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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재를 시작하며

사회변화에 상응한 불교 변화과정 추적으로 역사적 실체에 접근

▲ 최병헌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번 연재를 통해 동아시아 불교사 맥락에서 한국불교의 위치와 역할을 추구함으로써 한국불교의 이해가 좀 더 객관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한국불교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석굴암 본존불.

나는 50여년 동안 한국불교사를 공부해오면서 다른 학자나 학계의 평가를 크게 의식해본 적이 없다. 그러한 이유는 결코 자만 때문이 아니며, 우선 자신도 만족시킬 만한 업적을 내놓지 못했다는 자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저서로 묶어 출간할 것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일부의 원고를 이미 출판사에 넘긴 것도 있지만 지금까지 출간을 보류하고 있다. 더욱 1970년대부터 학계와 출판사들로부터 ‘한국불교사개설’의 집필을 권유받아 왔지만 아직까지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저술의 출간을 망설인 것은 기본적으로 능력의 부족 때문이지만, 나로서는 자신을 속일 수 없다는, ‘솔직하려는’ 심정 때문이었다. 전문학자나 교수로서보다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수 있는 정직한 학생이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불교사학 연구는 지식 축적 아닌
안목 넓히고 통찰력 기르는 과정
한계 극복하는 변화 과정이기도

고대사연구 일환 불교사 전공
불교 모르고는 고대 이해 불가
‘사산비명’ 해석으로 학계 반향

‘한국불교통사’ 이후 100년 동안
한국불교사 개설서 없는 아쉬움
‘한국역사와 불교’연재 계기돼
고대·고려·조선·근대·현대
각 시대에 따른 불교 변화 추구

50여년 동안의 연구과정을 돌이켜 볼 때 모르는 점을 찾아가는 작업의 연속이었을 뿐이지 않았나 싶다. 하나를 알게 되면 새로 모르는 것이 2~3개, 또는 4~5개씩 발견되었으며, 결국 모르는 것만을 축적하는 과정이었다. 긴 터널 속에서 깜깜한 어둠을 헤매는 과정의 연속 같았다. 그런데 이순의 나이를 넘기고 정년퇴직할 무렵에야 비로소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와 전체적인 그림의 빛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나로서는 학문, 특히 불교사학의 연구과정은 결코 지식의 축적과정이 아니고, 역사를 인식하는 나 자신의 변화과정, 즉 안목을 넓히고 통찰력을 기르는 과정이며, 나아가 나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변화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한국불교사 전공은 고대사 연구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는데, 고대문화 건설의 주역을 불교가 담당하였기 때문에 불교를 모르고서는 고대문화의 이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그리고 고대불교사 문제 가운데서 최초의 연구주제로 신라말기의 선종사(禪宗史)를 선택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 역사학계에서 식민지사학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과 극복이 연구의 중심과제로 떠오른 것은 4.19혁명을 겪은 이후인 1960년대부터였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학풍의 일환으로 한국사의 시대구분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이때 사회변화의 시점으로 특히 주목을 받은 것이 고대에서 중세로의 변화와 근대사의 기점이라는 두 가지 문제였다. 그 가운데 고대에서 중세로의 전환 시점으로 신라말~고려초가 제기되어 역사학계의 폭넓은 호응을 받아 이후 상당 기간 정설로 인정되어 왔다. 당시 나는 대학원에서 석사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나말여초의 사회전환에 상응하는 불교계의 변화로서 선종구산의 성립 문제를 논문의 주제로 선정하게 된 것은 학계의 분위기로 보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주요 자료로서 최치원의 ‘사산비명(四山碑銘)’의 해석을 시도하게 되었는데, 마침 이러한 작업이 시의에 부합되어 학계의 과분한 주목을 받게 됨으로써 비교적 순탄하게 학문의 길로 들어서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역사학 분야에서의 불교사 연구와 ‘사산비명’의 분석이 이 분야에서 최초의 본격적 연구의 출발이었다는 평가 때문이었다.

