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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에게 길을 묻다] 1. 왜 원효인가

  • 새해특집
  • 입력 2017.01.03 18:16
  • 수정 2017.01.10 14:28
  • 댓글 2

교학을 삶에 접목시켜 진정한 ‘나’로 살아갔던 성자

▲ 한형조 교수는 “원효는 난해한 불교의 철벽을 뚫고 핵심을 장악하며 의문의 화살들을 헤쳐 나갔다”고 평가했다. 사진은 분황사 소장 원효대사 진영. 1956년 박봉수 화백이 그렸다.

인간은 진실을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이야기는 철학만큼 심오하다. 그래서 간화(看話), 즉 에피소드를 읽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신화학자 죠셉 캠벨은 할머니 무릎에서 듣는 이야기와, 복잡 정교한 철학, 황당해 보이는 신화가 기실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증언한다.

한국불교가 나가야할 길은
선사처럼 경전 외면하거나
학자처럼 박제화하지 않고
불교지식 인간화 주력해야

원효는 내외전 모두에 정통
어떤 틀에도 얽매이지 않아
생명이 이끄는 대로 사는 게
지혜 완성하는 길임을 역설

1. 똥과 물고기
“원효는 혜공에게 자주 불경의 뜻을 물었다. 둘이 시내를 헤집으며,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먹고 돌 위에 똥을 누었다. 혜공이 놀렸다. ‘여시오어!’ 그래서 이 절이 오어사(吾魚寺)가 되었다.”

여기 “여시오어(汝屎吾魚)”가 무슨 말일까. 1) “당신이 눈 똥은 내가 잡은 물고기야!” 이건 뻔하게 상식적이다. 2) “너는 똥을 누고, 나는 물고기를 눈다”가 맞을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마, 너는 똥이고, 나는 물고기다!”로 해석할 수도 있다.

여기 똥은 죽은 물건을 가리킨다. 정신분석학과 해몽에서 같은 색깔인 황금을 상징한다. 마이다스의 손이 일러주듯, 황금은 먹을 수 없다. 죽은 것을 숭배하고, 소유에 집착하느라, 우리는 정작 ‘사는 법’을 잃어버렸다. 자갈치 노량진의 펄펄 뛰는 생선처럼 활발발(活潑潑), ‘뛰놀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첫 애인을 만나듯, 가슴 뛰는 동계로 삶의 기쁨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건 모두의 소망이 아닐까?

2. 왕비의 머리에 난 종기
일체개고(一切皆苦), 삶은 힘들고 혼란스럽다. 상처는 깊고, 생존과 권태는 여전히 내 앞을 버티고 서 있다. 삶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온전한 정신을 갖추고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어느날, 왕비가 병들었다(王之夫人腦癰腫).” 옹종은 혈류가 막혀서 생긴 병(夫山脈壅河, 猶人之有癰腫, 血脈不流也. ‘論衡’)이니, ‘뇌(腦)의 고통(嬰) 종양(癰腫)’은 아마도 화병이나 극심한 공포증, 혹은 무기력이나 우울증일 수도 있다.

굿을 하고, 치성을 해도 소용이 없고, 의사들도 손을 들었다(醫工絶驗, 王及王子臣屬禱請山川靈祠, 無所不至). 백약이 무효인 이 병을 ‘금강삼매경’이라는 책이, 그리고 원효의 강의가 치유했다는 것이다. 책의 순서를 바로잡은 사람은 대안(大安)이다. 아, 대안. 마음의 평화는 다들 간절히 원하는 꿈 아닌가. 절대자의 은총도 미심쩍고, 정신과의사와의 상담도 시들하다면, 그렇다면 여기 인문의 자기 치유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자.

3. 파도치는 동굴
상처는 어디서 오는가. 낙산사 홍련암, 마루에 낸 사각형 유리를 들여다보면 ‘삼국유사’의 기록 그대로, “동굴에 파도가 쉬지 않고 들이치는 것”을 볼 수 있다.

파도는 외부적 공격이고, 동굴은 이기적 자아를 가리킨다. 종족의 습속이 가치를 결정하고, 이웃의 눈이 우리의 행동을 지시한다. 지금처럼 권력과 매스컴이 우리를 조종한 시대가 있을까. 동굴은 내 자아가 갇힌 세상이다. 메아 쿨파, 그래서 불도는 참회(懺悔)로 시작한다.  플라톤의 비유처럼, 쇠사슬에 묶인 나는 동굴 밖의 환한 세상을 보지 못한다. 오직 안쪽 벽에 비친 내 그림자만 볼 수 있다. 파도가 멈추고, 동굴을 나서면, 너는 수정(水精)의 투명한 눈으로, 언제나(如意), 관음의 진신과 대면할 것이다.

4. 무덤 속 해골물
“어젯밤은 흙굴인줄 알고 편안했는데, 오늘 보니 무덤 속이라 오싹하네. 그렇구나. 마음의 격동으로 사물이 비로소 존재하고, 마음이 사라지매 흙굴과 무덤이 똑같구나.”

현장과 마르코 폴로가 들려주는 얘기가 있다. 낙타 등에서 단조롭게 흔들리거나 피곤에 졸면, 문득 대열에서 낙오된 자신을 발견한다. 완전한 적막 속에서, 그는 “여기야”라는 동료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를 따라가다가, 부지기수, 사막의 해골로 묻혀 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만해의 탄식처럼, ‘나의 그림자’일 뿐이고, 우리는 대롱 속에 갇혀 있다. 그것을 화들짝 이해하는 것이 ‘깨달음’이다.

