(奧村圓心)가 부산에 세운 포교소를 드나들면서 인연을 맺고 오쿠무라의 주선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京都)의 혼간지(本願寺)에 머물면서 일본어를 배웠으며, 1880년에는 도쿄(東京)로 거처를 옮겨 지내던 중 수신사 김홍집을 만나 친교를 맺었다.

이 해에 정식으로 일본 승려가 되고, 9월에 귀국하면서 많은 서적과 램프·석유 등을 들여왔는데 이것이 국내로 들어온 최초의 일본상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10월에 일본으로 다시 건너간 뒤 ‘아사노 도진(朝野東仁)’이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창씨 개명했는데, 이렇게 해서 그는 ‘조선인 창씨개명 제1호’라는 부끄러운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국내에 머물 때에는 김홍집의 소개로 민영익을 알게 되고 그의 주선으로 국왕을 만나 일본과 세계 각국의 형세를 알리어 국왕의 총애를 받기도 하였다. 또한 주일청국공사에게 한미 조약 체결을 알선해 달라고 요청하러 일본으로 밀파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1881년의 신사유람단 파견과 유길준·윤치호 등 유학생을 보낸 것도 이동인의 계획에 따른 것으로 확인된다.

이동인의 면모를 알려주는 기록은 그가 바람처럼 사라진 뒤 100여년이 지난 1980년 영국정부가 공개한 외교문서 ‘사토 페이퍼(Satow Paper)’에서 나타났다. 이 기록을 남긴 어니스트 사토(Earnest Satow)는 이동인이 교토에서 일본 승려로 활동할 무렵 영국 공사관에 근무하던 외교관이었다. 이동인은 1880년 5월 어니스트 사토와 처음 만났으며, 그 뒤 그에게 조선어를 가르쳤다. 한편 사토로부터 영국 외교관의 관점에서 바라 본 세계정세를 익혔던 것이다.

이동인이 당시 개화파 지식인들에게 끼친 영향은 서재필의 회고록에서도 확인된다.

“그(이동인)가 가져온 서적이 많았는데 역사서도 있고, 지리서도 있고, 물리서와 화학서 같은 것도 있었으며, (…) 이렇게 해서 책을 완독한 바, 세계의 대세를 거의 알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나라도 타국과 같이 민중의 권리를 수립해야겠다는 생각이 솟아났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개혁파가 되게 한 근본이었다. 바꿔 말하면 이동인이라는 승려가 우리를 이끌어 주었고, 우리는 그러한 책을 읽어 그 사상을 몸에 익혔으니 봉원사가 우리나라 개화파의 온상인 것이다.”

서재필과 영국 외교관 어니스트 사토의 기록을 통해 이동인이 당시 조선에서 가장 앞서가는 인물이었으며 그 덕분으로 당시 사찰이 개화 사조를 꽃피우는 중심이었던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에게 ‘친일승려’라는 오명(汚名)을 씌우는 이들이 많지만, 일본식 이름을 썼던 일 말고는 그에게서 특별한 친일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어쨌든 그가 승려 신분으로 한국의 근대를 개척한 선각자였음이 분명한데, 그 앞에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왠지 어색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374호 / 2017년 1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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