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 19세기 말 금강산의 사찰들

기자명 이병두

스님들 온후함 유자들 교만과 대조

▲ 1895년 유점사 부도밭에서 한 스님이 가부좌를 하고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전 세계를 여행한 영국 출신의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 1831~1904년)이 1894년 겨울에서 1897년 봄 사이에 우리나라를 네 차례 돌아보며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쓴 책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은  1898년 런던과 뉴욕에서 출판된 이래 저자 생전에 11판이 나올 정도의 베스트셀러였다.

여행가 비숍이 본 19세기 말
한국불교 솔직한 모습 전해
장안사엔 극빈자 등 식객 100명
사회약자 돌보는 역할 충실

특히 제 11장 ‘금강산의 여러 사찰들’에서는 장안사·표훈사·유점사에 있었던 전각·불상과 그에 관련된 인연이야기 등 유무형의 유산에 대해서 뿐 아니라 각 사찰에 머물고 있는 승려들의 일상생활과 불교 현실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어 19세기 말 우리 불교의 상황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비숍에 따르면, 당시 장안사에는 비구들 외에 10대에서 87세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대의 비구니 100여 명이 있었으며, “절름발이·귀머거리·장님 등 불구자, 과부·고아·극빈자 등 괴로운 사람들을 받아들여서 돌보는 숙소가 따로 있었다. 이런 식객들이 100여 명에 달했는데, 절에서 대접을 잘 받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고 전하고 있어서 당시 장안사의 규모가 매우 컸으며 불교가 본래 해야 할 역할에 매우 충실했음을 확인해준다.

당시 사찰에서는 “우유나 달걀조차 허락하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를 지키고 있었고”, 삭발도 하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고기를 건네주어도 “불제자라서 먹지 않겠다”며 사양을 하였다. 한편 스님들과 비숍 일행 사이에서 종교 문제를 두고 토론이 이루어지기도 했는데, 스님들은 “불교의 교리가 아무리 작은 미물이라도 살생하지 않는 반면 서양인들은 ‘동물들의 삶’을 무시하고 또한 탈속과 구원에 이르는 여러 가지 금욕을 높이 사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비판을 하면서도, “승려들 중에서 의(義)를 위해 죽음까지 불사하는 이들보다는 드러나는 죄도 방치하고 사는 이들이 더 많다”는 반론에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비숍이 보기에 일부를 제외한 승려들은 “모두 바랑 하나에 발우 하나를 들고, 울퉁불퉁하고 질퍽질퍽하며 먼지 나는 길을 걸어 다닌다. 더러운 숙소도 마다하지 않고 자신들을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끼니를 구걸하며 지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오는 욕지거리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연례적인 탁발을 떠나야” 하는 고단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억불체제의 유산 때문인지 그의 눈에 비친 승려들은 “매우 무식하고 미신적이었다. 불교의 역사나 교의에 대해서, 불교의식의 취지에 대해서는 무지한 채로 대부분 승려들이 그저 ‘몇 마디 음절들’만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비숍은 자신이 만난 스님들의 “자상한 접대나 배려, 행동거지의 온후함은 한국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그 잘난 척 하는 공자의 후예들(儒者)이 가진 교만함, 오만방자함이나 자만심과 아주 좋은 대조”를 이룬다고 후한 점수를 주었다. 비숍 일행이 유점사를 떠나올 때 작별인사를 마친 뒤에도 몇몇 스님들이 “멀리까지 배웅해주었다”고 하는데, 1895년 여름 무렵 비숍이 찍은 사진에 보이는, 유점사 부도 밭에서 합장한 채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는 스님도 그 친절한 분들 중 한 분이 아니었을까.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375호 / 2017년 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