아이에게, 성적만이 아니라, 취미와 교제를 물어보고, 어디에 가슴이 뛰는지 알아보라. 문득 남편의 어깨 위에 묻은 비듬이 보이고, 아내의 설거지 하는 손이 새삼 애처롭다면, 그 작은 깨달음 하나가 세상을 바꾼다.

관자재보살은 말한다. “그렇게, 색수상행식(五蘊, five heaps)이 모두 공(空), 즉 나의 그림자임을 깨닫고, 일체의 고통과 재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5. 창 한 자루 꼬나들고
원효는 난해한 불교의 철벽을 뚫고 핵심을 장악하며, 의문의 화살들을 헤쳐 나갔다. “의미의 성채를 용감하게 쳐나가고, 글의 진지를 무사처럼 종횡했다(勇擊義圍, 雄橫文陣).” 그 당찬 기세 앞에 누구도 감히 ‘대적할’ 자가 없었다고 한다.

7세기 동아시아에 불교 3걸이 있었다. 인도 원전을 찾아 나선 현장, 아예 중국의 불교를 창조한 혜능, 그 사이에, 한역 교학을 자신의 삶에 귀환시킨 원효가 있다. ‘송고승전’은 이렇게 찬탄했다.

“경전의 의미에 정통하고, 그것을 삶에 최고도로 접목시켰다(蓋三學之淹通. 彼土謂爲萬人之敵, 精義入神爲若此也).”

나는 한국불교의 갈 길이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선사처럼 경전을 버리지 않고, 학자처럼 그것을 박제화하지도 않는 곳, 팔만 불교의 지식을 인간화하는 곳에, 미래 불교의 희망이 있다.

6. 스승도, 노는 곳도 정처 없이
원효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였다. 그는 특정 문하에 적을 두지 않았고(隨師稟業, 遊處無恒), 읽는 책도 가리지 않았다. “불교뿐만 아니라 참서(讖書)와 외서(外書)까지 보았다”고 한다.

그렇다. 어디 불교 안에만 지혜가 있겠는가. 불교는 권위가 아니고 가이드이다. 그 지식은 계시가 아닌 ‘발견’이기에, 동서양의 정신적 전통과 기초를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네 삶의 주변은 온통 불교적 코드로 충만하다. “뜻을 이해하면, 거리의 잡담이 다 진리의 바퀴를 굴리고 있다(得其志也, 街中閑談常轉法輪-경허).” 불교를 누가 종교, 문중이나 학파로 가르는가. 에릭 프롬은 말한다. “동서양의 지적 종교적 거인들은 기본적으로 같은 원리를 가르쳤다. 개념들은 때로 서로 충돌하는 듯하지만, 그것은 단어일 뿐, 그들이 터치한 경험이 아니다.”

7. 고삐 풀린 야생마
원효는 불교에 갇히지 않았다. 도무지 ‘규율이 없는(都無定檢)’, ‘제멋대로(不羈)’였다. 그는 불온하고 위험했다. 왕따는 당연지사.

“마음대로 떠들고,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잡배들과 술집과 연희에 드나들며, 칼이나 쇠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저술을 하고 화엄의 이치를 강의하다가, 절간에서 거문고를 땡깡거리고 있는 사람. 오늘은 마을 여관방에서 죽치는가 싶더니, 내일은 깊은 산속에서 좌선에 들어있다.”

사람들의 위선을 향해 거침없이 독설을 퍼붓고(發言狂悖), 벌거벗고 시냇가에서 물고기를 잡고, 아무데서나 방분(放糞)을 한 사람…. “자신의 행동에 스스럼이 없었던(示跡乖疎)” 이 야생의 자유를 이해하고, 본받을 작가전장(作家戰將)이 있을까? 불교 최후의 보루인 금욕의 계를 깨고, 요석궁의 공주와 동침하여, 자식까지 낳을 간담이 있을까.

8. 노래하고 춤추는 성자
불교는 자신을 도그마로 경배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원효는 아들 설총에게도 그렇게 가르쳤다. “비법(非法)은 물론이고, 법(法)조차 행하지 마라.” 금가루는 눈에 해롭다. 그가 노래한 대로, 일체무애(一切無碍), 불교조차 넘어서야 일도출생사(一道出生死), 진정 나로 살아갈 수 있다.

그 소식이 ‘금강삼매경’에 담겨 있다. “재가(在家)와 출가(出家)에 고착(住)될 필요 없다. 승복도 걸치지 않고, 엄격한 계율도 즈려밟고, 오직 자신의 마음에 의지해 나아간다.” 그는 무위(無爲), 오직 자신의 생명이 이끄는 바를 따라, 살았다. 갓 잡은 물고기처럼, 활발발, 펄떡이며 살아있는 삶을 살기. 그것이 부처의 지혜를 완성하는 길이다. (菩薩如是之人, 不在住二相. 雖不出家, 不住在家故. 雖無法服, 不具持波羅提木叉戒, 不入布薩, 能以自心, 無爲自恣而獲聖果, 不住二乘, 入菩薩道, 後當滿地, 成佛菩提. ‘金剛三昧經論’)

▲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학부 교수
“그는 큰 박을 꿰 차고, 천촌만락을 돌며 노래하고 춤추며 다녔다. 그 바람에 천한 백성들도 불교를 알고, 덕화를 입었다.” 의미를 지우고, 놀이에 충만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의 삶을 어디까지 배울 수 있을까. 그동안은 두렵거나 혹은 용기가 없어서 신화와 금기 속에 가두어 두었다. 그가 태어난 지 1400년이 되는 해, 이번에는 진정 그를 배울 사람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까?

idion21@naver.com


 

[1374호 / 2017년 1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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