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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질문은 깨달음의 문

질문 통해 맹신을 깨뜨리는 것이 금강경의 지혜

‘시장로 수보리, 재대중중 즉종좌기 편단우견 우슬착지 합장공경이 백불언, 희유세존 여래 선호념 제보살 선부촉 제보살. 세존, 선남자 선녀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 응운하주 운하항복기심.’

의문이 밖으로 나오면 질문
부처님도 질문으로부터 시작
묻지 않으면 진리문 안 열려

왜 질문을 해야 할까? 물음은 깨달음의 문이다. 자기에게 묻든 스승에게 묻든, 묻지 않으면 문이 열리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집단적으로도 그렇다. 부처님도 묻지 않았던가? ‘생로병사의 원인은 무엇인가?’라고. 그리고 답을 얻지 않았던가? 그래서 수보리가 질문을 시작한다.

그런데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질문을 던진 사람은 누구였을까? 첫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인류가 침팬지와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갈라진 것은 600만 년 전이지만, 인류에게 언어가 생긴 것은 10만 년 전이므로 그 이후의 일이다. 혹시 이브가 ‘지식의 나무’를 보고 뱀에게 ‘저게 뭐야?’ 하고 물었을까? 그게 첫 번째 질문일까?

그럴듯하다. 이브는 언어에 능한 여자 아닌가?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브는 두 번째 여자다. 하나님이 처음에 아담의 혀를 취해 여자를 만들었는데 이 여자가 너무 말이 많았다. 그래서 아담이 이 여자를 소박 놓자, 두 번째로 만든 게 이브이다. 이번에는 갈비뼈를 취했다. 그래도 여전히 말을 잘하는 걸 보면, 첫 번째 여자는 얼마나 말을 잘했을까?

그전까지는 애완동물처럼 에덴동산이라는 우리에서 사육당하다가, 처음으로 의식이 깨인 것일까? 여러분이 키우는 개가 어느 날 갑자기 “주인님, 주인님이 손에 들고 말을 건네는 그 괴상한 물건은 대체 뭐에요?”하고 질문을 던진다고 해보라. 놀라 기절할 일이 아닌가? 그 개가 체세포복제로 만들어진 개라면 더 놀랄 일이다. 그런데 그 개가, 어느 날 그 용도를 발견하고 ‘견용(犬用) 데이트 사이트’를 이용하겠다고, 당신 스마트폰을 가져다 어딘가에 감추어 놓았다고 생각해보라. 정말 화가 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인간이 먹지 말라는 지식의 열매를 먹어서, 즉 의식이 생겨서, 하나님은 자기가 창조한 피조물을 처벌해야 하는 고약한 상황이 발생했다. 이게 다 의식이 생기고 그에 따라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그런데 처벌용 지옥은 천지창조 6일간에 등장하지 않는다. 괴이한 일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는 것도 있나?)

마음속의 의문이 밖으로 나오면 질문이다. 의문은 마음속에만 칩거하면 개인적인 현상이다. 밖으로 나오는 순간 집단적인 현상으로 돌변한다. 질문은 언어를 통해 순식간에 구성원들에게 퍼진다. 이는 뇌 안에서 정보가 생체전기에 실려 1000조 개(수상·축색)돌기를 통해서 1000억 개 뇌신경세포에 퍼지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로저 펜로즈 같은 이들은 뇌신경 세포 하나하나에 독립적인 의식이 있다고 주장한다.(그럼 하나의 인간은 1000억 개 의식체의 군집의식이 된다. 기이한 일이다. 그의 주장이 맞기를 바라야 할까, 틀리기를 바라야 할까?)

뇌 밖에서, 생체전기의 역할을 하는 것이 언어이다. 인간은 언어의 도움을 받아 구성원들을 신경세포처럼 작동시켜 놀라운 문명을 일구었다. 나치 선전상 괴벨스는 ‘대중에게는 자기 생각이 없다. 그들이 자기 생각인 줄 아는 것도 사실은 남의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군집생물의 특징이다. 개체는 다른 개체의 생각을 받아들여 자기 생각으로 삼는다. 예를 들어 집단의 절대다수가 믿는 특정 종교를 진리라 생각한다. 고대 그리스의 만신교와 중세 기독교와 아랍 이슬람교와 고대 중국의 귀신숭배가 그 예이다. 그리고 남이 만든 과학이론들을 믿는다. 자기는 진위를 판단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대중이 믿던 옛 과학이론의 근본이 뒤집어지는 수가 있다. 인과론을 부인하는 우연의 세계인 양자역학이 그 예이다. 불자들은 일체가 인과론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소립자가 주역인 미시세계는 확률론의 세계이다. 인간의 군집생물적 특징을 악용하는 게 나치의 선동술이며 종교적 맹신이다. 그런 맹신을 깨뜨리는 게 금강경의 지혜이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377호 / 2017년 1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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