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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볍게 떠나기

기자명 재마 스님

우리 존재는 나고 죽는 외적 환경과 무관

‘존재여행’이라는 제목은 우리가 지구별로 짧은 시간 잠깐 다니러 왔기 때문이며, 우리의 존재는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외적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정했습니다. 그리고 이 존재여행에서 진정 필요한 것들이 무엇일지 함께 탐구하고 실험하며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존재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함께 탐구·실험하며 나눌 것
인도로 성지순례 나서면서
가볍게 떠나기 먼저 실험 중

첫 번째 만남을 위한 이 글도 인도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쓰고 있습니다. 보드가야에서 달라이라마 존자님이 여시는 칼라차크라 법회에 참석하고 4대 성지를 순례하기 위한 길을 나섰기 때문입니다. 순례여행을 떠날 짐을 꾸리면서 14년 전 인도를 첫 방문했을 때 들었던 ‘내일이 먼저 올지 내생이 먼저 올지 모른다’는 티베트 속담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만났던 인도에 난민으로 살고 있는 티베트 사람들은 한 해의 절반 정도 일을 해서 비용이 모이면 일을 그만 두고 붓다의 성지를 순례하기 위해 가족들이 함께 길을 떠난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이생에서 삶의 목표는 인간 몸을 받았을 때 일체중생의 행복을 위해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보리심을 일으키고, 이 보리심을 잘 간직하고 자라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일체 중생을 위해 깨달음을 이루셨던 붓다를 기억하고 붓다의 성지를 참배하면서 자신들의 보리심을 증장시키기 위해 건강하고 힘이 있을 때 가능하면 매년 순례를 떠난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사는 곳에서부터 오체투지를 하면서 순례의 목적지까지 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언제나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고 타인에게 친절한 특징을 가진 것 같았습니다. 이들은 이생이 나그네 길이라는 것과 그 길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 같았습니다.

이들이 집을 떠날 때는 난민촌에 있는 짐을 거의 다 꾸리는데 너무나 간단하게 냄비 하나, 숟가락, 접시, 연료, 이불 등 생존에 꼭 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오래 살기 위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나, 잘 먹고 잘살기 위해 좋은 직업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별로 없다고 했습니다. 물론 외국에 나와 있는 티베트 난민들은 성실하고 정직하게 열심히 일을 한다는 평판이 나 있어서 어딜 가나 환영을 받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생의 삶이 끝나는 죽음에 대한 준비를 늘 한다고 합니다. 물론 제가 만났던 이들은 신심이 돈독한 특별한 분들일 수 있고, 그렇지 않은 티베트 난민들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약 보름 정도 일정에 필요한 것들을 가방에 하나씩 챙기는 동안 이들의 짐 보따리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특히 밥을 해먹는 여정이어서 밑반찬을 준비하거나 식재료와 그릇들을 챙기는 것이 제겐 도전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밥상도 티베트인들과 우리는 너무 달랐습니다. 14년 전 인도 남부의 티베트난민 캠프에서, 또 칼라차크라 법회에 와 있던 티베트 인들의 식탁은 너무나 간단했습니다. 빵 하나와 차 한 잔을 마시거나, 야채를 넣은 볶음밥, 국수, 만두, 아니면 우리처럼 찌개를 끓인다면 찌개 하나와 먹는다고 했습니다. 우리처럼 삼찬, 오찬이 아닌 단찬의 식탁이 대부분으로 참으로 간편하게 먹는 습관이었습니다. 그렇게 먹어도 티베트 스님은 ‘우리가 세상에 와서 먹은 음식을 다 모으면 산을 하나 이룬다’고 하신 말씀이 아직도 제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인천공항에서 만난 순례팀 일원 중 이번 순례 중에 형편이 닿는 대로 단식을 해볼까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말씀과 기억과 인연들이 이번 존재여행을 준비하는 제게는 존재여행에서 필요한 것들을 챙기게 해주는 키(key)같다는 상상이 듭니다. 이번 주 저의 존재 여행에 필요한 것은 가볍게 떠나기, 가볍게 먹기, 가볍게 나누기를 실험해볼까 합니다. 가볍게 떠나기 위해 머리에 든 지식과 가슴에 있는 따뜻함, 그리고 가진 물질도 필요로 하는 이들과 나누는 것을 실험하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도 이번 한 주 동안 가볍게 동네 한 바퀴를 돌거나, 어디론가 떠나시면서 이 존재여행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사유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재마 스님 jeama3@naver.com
 

[1375호 / 2017년 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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