1972년대 초 ‘신라하대 선종구산의 성립-최치원의 사산비명을 중심으로’(‘한국사연구’ 7집)를 발표한 이래 5~6편의 논문을 연이어 발표하였는데, 40여년이 지난 오늘날 돌이켜보면 만용에 가까운, 극히 천박한 이해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자료해석의 오류와 불교이해의 부족이라는 근본적 한계를 가진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의 진골귀족에서 지방호족으로의 지배세력 교체라는 사회변화에 상응하는 화엄종 중심의 교학불교에서 실천불교인 선종으로의 교체라는 불교변화의 기본적인 이해틀은 뒤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980년대 이후 나말여초의 선종사 문제는 불교학계보다는 역사학계에서의 연구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져 오늘날까지 이에 관한 논문과 저서는 상당한 분량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후대로 내려가면서 미시적인 접근방법이 대세를 이루게 되어 사회적 전환에 상응하는 불교의 변화라는 본래의 거시적인 문제의식은 퇴색되고, 평면적이고 지엽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로 흘러가는 분위기를 이룸으로써 나말여초 200여년간의 불교계의 변화과정과 역사적 의의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자료의 단편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으로 인해 구체적인 사실에 대한 이해 자체도 왜곡된 결과물들만이 양산되고 있다. 신라왕실과 지방호족, 화엄종과 선종의 관계는 200여년의 장시간에 걸친 사회적인 전환기에 커다란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시대적인 전환과정을 전진적으로 파악하려는 연구자세와 인식방법의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되는 문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사회적인 전환과 사상적인 변화의 시기에 있어서는 이전 시기의 낡은 잔재들보다 다음 시대의 새로운 요소들의 성장과정을 중요시하는 입장이 요구된다는 점을 유의할 것이다. 지난 40여년간 나 개인으로서는 신라말 고려초의 선종사에 대한 연구를 계속 추구해온 결과 이제 비로소 전체적인 이해체계를 설정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되어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종합 정리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다른 한편 신라말기의 선종사 연구로 시작한 나의 한국불교사 이해는 그 이전의 고대불교사와 그 이후의 고려불교사의 연구로 확대되어 1970~1980년대에는 고대국가의 발전과정과 불교의 선구적 역할, 고려 지배세력의 변천과정과 불교의 변화라는 문제를 추구하여 왔다. 그리고 1990~2000년대에는 조선불교사와 근대불교사의 이해로 확대하여 유교국가체제하의 불교의 위상과 역할, 일본제국주의 침략과 식민지불교라는 문제를 추구하여 온 결과 이제 각 시대 불교사의 이해체계와 함께 한국불교사 전체의 개략적인 줄거리는 마련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아가 현대불교의 현황과 역사적 과제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데, 서양 문명에 기반을 둔 근대의 물질적·정신적 변화를 겪으면서도 한국인의 심성과 가치관의 기저에는 불교적 사유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불교는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갈등의 해소, 민족의 화해와 통일,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나는 현재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종합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하여 4편의 저술로 출판을 준비하고 있다. 그에 앞서 법보신문에 ‘한국의 역사와 불교’라는 주제로 한국불교사를 개설하는 작업을 서둘러 추진하게 된 계기는 50여년 동안의 연구와 강의를 통한 내용의 반복 검토를 통하여 나 나름대로의 이해체계를 설정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되었으며, 또한 이능화의 ‘한국불교통사’ 이후 100년 동안 한국불교사 전체의 일관된 이해체계를 수립한 개설서라고 할 수 있는 성과를 다시 내놓지 못하고 있는 한국 불교사학계의 현실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에 발표한 ‘한국불교사의 새로운 이해’(‘한국불교사연구입문’ 상권 총론부)는 한국불교사 전체의 일관된 이해체계를 모색하는 작업과정에서 우선 고민한 내용을 정리해 본 논문으로 연구자 자신에 대한 각서의 성격을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먼저 ‘근대 한국불교사학의 전통과 불교사 인식’의 장절에서 100여년 동안 근대불교사학의 연구성과를 한국학계와 일본학계로 나누어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결론으로 오늘날 불교학계와 역사학계의 연구경향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시정을 촉구하였다. 다음 ‘한국불교사의 체계적 인식과 이해방법론’의 장절에서 한국불교사 연구경향을 반성하고 새로운 이해방법을 모색한 것인데, 특히 회통불교와 호국불교의 개념을 재검토하고 호교적이며, 민족주의적인 자기중심적인 이해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아시아 불교사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한국불교사의 이해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의 역사와 불교’의 장절에서 한국불교사의 전시기를 고대·고려·조선·근대·현대 등 5시기로 구분하여 일관된 이해체계를 설정하여 본 것이다.

한국불교사의 이해체계 설정에서 특히 유의한 것은 사회변화에 상응하는 불교의 변화과정의 추구, 그리고 동아시아 불교권에서 한국불교의 위상과 역할의 이해라는 두 가지 측면이다. 구체적으로는 본고의 서술과정에서 고대불교·고려불교·조선불교·근대불교·현대불교로 시대구분을 하였으며, 각 시대 안에서도 시기에 따른 변화과정을 추구하였다. 먼저 고대불교에서는 고대국가의 발전과정, 삼국통일과 사회통합, 고대적 지배체제의 해체과정 등 3기로 구분하여 불교의 변화 내용을 추구하였다. 다음 고려불교에서는 지배체제의 정비와 지배세력의 변천과정을 5기로 나누어 그에 상응한 불교의 변화 내용을 추구하였다. 그 다음 조선불교에서는 유불교체의 역사적 의의, 조선왕조의 억불시책, 산간불교의 위상과 역할 등 3개 주제로 나누어 불교의 변화내용을 추구하였다. 이어 근대불교에서는 1910년을 전후로 하여 이전의 일제침략과 일본불교의 침투과정, 이후의 식민지통치와 식민지불교의 성립 등 2시기로 구분하여 불교의 변화내용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끝으로 현대불교에서는 1962년 통합종단의 성립을 전후로 하여 이전 시기의 이른바 불교정화운동의 의의와 한계, 이후 시기의 불교계 갈등과 역사적 과제를 지적하였다.

다른 한편 동아시아 불교사의 맥락에서 한국불교의 위치와 역할을 추구함으로써 한국불교의 이해가 좀 더 객관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그 결과 일본 불교학계의 이른바 ‘삼국불교전통사관(三國佛敎傳通史觀)’의 오류와 그에 기반을 둔 식민지불교사관의 폐단을 비판하였다. 반면에 한국 불교학계의 ‘호국불교(護國佛敎)’ ‘회통불교(會通佛敎)’라는 역사적 성격론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고, 무속적 불교의 의미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역사적 실체에 좀 더 가깝게 접근하게 될 것이 기대된다.

최병헌 서울대 명예교수 shilrim9@snu.ac.kr
 

[1374호 / 2017년 1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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