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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어른들이 심심한 이유

기자명 성원 스님

모든 물건을 가격으로 결정해서야

 
계절이 계절답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에는 폭설로 엄청 힘들었는데 올해 내릴 눈까지 다 내려 버렸는지 올해는 아직까지 눈다운 눈이 내리지 않았다. 겨우내 따스한 제주가 좋다고 해야 하는 걸까? 제주의 겨울은 따스하긴 해도 눈은 많이 내리는 편이다. 항상 영상의 기온에서 눈이 내리기 때문에 바로 다 녹아버리기 일쑤여서 그렇지.

어린이들은 어른과 달리
들고 놀 수 있는 물건이면
그것이 바로 최고 장난감

밤새 내린 눈을 치운다고 아침에 비를 들고 몇 번 움직이다보면 사시불공이 시작도 전에 대부분 녹아버린다. 작년에 서귀포에서 정말 처음으로 고드름을 보았다. 우리가 고드름을 보고 신기해하며 즐길 때 공항에서는 수만의 여행객들이 불편을 겪어야 했으니 정말 이 세상 행복의 총량이 같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올해도 눈이 조금 내리긴 했다. 설을 며칠 앞두고 눈이라고 하기에는 어설플 정도의 눈이었다. 차실에서 차를 마시고 나오니 어린 리틀붓다 합창단 단원 몇이서 연습을 빼먹었는지 놀면서 그 작은 눈을 모아서 눈사람을 만들었다. 정말 신기하다. 제주에서 살면서 눈사람을 만드는 일이 거의 없을 텐데 눈덩이 두 개를 굴려 올려놓더니 나무 가지를 꺾어 와서 눈사람의 눈을 만들고 코와 입도 만들었다. 또 뛰어 가더니 이번에는 끝가지가 달린 가지를 주어 와서 옆에 꽂아 양 팔까지 만들어 주었다. 너무 신기했다. 우리 어릴 때는 타다 남은 검정 숯으로 눈과 코와 입을 만들었는데 아이들은 어떻게 나무 가지로 눈과 입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눈사람을 장난감처럼 만들고 노는 모습을 보며 어른들의 장난감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어린이들은 무엇이나 있으면 즐겁게 논다. 심지어는 밀감을 먹다 남은 껍질을 가지고서도 논다.

어른들은 어떤 물건의 가치를 가격이나 상품으로 결정하지만 어린이들은 그렇지 않다. 마냥 자기들이 들고 놀 수만 있으면 그것이 최고의 장난감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이에게 명품 옷이나 학용품을 사 준다는 것은 그저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아이들을 위해서 해준다고 하지만 사실 아이들과는 전혀 무관한 행위다. 아이들은 그런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사실은 관심도 없다. 어른들이 귀하고 중요하다고 하니까 아이들은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세상에서 순수한 가치는 무엇일까? 대부분 마음으로 그려 놓은 자신의 주관적 가치만을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자기의 주관적 가치 넘어서는 그 어떤 것도 없는 것 같다. 사상이나 이념이나 주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가진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몰두하다보니 우리사회가 타협과 이해하는 힘을 잃어버린 것 같다.

잔디를 겨우 덮는 눈을 가지고도 저토록 재미있게 노는 어린아이를 보면서 보다 더 재미나고 신기한 것을 찾아 많은 시간을 어슬렁거리는 자신이 부끄럽다. 나도 어릴 때 병뚜껑 몇 개만 있어도 하루 종일 노는데 심심치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잃어버린 세상 실낙원은 어느 지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인 것 같다. 옛날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나 보다. 그래서 잃어버린 낙원, 실낙원이라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어린이들은 우리들의 잃어버린 낙원이다. 그들을 가까이 하면서 그 잃어버린 낙원의 즐거움에 물들고 싶다.

잃어버린 가치들은 추구하는 가치성으로 인해 발생된 것이 분명하다. 이제는 추구하는 마음을 딱 멈춰야겠다. 의미 있는 그 무엇을 찾아 헐떡이는 마음을 안고 있는 동안에는 그 어떤 것에도 만족을 느끼지 못 할 것 같다.

어린붓다들은 영원한 나의 노스텔지어! 언제나 그들을 향해 경배하며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야 할 거다. 나의 잃어버린 행복을 통째로 움켜잡고 살아가는 그들은 정말 얼마나 행복할까?

성원 스님 제주 약천사 주지 sw0808@yahoo.com
 

[1378호 / 2017년 2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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