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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저널 ‘물타기’를 보는 씁쓸한 시각

  • 기자칼럼
  • 입력 2017.01.13 11:14
  • 수정 2017.01.16 10:50
  • 댓글 65

불교저널이 1월8일 게재한 '최소한 넘지말아야 할 선 지켜라' 제하의 기사.
최근 선학원 이사장 법진 스님이 여직원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사건과 관련해, 선학원 기관지 불교저널의 비상식적인 행보가 빈축을 사고 있다. 법진 스님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이를 지적한 여성단체와 분원장 스님들을 겨냥해 ‘조계종단의 하수인’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저널은 1월8일 “최소한 ‘넘지 말아야 할 선’ 지켜라” 제하의 기사를 통해 “선학원을 장악하려는 조계종단의 술책에 교계 여성단체와 선미모(선학원의 미래를 걱정하는 분원장 모임)가 선봉대로 나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여성불교단체와 선미모는 더 이상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수시로 넘는 시위행동을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며 “도덕적 마지노선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경계마저 무너뜨리게 될 경우 사람과 금수의 구분이 없어진다”고 원색적인 비난까지 쏟아냈다. 여성단체 관계자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이 도대체 누구냐는 것이다.

성추행 피해자에 따르면 법진 스님은 늦은 밤 서울에서 속초로 가는 차량 안에서 성추행을 하고 속초에 도착한 뒤에는 변복에 음주를 한 채 피해자에게 함께 모텔방에 투숙할 것을 수차례 종용했다. 피해자는 진술을 뒷받침할 근거자료로 속초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중 과속방지카메라에 찍힌 사진이 담긴 속도위반 과태료 고지서, 속초의 한 식당에서 맥주 1병·소주 1병을 시켜 식사를 한 뒤 결제한 영수증, 그리고 법진 스님의 사과 메일과 법진 스님 측 변호인의 합의 제안이 담긴 문자·메일 등을 제시했다.

증거자료만으로도 법진 스님이 '스님'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고 보는 것은 지극이 상식이다. 불교계 여성단체와 선미모 스님들이 법진 스님에게 참회와 공직사퇴 등을 요구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교저널이 법진 스님의 행위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비판 없이 오히려 여성단체와 선미모 스님들에게 거센 비판을 가하는 것은 사건의 본질 왜곡을 넘어 ‘물타기’에 가깝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불교저널이 선학원 기관지라는 점에서 애초에 법진 스님에 대한 비판보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불교저널이 적어도 언론을 표방한다면, 성추행 피해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의 진술과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에 대해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판단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500여 사찰이 소속된 불교재단 선학원의 이사장은 종교인이자 공인이다. 이에 대해 불교계 여성단체가 문제의식을 느끼고 공익적 차원에서 활동하는 것을 ‘금수’ 운운하며 매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단체들의 명예를 심대히 훼손하는 행위다. 여기에 선학원 소속 분원장 스님들의 모임인 선미모가 이사장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해 비판 목소리를 내는 것을 정치적 의도로 몰아가려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더욱이 불교저널은 가장 기본적인 팩트인 여성단체들의 명칭과 소속마저 잘못 기재하는 오류를 범했다. 불교여성개발원을 '불교여성상담개발원'으로, 독립적 단체인 나무여성인권상담소를 개발원 소속으로, 종교와젠더연구소를 '종교와 젠더'로 기재했다. 여성단체들의 황당함이 한층 더 큰 이유다.

선학원과 불교저널은 해당 사건을 명확히 직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법진 스님이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이번 사건은 어떤 정치적이거나 외부적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당사자인 스님의 자발적 행위에 따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즉 사건의 본질은 고소인(피해자)와 피고소인(가해자)간 발생했다는 ‘성추행 혐의’ 그 자체에 있음을 말이다.

 
선학원 기관지인 불교저널이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법진 스님에 대해 신도의 말을 빌어 “한 번도 흐트러짐 없이 올곧게 신행생활을 지도해온 주지 스님”이라고 찬탄하는 것은 애써 이해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불교저널 스스로 밝혔듯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그것은 정치적 의도를 덮어씌워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것이며, 최소한의 정당한 요구조차 부도덕한 행위로 매도하는 일이다. 이것은 언론의 사명을 등지는 것이며 금수의 길을 걷는 것임을 불교저널은 자각해야 할 것이다.

송지희 기자 jh35@beopbo.ccom

[1376호 / 2016년 1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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