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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정각사 주지 정목 스님

“눈앞에서 펼쳐지는 4차 산업시대, 여러분은 어떻게 살겠습니까?”

▲ 정목 스님은 “다가올 4차 산업시대는 모든 것이 연기적 관계에 있다는 화엄의 세계가 우리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지금 인터넷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생산된 물건도 스마트폰으로 결제하면 며칠 지나지 않아 집에 도착합니다. 온 세상이 다 내 시장입니다. 매점에 있는 것만 내 시장이 아니라 전 세계시장을 손바닥 안에서 다 볼 수 있습니다. 이것만 해도 엄청납니다. 이것을 3차 산업시대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제는 4차 산업시대에 왔다고 합니다. 4차 산업은 무엇입니까? 알파고 시대. AI라고 불리는 가장 똑똑한 로봇의 시대가 왔다는 겁니다. 4차 산업의 주된 연구는 무정물, 즉 광물에 대한 연구라고 합니다. 그 가운데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가 중심입니다.

4차 산업은 ‘알파고’ 시대
인간의 일을 로봇이 대행
삶에 대한 궁극적 화두 제시

인간 스스로 존엄성 찾는 건
배려하고 존중하는 이타심뿐

절망의 상황서도 남 탓 않고
담담하고 당당히 받아들이면
희망의 길은 찬란히 열릴 것

앞으로 인간이 하는 역할은 모두 다 로봇이 대신한다고 합니다. 연구 자료에 의하면 앞으로 20년 안에 인간이 가졌던 720여종의 직업을 모두 로봇이 대신한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접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럼 이제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살지? 혹은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는지부터 걱정을 합니다. 그런데 로봇의 시대가 왔다는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앞으로 어떤 세상을 바라봐야 하며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화두를 던져줍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4차 산업은 로봇이 우리의 삶을 대신하게 됩니다. 로봇 가운데 제일 똑똑한 것이 바로 알파고입니다. 이 알파고는 학습과 학습을 거듭해서 수행력과 정진력을 완벽하게 갖춰 거의 수승한 깨달음의 단계까지 왔다고 합니다. 얼마 전 알파고는 우리나라에서 이세돌씨와 바둑대결을 했습니다. 그 결과 4번을 이기고 1번을 졌습니다. 아마 이세돌씨는 기계를 이긴 최초이자 마지막 인간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알파고를 이길 방법은 없다고 합니다. 이 알파고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지구에 있는 모든 인간들이 먹고 남을 양의 돈을 투자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실리콘밸리에 있는 석학들은 그런 엄청난 돈을 들여 로봇을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요? 왜 사람들이 하는 직업을 굳이 없애며 로봇에게 그 일을 대신하게 하려는 것일까요?

우리의 일상을 보면 그 답을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침에 눈뜨면 으레 출근을 하고 오후가 되면 퇴근을 합니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아프면 병원가고, 쉽니다. 또 때가 되면 휴가를 가고, 장기간 휴가를 갔다 오면 그 후유증으로 한동안 일을 하지 못합니다. 그 뿐입니까? 아침에 기분이 상한 일이 있으면 회사에서도 일을 잘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허송시간을 보내고도 또박또박 월급을 받아갑니다. 제대로 일하는 사람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입니다.

이러니 더 이상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그 많은 돈을 들여 알파고를 만들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지구상에서 인간의 역사는 5억년이 됐지만 그 기간 동안 인간의 의식수준은 변한 게 없습니다. 감정싸움에 우울해 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서로 의심하고 갈등하고 괴로워합니다.

이런 인간의 모든 허물을 다 벗겨내겠다는 것이 바로 4차 산업혁명입니다. 알파고는 출퇴근이 필요 없고, 월급을 안줘도 되고, 절대 뒤통수를 치지도 않습니다. 사람은 못 믿어도 로봇은 믿을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입니다. 이처럼 4차 산업시대에는 웬만한 모든 일을 로봇이 하게 됩니다. 4차 산업시대에서는 인간이 한 역할을 기계에게 맡기라고 것입니다. 대신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존엄성을 찾으라고 합니다.

인간이 기계와 달리 빛이 나고 찬란해 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타심과 자애심일 것입니다. 그 이타심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완성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인간은 이타심과 자비심을 계발하는 것에 총력을 기울이라는 것이 4차 산업의 요구인 것입니다. 그럼 이타심이라는 것을 어떻게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인도의 대표적인 사상가로 불리는 타고르가 있습니다. 그는 부잣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이 부유해 많은 하인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집에서 일하던 나이 많은 하인이 아무 말도 없이 출근을 하지 않았습니다. 타고르는 어려서부터 약속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하인이 낮 12시가 넘어도 출근을 하지 않아 언짢게 생각했습니다. 오후가 돼도 출근을 하지 않다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 비로소 하인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 하인은 자초지종을 설명하지도 않고 평소에 자신이 하던 대로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타고르는 화를 내면서 하인이 들고 있던 빗자루를 빼앗아 집어던졌습니다. 그래도 그 하인은 다시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려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 모습에 더욱 화가 난 타고르는 빗자루를 뺏고 “당신은 해고야”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한 동안 그 자리에 서있던 하인은 비로소 말문을 열었습니다.

