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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마저 버리는 한해 됩시다

법보신문 대표 신년사

정유(丁酉)년 밝은 해가 솟았습니다. 새해가 되면 많은 것들이 달라집니다. 진득하게 발목을 붙들었던 묵은해의 뒤끝은 새해가 밝음과 동시에 비로소 회색 빛 기억 속 창고에 깊이 갈무리됩니다. 대신 마음 가득 미래를 향한 희망의 발걸음과 신선한 계획들로 채우게 됩니다. 시간은 부처님의 말씀처럼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입니다. 그럼에도 끊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끊어 애써 새해를 만드는 것은 불자들이 초발심(初發心)을 내고 불문(佛門)에 들듯이 매년 새롭게 발심하고 계획함으로써 중생들이 갖고 있는 원초적인 게으름과 나태함을 극복하기 위한 삶의 지혜일 것입니다.

숱한 아픔으로 점철된 지난해
무능한 위정자·국정농단 상처
정유년 새해는 촛불 든 닭의 해
어둠도 슬기롭게 극복하기를

지난해를 뒤적여보면 우리에겐 많은 아픔들이 있었습니다. 국민들을 개돼지 취급하는 위정자들로 인해 상처받고 국정농단 세력에 분노했습니다. 무엇보다 무능과 거짓말로 일관한 대통령의 한심함이 참담한 한해였습니다. 결국 1000만명이 넘는 국민들이 손과 손에 촛불을 밝혀 대통령을 탄핵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난 한해는 피와 땀으로 쌓아올린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못난 대통령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품격이 세계의 웃음거리로 전락한 가슴 아픈 한 해였습니다. 그래서 유독 한숨과 슬픔이 교차했습니다. 묵은해의 고단함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국정농단에 관여했던 범죄자들에 대한 조사와 재판이 진행 중이고 이 모든 사단의 최종책임자인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이런 결과를 가져 온 우리의 무지(無智)가 부끄럽고 모든 것은 인(因)과 연(然)에 따라 생긴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새삼 사무치는 새해입니다.

그럼에도 올해가 정유(丁酉)년이라는 점에서 위안을 얻습니다. 정유년은 불을 뜻하는 정(丁)과 닭을 뜻하는 유(酉)가 합쳐진 해입니다. 닭은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되살아나는 여명(黎明)을 가장 먼저 알리는 동물입니다. 무명(無明)을 여의고 밝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불교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정(丁)은 촛불을 상징하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따라서 촛불을 들고 있는 닭이라는 의미의 정유년은 우리 앞에 놓인 어둠과도 같은 현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부처님의 희망찬 수기로 읽힙니다.

올해는 불교계 안팎으로 많은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대통령 선거가 조기에 시작될 것이고 불교계 또한 조계종 수장을 뽑는 총무원장 선거가 있는 해입니다. 각 교구본사에도 크고 작은 선거가 있습니다. 그래서 냉철하면서도 밝은 안목과 지혜가 어느 해보다 필요한 한해입니다.

중국 향엄 지엄 선사의 말씀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지난해 가난은 가난이 아니었고(去年貧未是貧), 올해 가난이 진짜로 가난일세(今年貧眞是貧). 지난해에는 송곳 꽂을 땅도 없더니만(去年無卓錐之地), 올해는 송곳마저 없다네(今年貧錐也無).”

올해 우리는 정말로 가난해져야 합니다. 티끌만한 이득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가지고 있는 송곳마저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지난해와 같은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습니다. 지역과 학연, 감언이설과 작은 이익으로 눈을 가리는 모든 것들을 지혜로써 가려내야합니다. 오로지 정견(正見)과 정사유(正思惟)로써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맑은 생각과 기운들이 하나로 모였을 때 새벽을 여는 닭의 외침을 따라 날마다 좋은 날이 또한 우리 앞에 열리게 될 것입니다.

김형규 대표 kimh@beopbo.com

[1374호 / 2017년 1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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