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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불교의 새로운 마음주제

기자명 김권태

연기법 기반하면 발달심리 불교적 체계화 가능

우리는 모두 말을 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말을 배우기 이전의 시절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도무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배불리 젖을 먹고 포만감에 겨워 잠든 아기들을 볼 때마다 저 아기들의 시간은 다 어디에 잠들어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 분명 이 삶을 살았으되, 가늠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삶이 의식 저편에 숨어있는 것이다.

팔만대장경 모두 마음에 관한 것
새로운 마음현상 맞는 대답 필요

불교에서는 “이 모든 것이 마음의 일(一切唯心造)”이라고 말한다. 기억할 수 없는 경험조차 우리 마음에 ‘씨앗(種子, 業力)’으로 고스란히 저장되고, 또 이 씨앗은 인연 따라 그만한 크기의 싹을 틔우며 자란다고 말한다. 씨앗에서 한 현상이 펼쳐지고(種子生現行), 현상의 결과물은 다시 씨앗으로 저장된다(現行熏種子). 또 씨앗은 다시 다른 씨앗을 낳고(種子生種子), 그렇게 마음이 마음을 머금고 또 마음이 마음을 낳는다.

그렇다면 이 마음씨앗은 ‘생각’인가, ‘감정’인가, ‘의지’인가? 혹은 ‘표상’인가, ‘기억’인가, ‘자의식’인가? 내 ‘몸(有根身)’도 마음이요 저 ‘세계(器世間)’도 마음이라면, 이것은 ‘마음씨앗(종자)’인가, 아니면 그것을 담고 있는 ‘마음밭(아뢰야식)’인가? 또 윤회한다는 것은 우리 ‘마음씨앗’이 윤회하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밭’이 윤회하는 것인가? 자의식이 사라진 무아가 되면 윤회가 끝나고 열반하는 것인가, 아니면 무아이기 때문에 윤회하는 것인가? 또 윤회는 한 생각 망상이 일어난 것인가, 그렇다면 열반은 한 생각 망상이 사라진 것인가? 과연 윤회는 윤리적 방편인가, 아니면 현상적 진실인가.

마음에 대한 물음은 끝이 없는 물음이다. 팔만대장경의 내용들이 모두 마음에 관한 것이라고 하듯이, 이 마음이라는 주제는 우리에게 영원히 피할 수 없는 물음이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었다. 생로병사라는 인간의 보편적 문제는 변함이 없지만, 이 생로병사의 과정에서 펼쳐지는 현대 인간의 마음은 옛날과 그 결이 다르다. 이제는 새로운 마음현상에 맞게 불교만의 새로운 대답이 필요한 시기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12연기를 통해 윤회의 실상을 자각하였다. 생로병사의 이 고통스런 반복이 무명에서 비롯됨을 알고, 이 12연기를 ‘순관, 역관(유전문)’하며 음미하였다. 그리고 무명을 멸함(환멸문)으로써 생로병사의 긴 어둠에서 빠져나왔다. 무명은 사성제를 모르는 무지이며, 갈애의 원인이다. 이 무명으로 인해 의도가 생기고, 이 의도로 인해 업이 생기며, 이 업으로 말미암아 중생들은 세세생생 윤회를 반복한다.

사람들은 이 세상만물과 현상이 ‘신의 뜻이다(신의론), 숙명 탓이다(숙명론), 우연일 뿐이다(우연론)’라고 말하지만, 부처님은 이 모든 것은 서로가 관련되어 일어난 것일 뿐이라는 ‘연기적 인과(연기법)’를 주장하였다. 인간의 의지를 간접조건에 넣어(인+연+과) 무명과 업을 해소하였다. “전생 일을 알고 싶으면 네가 현재 받는 일을 보고, 내생 일을 알고 싶으면 네가 현재 짓는 일을 보아라”는 말씀처럼, 모든 외도설을 부정하고 지금 여기에서의 인간 의지를 강조하였다. 

그리고 연기법을 나와 사물에 적용하여 “모든 것은 무상하고,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이며, 괴로운 것은 나라고 할 수 없다”라는 삼법인으로 공성을 체득하였다. 이 장대한 마음에 대한 논의가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하나 이 마음의 실체는 곧 무심임을 자각하여, 아공과 법공을 이룬 것이다. 이렇게 소승과 대승 모두를 아우르는 불교의 일미는 바로 ‘연기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연기법을 통해 ‘모두가 고통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도록 하는 것(離苦得樂)’이 바로 불교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이고득락과 연기법이라는 불교의 정체성을 놓지 않는 이상, 그간 불교에서 다루지 않았던 인간의 무의식과 발달심리에 대해서도 인간의 마음 전개과정으로 새롭게 체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신화와 전설, 민담에 담긴 인간 정신의 탄생과 성장 이야기 또한 불교적인 외연확장으로 새롭게 활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김권태 동대부중 교법사 munsachul@naver.com
 

[1377호 / 2017년 1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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