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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링컨 대통령의 유머

“얼굴이 둘이라면 이 못난 얼굴로 다니겠소?”

▲ 그림=근호

널리 알려진 링컨 대통령의 사진을 보면 표정이 매우 심각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매사에 진지하고 심각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매우 유머러스한 사람이기도 했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해 클린턴과 경쟁했던 밥 돌은 미국의 역대 대통령의 유머 수준을 점수로 평가한 적이 있는데, 에이브러햄 링컨은 로날드 레이건, 시어도어 루스벨트,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함께 최상위 네 명에 속할 뿐 아니라 그 중에서도 가장 유머러스한 사람이었다.

진지하나 유머러스했던 링컨
상대후보 비난에 유머로 대응
예상밖 자신 낮추면 웃음생겨
유머 속 달관은 해탈과 상통

링컨이 하원의원에 출마했을 때 상대 후보가 링컨을 ‘두 얼굴을 가진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 그렇지만 링컨은 ‘정직한 에이브’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을 정도로 정직함을 인정받고 있었다.

그런 그였으므로 얼마든지 자신을 변명할 수 있었겠지만 그는 고지식한 변명 대신 유머를 택했다. 그는 그 말을 맞받아 “내가 두 얼굴을 갖고 있다면 (자신의 못생긴 얼굴을 가리키며) 좋은 얼굴을 놔두고 굳이 이 얼굴로 나다니겠습니까?”라고 말하여 사람들을 웃겼던 것이다.

링컨이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마침 마차 한 대가 뒤에서 다가오자 링컨은 마차를 세우더니 “괜찮으시다면 제 외투를 읍내까지만 실어다 주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마차 주인이 “그러죠. 그런데 외투를 어떻게 찾아가시겠습니까?”하고 묻자 링컨이 눈을 찡긋하며 대답했다.

그 점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외투 안에 있을 예정이거든요.”

마차 주인은 웃으며 링컨을 마차에 태워 주었다.

장교로 군에 복무하고 있던 시절, 키가 매우 큰 사병이 입대해 링컨 앞에서 전입 신고를 하게 되었다. 자신 또한 키가 매우 큰 사람이었기에 링컨은 자신보다 키가 큰 사병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책상에 앉아 한참 동안 전입 사병을 바라보고 있다가 물었다.

“여보게, 만일 자네가 발이 시릴 경우에 말일세, 발이 시린 다음 얼마 후에 머리가 그걸 알게 되는가?”

친구들 간의 모임에서 링컨이 말했다.

“어느 때 나는 거울을 유심히 보고 있었지요. 보니 내 얼굴, 참 못생겼습디다. 그래서 어찌할까를 곰곰이 생각한 끝에 이왕 이렇게 된 거 제일 못생긴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죠. ‘그래, 나는 이 도시에서 제일 못생긴 사람이야. 이 영광스러운 지위를 노리는 놈은 가만두지 않겠어!’ 아, 그런데 얼마 뒤에 (옆에 앉아 있는 친구를 가리키며) 이 친구가 우리 도시로 이사를 왔더란 말입니다. 이 친구를 보는 순간 나는 호적수가 나타난 걸 알았죠. 나는 얼른 집으로 가서 장총을 들고 나와 이 친구를 겨누고 말했습니다.

“어서 기도를 올리게. 내가 자네를 처단할 테니까.”

이 친구가 황당한 표정으로 말하더군요.

“무슨 영문이지 알고나 죽어야 할 거 아냐? 이유나 들어보자고.” “난 이 도시에서 제일 못생긴 사람이야. 자넨 그런 내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고!”

그러자 이 친구, 내 얼굴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크게 한숨을 쉬고나서 풀이 잔뜩 죽어 말하더군요.

“내가 자네보다 못생겼단 말이지? 그렇담 어서 쏘게나. 자네보다 못생긴 얼굴로는 나도 살고 싶지 않아.”

웃음은 일이 예상했던 경로를 벗어날 때 생긴다. 첫 번째 예에서 사람들은 링컨이 상대방의 공격을 정공법(正攻法)으로 맞받아 치리라고 생각했을 뿐 이렇게 슬쩍 비키는 기공법(奇攻法)을 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 예에서도 마차 주인은 외투 안에 링컨이 있을 예정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 번째 예도 마찬가지. 전입 사병은 발 시림을 알아차리는 데 있어서 키가 큰 사람과 작은 사람 간에 차이가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예상치 않았던 방향으로 나아가는 한 가지 조건만으로 웃음이 유발되지는 않는다. 웃음이 유발되는 또다른 요소로 높은데서 낮은 데로 툭 떨어지는 것을 들 수 있다.

첫 번째 예에서 우리는 링컨이 남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선 사람으로서의 정신적인 우월(잘생김)을 신체적인 못생김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을 볼 수 있고, 네 번째 예에서는 장총을 겨눈다는 살벌한 상황(긴장이 높은 상황)이 순식간에 낮아져 장난스러움으로 와해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술철학자 N. 하르트만에 의하면 예술의 미(美)에는 숭고미·우아미·비애미·유머미가 있다. 이 네 가지 미 중 앞의 세 가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머미는 어떨까. 동양 전통에 속하는 우리의 정서로는 네 번째 미를 승인하기가 쉽지 않다.

유머(humor)라는 영어에 딱 알맞은 한국어는 없다. 가장 비슷한 단어로 해학·익살·우스개 등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이것들은 유머와 일면 같아 보이지만 전적으로 같지는 않다. 가장 큰 차이는 유머와 해학 등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달관성이 있다는 점이다.

불교의 입장에서 달관은 해탈과 통한다. 그러나 지극히 높은 경지에 오른 해탈자는 유머를 구사하지 않는다. 유머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해탈이 아닌, 완전에 가까운 해탈이 필요하다. 바꿔 말해서 유머를 구사한다는 것은 그에게 아직 인간성 내지 중생성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즉, 유머는 성자의 바로 아랫 급인 현자 수준에서 구사되는 아름다운 일탈이다.

그렇다면 해탈이란 무엇인가. 쉽게 설명하면 해탈은 자아관념의 소멸이다.  ‘금강경’은 자아관념을 아상(我相)이라 부른다. 아상을 버리면 해탈은 가까워진다. 해탈은 나(자아)를 온전히 비운 상태이다.

겸손은 나를 가볍게 했다는 증거 중 하나이다. 유머는 10인 자신을 7이나 8로 낮추어 가볍게 덜어낸 것을 바탕삼아 구사된다. 자신을 낮추고 덜어낸 마음 공간에 장난기가 더해지는 순간, 자신의 못생김을 드러내어 놀림감으로 삼을 줄 아는 겸손의 달관성으로부터 유머미를 갖춘 링컨의 멋진 언행이 나온다.

불제자들은 대체로 진지한 편이다. 진지함은 물론 훌륭한 덕목이다. 그러나 진지할 때는 진지하되 유머러스한 면까지 아울러 갖추면 더 좋을 것이다. 가벼워진 아상을 바탕삼아 유머를 구사하며 사는 불제자를 자주 보고 싶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378호 / 2017년 2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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