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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음의 동산에 들어가다

수행자들에게 무한 자유 선사한 위대한 경전

‘금강경’은 수많은 동아시아 수행자들에게 무한한 자유를 선사한 위대한 경전이다.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고정관념으로부터의 큰 해탈을 유도한다. ‘금강경’의 세계로 들어서는 순간, 하늘과 땅이, 위와 아래가, 너와 내가, 중생과 부처가, 번뇌와 보리가 뒤바뀐다.

‘일시불재기수급고독원’에서
‘일시’는 모든사건 일회성 뜻함
고정불변의 주체가 없음으로
일체의 법과 행이 모두 일회적

‘금강경’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우러르면 눈물부터 흐르는 스승의 말씀을 암송자의 좁은 소견으로 행여 더럽힐세라, 기억을 더듬어 조심조심 암송하는 마음이 여시아문 “나는 이렇게 들었다”이다. 이 말을 마음으로 들을 때마다, 귀로 모신 금구설법을 행여 잊을세라 아침저녁으로 암송하고 반추하던 성문제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미래의 모든 영광이 모습을 드러내기 오래전에 오로지 자기 자신과 진리에 의지해 스승을 따르던 수행자들의 모습이 눈에 가득 찬다.

그날도 기수급고독원에 머물던 스승과 1250인의 제자들은, 정오 바로 전에 하루 한 번의 허기가 찾아오자, 한 줄로 서서 적정처를 떠나 마을로 밥을 빌러나갔다.

‘일시불재기수급고독원’에서 ‘일시’는 모든 사건의 일회성을 나타낸다. 연기법에 의하면 모든 현상은 여러 직간접 인연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 현상은 기본적으로 무작위이다. 불교는 결정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의 의지에 의한 마음의 변화와 그로 인한 행의 변화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행을 보면 자신의 내면의 상태를 미루어 알 수 있다. 인간의 정신활동은 9할 이상이 무의식의 활동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조차 자기의 내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가끔 자기 행동에 대해 ‘내가 왜 이런 짓을 했을까?’ 하며 스스로 놀라는 이유이다. 마음보다 손발이 먼저 나간다. 통상 마음이 먼저 움직이지만 그래서 종교는 마음을 중시하지만 이때 마음은 무의식적으로 움직인다. 그게 우리 의식에 나타날 때는 이미 결정이 내려진 후이다.(유명한 벤저민 리벳의 실험에 의하면, fMRI를 통해서 뇌를 관찰함으로써, 피실험자가 무얼 결정할지 미리 알 수 있다. 길게는 수초 전에도 가능하다.) 의식은, 영화를 보듯, 수동적으로 볼 뿐이다. 그래서 평소수행이 중요하다. 순간의 결정은 그 순간에 하는 게 아니라 평소에 하는 것이다. 검술달인의 동작은 평소훈련의 결과이다. 싸움터에서의 동작은 의식적 결정의 산물이 아니라 즉각적이고 자동적이다.

매일매일 자기 몸과 마음의 움직임을 성찰함으로써 무의식을 단련하는 것이다. 그러면 미래에 그 효과가 나타난다. 즉, 미래의 의사결정은 미리 지금 하고, 현재의 의사결정은 이미 과거에 한 것이다.

공자의 말에 “기욕립이립인 기욕달이달인(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이 있다. “자기가 (어느 곳에) 서고 싶으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거기에) 서게 하다. 자기가 (어느 곳에) 도달하고 싶으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거기에) 도달하게 하다”는 뜻이다. 이 말을 사람의 내면에 적용하면, 자기는 의식이요, 다른 사람은 무의식이다. 의식이 뜻을 이루려면 무의식을 움직여야 한다. 인간은 과거의 총합이고, 과거는 무의식이다. 과거는, 즉 정체성은 유식학 용어로는 알라야식이고, 뇌과학 용어로는 커넥톰(connectome)이다. 뇌신경망은 1000억 개 뇌신경세포들과 (그들 사이의 정보유통 회로인) 1000조 개 수상돌기·축색돌기의 총합이다. 이것들은 우리가 뇌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끝없이 증감하며 재구성하며 변화한다. 그래서 무아(無我)이다.

‘일시’는 일회적 사건을 나타낸다. 만물과 인간의 배후에 고정불변하는 불생불멸하는 주체가 없으므로 일체 법과 행은 일회적이다. 그래서 ‘일시’이다. 부처님의 현존은 매순간 유일한 사건이다. 그래서 일시이다. 되풀이되는 지겨운 사건이 아니라 설렘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사건이다. 마음이 깨어날수록 사건은 일회성이 강화된다.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375호 / 2017년 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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