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 전수민 작가

기자명 김영욱

‘올깨끼’ 수행자, 간화선을 그려내다

▲ 전수민, ‘염원’, 비단에 채색, 16×23cm, 2016.

소한(小寒)이다. 시작된 추위에 바람이 차다. 살갗 에는 어느 날, 나는 삼청동 한 카페의 문을 열었다. 시선 머문 창가로 걸어가 앳된 얼굴의 전수민 작가와 인사를 나누었다. 따뜻한 차로 몸을 녹이며 긴 시간 대화를 이어나갔다. 유쾌하고 유익한 시간을 담은 사담(私談)이었다.

전수민의 ‘염원(念願)’을 본 것은 신년 정초다. 정유년의 새해를 맞이하여 저마다의 기원을 담은 세화(歲畵)가 한옥갤러리에 걸려 있었다. 하이얀 바탕에 알록달록한 진채(眞彩)로 채색된 색의 향연이다. 색의 아름다움은 대비에 의해 구현된다. ‘염원’이 그랬다. 화사하고 다채로운 세화 사이에서 유독 고요하고 적막한 ‘현(玄)’을 지니고 있었다. 하여 나는 걸음을 멈췄다.

간들바람에 눈록의 버들잎이 살랑거린다. 이내 뜬 구름은 버들 바람으로 일렁거린다. 잠에 취한 것인지, 흐뭇한 것인지, 아니면 적막 속 상념에 잠긴 것인지. 버들잎 바람에 취해 구름 기대고 있는 파랑새다. 버들과 파랑새는 인연을 말한다. 그렇다면 버들 쥔 손의 주인은 누구인가? 수월관음일까, 아니면 작가 자신일까? 작가는 아득한 현(玄) 속에 담긴 유(有)·무(無)의 본질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어린 시절의 작가는 할머니를 따라 종종 산 속 절집과 선원을 다녔다고 한다. 그것이 불가 인연의 시작이었다. 순진무구한 어린 아이의 눈에 보인 사찰과 탑은 장엄해 보였고, 바람에 이는 풍경소리는 귀를 즐거이 했을 것이다. 멋모르고 따라 배운 108배는 힘들었고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성장하면서 ‘죄(罪)’라는 업보를 깨달았다고 말한다.

전수민의 작업은 업보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자 해탈의 한 방편이었다. 더불어 죄의 본질을 관조하는 자신에 대한 간화선이기도 하다.

“예술작품은 구체적인 것을 입증하려는 이성을 포기함으로써 생겨난다”고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말했다.

전수민 작가는 자신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실재하지 않는 허상의 화두를 던졌다. 관조하고 풀어냈다. 화두의 답은 버들잎 쥔 손으로 구현되었다. 불화에 보이는 예배대상의 형체를 가리고 배경의 경물만을 그려냄으로써 도상의 유무 본질을 읽어내고자 시도한 것이다. 본디 ‘유’와 ‘무’는 같은 곳에서 나왔으되 이름만 달리할 뿐이다.

따라서 작가는 버들잎 쥔 손이 수월관음인지, 나인지 개의치 않는다. 아득히 현묘한 공간 속에서 손에 들린 버들잎의 잔잔한 바람 아래 관조하는 파랑새를 통해 염원을 발원한 것이다. 염원은 업보의 해탈이고 해탈은 작가의 간화선이다. 

전수민은 28세의 젊은 작가이다. 2011년 건국대 학부시절 전통회화를 학습하고 2015년에 한성대대학원 회화과에 입학해 진채화를 전공하고 있다. 전통회화 기법의 토대 위에 불교적 색채로 풀어낸 작업은 흥미롭게 다가왔다. 2015년 조계종 주최 법난 공모전이 그 시작이었다. 작가는 대상의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화두를 던지며 불교적 소재를 통해 해답을 찾아나갔다. 아마도 ‘염원’ 또한 여러 해답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하다보니 불교미술계의 늦깨끼다. 하지만 작품에 담긴 끊임없는 화두는 순진한 올깨끼다. 천진난만이 마치 올깨끼의 무구(無垢)인 듯하다. 그래서 무진장(無盡藏)의 작업을 통해 화두를 관조하고 진언(眞言)에 다가가야 한다. 머지않아 작가의 염원을 담은 화두는 파랑새를 통해 우리에게 날아올 것이다. 같고 다른 마음으로 살아가는 불자들이여, 눈앞에 다가온 작가의 파랑새를 동반삼아 발심하여 구도의 길을 함께 감은 어떠한가.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378호 / 2017년 2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