“예 주인님, 제가 아무 말씀을 드리지 않고 늦게 온 것은 제 잘못입니다. 그런데 제 딸이 어젯밤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말에 타고르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스스로를 자책했습니다. 그리고 훗날 자신의 책에 이렇게 글을 남겼습니다.

“그 때 내가 무슨 짓을 했는가. 한 존재에 대해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내 방식대로 판단하고…. 나는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지고 폭력적일 수 있는지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 실망했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존재인지,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지에 대해, 나는 스스로에 대해 깊은 절망감을 가졌다. 그 때부터 나에게 새로운 습관 하나가 생겼다. 누군가에 대해 바로 판단하고 윽박지르고 소리 지르고, 내 방식대로 화를 내기보다는 한발 물러서서 그 사람에게, 한 인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먼저 알아보고 그러고 난 뒤 비로소 판단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타고르의 나이는 20대였다고 합니다. 우리도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작년보다 좀 더 나은 오늘의 나, 10대보다는 20대, 40대보다는 50대, 60대보다는 70~80대에  좀 더 어른으로 성장해야지라고 마음먹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몸뚱이만 쪼그라드는 게 아니라 생각도 쪼그라드는 것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닙니다. 떡국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 것처럼 나이는 그냥 내버려두어도 먹는 것입니다. 나이가 아니라 정신 심리적 상태가 성숙해질 때 어른이라고 말합니다. 10대 아이도 어른이 될 수 있고, 90세의 노인이라도 7살 애보다도 못한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렇게 녹록하거나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타인을 배려하는 생각,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생각, 그것을 향해 한발 물러서서 생각할 수 있는 자비심과 이타심이 필요합니다. 그런 마음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본질적으로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데 거름이 됩니다.

2003년 인도네시아에 거대한 쓰나미 재앙이 닥쳤습니다. 쓰나미로 마을 전체가 바닷물에 잠겼습니다. 학교와 집이 다 날아갔고, 부모형제, 선생님, 친구들을 모두 잃고 3~4살의 아이들만 남았습니다. 국가도 구제를 할 수 없는 대재앙이었습니다. 모든 국가에서 봉사단을 파견하고 구호활동에 나섰던 대사건이었습니다.

박노해씨의 사진전에 갔다가 가슴 뭉클한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7~8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바닷물이 빠진 어느 해안가에 나무를 심는 장면이었습니다. 작가는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그 나무를 심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있겠니?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으로 믿는 거니?”라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 작은 나무가 거대한 해일을 막아주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절망하는 제 마음을 붙들어 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게 어른인 것입니다. 내 앞에 닥친 상황에 징징거리지 않고, 누구를 탓하지 않고, 당당하게 담대하게 대처하는 그 마음. 그게 바로 어른의 마음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고, 홀로 서 있으면서 작은 몸조차 붙일 집도 없는 그 어린 아이들이 어떻게 그 험난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의지할 곳 없는 그 막막함 속에서도 세상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탓하기보다 나무 한그루에 의지해 절망하려는 자신의 마음을 지켜내겠다는 아이들의 그 한 생각이 앞으로 그들의 인생길을 환하게 열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삼시세끼 다 먹어가면서 할 일 다 하고, 따뜻한 방에서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살면서도 불평과 불만이 가득합니다.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또 뭐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공부가 아닙니다. 사람은 저마다 인생학교에 입학해서 저마다에 주어진 미션을 다 수행할 수 있도록 주어졌습니다. 우리가 이생에 태어난 것은  그 미션을 완벽하게 수행해 내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걸어가는 길에 이타심과 자비심을 끊임없이 키우기 위해 한 생애가 주어긴 것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이타심을 정말 끝없이 낸 적이 있나요? 부처님만큼 거대한 자비심, 관세음보살님 같은 그 큰 자비심을 한 번이라도 내 본적이 있나요?

20세기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는 ‘화엄경’을 읽고 무릎을 탁치며 탄복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다가올 21세기는 ‘화엄’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합니다. 화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연기법입니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돼 있고, 연결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암세포 하나를 떼어내서 검사를 하면 그 사람의 DNA 전체를 다 읽어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오고, 어떤 생활습관을 갖고 있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왔는지도 다 읽어냅니다. 심지어 그 사람의 조상까지도 해석해 낼 수 있어요. 세포 하나를 떼어내서 봤는데 일즉다, 하나 속에 모든 것을 다 해석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온 것입니다. 그러니 미운 사람 고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내 부모요, 내 형제자매인 것입니다. 이게 화엄의 세계이고, 4차 산업은 바로 그런 화엄의 세계를 우리 눈앞에 보여주겠다는 것입니다. 이 멋진 세상, 여러분들은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정리=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조계종 대전비구니청림회(회장 효경 스님)가 1월5일 청림회 문화회관에서 개최한 성도재일 법회에서 정목 스님이 법문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1376호 / 2016년 1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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