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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교수 논쟁이 씁쓸한 이유

또 하나의 성숙하지 않는 논쟁이 성숙하지 않은 한 단락을 맺었다. ‘제국의 위안부’라는 표현 등으로 형사 재판에 올랐던 박유하 교수가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법원의 판결 자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매우 적당치 않은 일이다.

중요한 것은 법의 판결이란 최소한의 마지막 선에 대한 것을 판단할 뿐이란 점이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계속 논쟁이 이어지겠지만, 쌍방이 근본적으로 태도를 바꾸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계속 미성숙한 소모적 논쟁이 이어지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될 요소가 이 사건에는 충분하고도 넘치게 있다.

우선 이 사건의 본질은 법에서 판결한 그 최소한의 요구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박유하 교수의 논의가 어떤 목적을 지니고 있는가? 박유하 교수가 취한 방법은 목적의 정신에 부합하여 우리가 지향하는 공동의 선을 성취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것인가? 여러 사람이 상처받을 수 있고, 또 극도로 민감한 현안에 이런 충격적인 방식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이런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양식 있는 지식인이라면 그러한 여러 측면을 고려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무조건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것을 주장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박유하 교수는 자신이 위안부로 나갔던 분들에게 상처를 줄 의도도 없었고, 오히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식으로써 책을 저술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주장의 진위에 대하여 검증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마녀사냥이 될 위험이 있다. 그렇기에 일단 그 주장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그 주장에 적합한 표현과 방식이 사용되었는가를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의도에 대하여 검증할 필요는 있겠지만, 완전히 상대방의 주장에 진리성이 전혀 없다고 몰아붙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방식이며, 이 사회를 병들게 한다. 상대방의 근본 주장을 일단 인정하는 선에서 다음 논의를 전행하는 것이 성숙한 방식이 아닐까 싶다. “당신은 근원적으로 악이다”라는 지점에 서면 그 다음 논의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박유하 교수를 공격하는 입장에 선 사람들이 지켜줘야 할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지나치게 과대포장하거나 자극적인 표현으로 드러내게 되면 그 자체가 오류이다. 커다란 그림 가운데 한 군데 돋보기를 가져다 대고 그것만을 확대한다던가, 한 부분에 지나친 강조를 주어 전체를 보지 못하게 하는 오류이다.

반대로 박 교수는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이런 강조의 오류를 범하고 있지 않은가? ‘제국의 위안부’ ‘동지’ ‘자발적 매춘’ 등의 표현은 사실을 사실대로 보여주기보다는 쓸데없는 부정적 왜곡을 일으킬 뿐이다. 민족 전체가 처한 극한상황, 오욕의 상황 속에서 어떤 일인들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일반 국민들이 모두 애국지사가 되기를 바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얼마든지 박 교수가 말한 것과 비슷한 일도 있을 수 있다.

그런 것들은 소설의 소재로서는 아주 좋을지 모르지만 학문적 논의에 그런 것들이 선정적으로 부각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신이 주장하는 목적 자체를 실종시키고, 감정적인 논의로 치닫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정말 본말이 전도된 일이 아닐까?

그렇게 지엽적인 문제에 서로 감정의 골이 생기게 만들면 결코 어떤 선한 목적을 위한 다음 과정이 일어날 수가 없다. 한일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이해를 가지고 있는 박 교수가 자신의 표현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정말로 큰 문제이다. 선정적인 표현으로 문제를 일으키려는 목적을 지니지 않았다면 이렇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한편에서는 ‘친일매국’의 창으로, 한쪽에서는 대책 없는 ‘표현의 자유’라는 방패로 맞서는 싸움…. 이미 시작부터 미성숙한 논쟁이요, 양극화를 부추기는 소모적 논쟁이 될 조건을 당연한 듯이 갖추고 있었다고 생각되어 참으로 씁쓸하다.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교수 tysung@hanmail.net
 

[1378호 / 2017년 2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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