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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제 봉은사 시설과장-상

“닭 한 마리로 시작된 절집 인연”

 
닭 한 마리 훔쳐 먹고 절로 숨어들었다. 눈만 뜨면 배가 고팠던 시절, 동네 친구들이랑 철없이 벌인 일. ‘서리’가 놀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막상 문제가 커지니 같이 놀던 친구들 가운데 누구 하나 나서는 놈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덤터기를 쓰기로 하고 가까운 해인사로 도망쳤다. 몇 달 절에 숨어있다 슬그머니 내려갈 생각이었다. 고향집이 합천이니 큰절에 있다가는 오가는 동네 사람들에게 들킬 것이 뻔했다. 더 깊은 골짜기 용탑선원으로 갔다. 나무하고, 군불 때고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때가 70년대 초, 고작 14살 남짓이었다.

‘처사’로 시작 봉은사만 37년
보일러·수도 어떤 고장이든
고쳐내는 ‘봉은사 맥가이버’

몸은 고됐지만 집에 있을 때처럼 배를 곯지는 않았다. 그것만도 다행이라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종성 스님이 불렀다. ‘출가하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였다. 하지만 출가할 마음은 털 끝 만큼도 없었다. 큰절에서 보니 ‘강원 군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엄두가 나질 않았다. 아마 그때 출가했다면 교육원장 현응 스님과 사형사제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날 같이 불려갔던 또 한 명의 재가자는 종성 스님의 권유에 따라 출가했다. 광진 스님이었다.

그 후로 수년을 홍제암 등 암자에서 ‘처사’로 지내며 절일을 거들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넘자 ‘결혼하라’는 집안의 독촉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마을로 내려왔다. 고향집에서는 여전히 먹고 살기가 막막했다. 22살, 무작정 상경했다. 폐지를 주워 팔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한 달여를 버텼다. 절집과는 더 이상 인연이 있으리라 생각도 못했다. 우연히 청계천 인근에서 광진 스님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영암 스님을 시봉하기 위해 상경했다는 광진 스님에 이끌려 봉은사로 갔다. 급하게 일손이 필요하다는 소리에 3개월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조광제 과장은 봉은사 경내에서 오토바이로 활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하지만 막상 봉은사에 와보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진여문 옆으로 물이 흘러내리는데 마치 작은 계곡 같았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앉아 빨래를 할 지경이었다. 그 물을 받아다가 수질검사를 받아보니 수돗물이라는 것이다. 수도관이 터져 물이 새어나온 것이 점점 커져 계곡만해 진 것이다. 터진 수도관 공사를 시작으로 스님들 요사채의 망가진 구들장이며 수도, 전기 등 곳곳을 손봤다. 해인사 암자에 머무는 동안 틈틈이 배워뒀던 보일러, 전기, 수도 수리기술이 제대로 빛을 봤다. 당시 봉은사에 소임(무슨 소임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을 맡아 계시던 밀운 스님이 “계속 봉은사에 살면서 일하면 어떻겠냐”고 권했다. 1980년 3월3일 정식으로 첫 출근을 했다.

당시 봉은사 요사채 대부분은 낡은 구들장 아래로 연탄불을 밀어 넣어 난방을 했다. 그러다 보니 연탄가스가 새는 일이 왕왕 벌어졌다. 구들장을 뜯어내고 보일러를 놓았다. 그런데 그 보일러가 툭하면 말썽을 부렸다. 시도 때도 없이 뛰어 올라가 보일러를 손봐야 했다. 일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서울 절이라고는 하지만 시골 절이나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뒷산에서 매일 땔감을 해다가 공양을 짓고 난방을 했다. 지금은 봉은웨딩홀이 들어서 있는 자리도 당시에는 전부 밭이었다. 그곳에 배추와 무를 심어 농사를 지었다. 일하는 대중이라고는 종무소에 여직원 두어 명이 고작이었고 힘쓰는 일을 할 처사들도 너댓 명 남짓이었다. 하루 종일 경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일손을 거들다 보면 하루해가 후딱 넘어갔다. 때마침 대웅전 복원 불사가 시작되었다. 복원이야 기술자들이 와서 했지만 마당 쓰는 일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힘껏 거들었다. 4~5년 만에 대웅전 복원이 완공되고 얼마 후 대웅전 법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감회가 새로웠다. 봉은사 어린이 합창단이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주었다. 그때 노래를 불렀던 꼬맹이가 지금은 중년의 봉은사 신도가 되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378호 / 2016년 2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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