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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조오현의 ‘출정’

기자명 김형중

동안거의 참선 수행을 떠올리며
시조 형식 빌어 오도 경지 표현

한글 선시 개척한 최초 시인
출정은 선정삼매서 나오는 것
깨달음은 무지 벗어나는 지혜

경칩(驚蟄) 개구리
한 마리가 그 울음으로

방안에 들앉아 있는
나를 불러 쌓더니

산과 들
얼붙은 푸나무들
어혈 다 풀었다 한다

‘출정(出定)’은 선정삼매에서 나오는 것을 뜻한다. 참선 수행승들은 동안거가 끝나고 출정할 때 제각기 한 소식을 가지고 나올 것이다.

깨달음은 무지와 오해에서 벗어나는 지혜이다. 나를 구속하는 모든 것을 풀고 해방이 된다. 얼어붙었던 나와의 모든 관계들이 모두가 잘 풀린 것이다. 본래 갈등과 원한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가 얼음이 녹듯이 풀린 것이다. 몸속에 엉긴 피 어혈이 풀린 것이다. 이것이 해탈이요 견성성불이다. 깨닫고 보면 부처가 아닌 중생이 없고, 사바세계가 그대로 부처님의 세계인 화엄세계이다. 이사무애(理事無)의 경지요, 사사무애(事事無)이다.

만물이 겨울 추위에서 풀리는 봄 경칩날에 절 마당 앞에서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 한 마리가 봄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 울고 있다. 시인은 이 모습을 보고 정진했던 동안거의 참선 수행을 떠올리며 시조 형식을 빌어 자신이 깨달은 오도의 경지를 나타낸 것이다.

2월11일(음력 정월대보름)이 동안거 해제일이다. 눈이 푸른 참선 수행승들이 석 달 열흘 100일 동안 깊은 산사의 선방에서 ‘무자 화두’를 들고 씨름하다 드디어 선방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날이다. 제각기 나름대로 깨달은 견처(見處) 하나씩 들고 나온다. 그 견처 소식이 해제법문이다. 불자들은 큰스님의 해제법문을 듣기 위해서 선문의 당간지주에 큰 깃발을 걸고 세상에 알린다. 올해 큰스님의 동안거 해제법문 내용은 무엇일까? 무슨 말씀을 할까? 일반 국민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다. 설악산 백담사 무금선원 오현(1932~현재) 큰스님의 해제법문이 가장 관심의 대상이다.

이 시는 3장 시조형식으로 된 동안거 깨달음의 해제법문이다. 독자는 “산과 들 얼붙은 푸나무들”의 무정(無情)설법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스님시인은 개구리의 울음을 통해서 “어혈 다 풀었다 한다” 오현 스님은 전통적인 한문 선시를 시조형식으로 한글화하여 누구든지 한글 선시를 쓸 수 있도록 개척한 최초의 시인이다.

본래 어혈이 모두 풀려 있었다. 누가 어혈을 만든 것도 스스로 어혈이 생긴 것도 아니다. 우리들의 번뇌망상도 본래 내 마음 속에는 없다. 스스로 망상을 피워서 없는 것을 만들어내서 헐떡거린다. 객진번뇌(客塵煩惱)이다. 깨달음이란 수행을 통해서 번뇌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속에 본래 번뇌가 없는 것임을 아는 것이다. 그러면 저절로 번뇌망상은 사라지고 만다.

올 동안거의 화두에 대한 큰스님의 해제법문은 현실을 떠난 허공에서 구름 잡는 형이상학적인 법어가 아니고, 오천만 국민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통쾌한 깨달음의 사구만금(四句萬金)의 일전어(一轉語)였으면 좋겠다. 고통 받고 있는 중생을 알아야 부처를 볼 수가 있고, 부처가 된다고 하였다. 현실을 떠난 진리는 없다. 연꽃은 높은 고원에서 피지 않고 더러운 연못 속에서 핀다.

최순실 국정 농단으로 좌절과 자괴감을 가진 국민의 어혈을 무엇으로 풀 것인가? 어떤 묘약이 멍울을 풀어 줄 수 있을까? 본래 우리에게는 어혈이 없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어리석고, 최순실이 탐욕스러워서 유사이래의 국정 농단이 발생했고, 대통령이 탄핵에 소추된 참담한 현실에 놓였다.

그 동안 겨우내 꽁꽁 얼어붙은 국민의 마음을 녹여내려면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지금 현재 우리나라 우리 국민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하는 지 그 답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정의구현, 공명정대, 만인평등, 발로참회, 용서화해가 아닐까? 공업(共業) 중생이다. 함께 풀어야 한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378호 / 2017년 2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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