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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지리산 천왕봉 법계사

하늘 아래 첫 산사서 촛불을 들다

▲ 동녘 하늘 여명이 아름답다. 법계사에서 조망하는 일출은 일품이다. 해는 붉게 떠올랐으나 앵글에는 담지 못했다. 일출 찰나, 매서운 한파에 카메라가 작동되지 않았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처음 일파만파로 퍼져 전국을 강타할 때, 그 강도만큼 국민들은 상실감에 젖어 넋을 놓았다. 자신이 선택한 대통령이 각종 비리 의혹에 휩싸여 있다는 실망감 때문이 아니었다. 한국 유수의 대기업의 등을 쳐 사리사욕을 채우려 한 최순실 때문만도 또한 아니었다. 상식이 통하는 다수보다 권력과 재력을 가진 소수를 위하고, 만인의 평등보다 불평등의 프리즘으로 차이가 아닌 차별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그래서 정의와 인권, 복지, 나아가 서민들의 삶마저도 몇몇 위정자들의 간교함에 언제든 차디찬 바다 아래로 수장되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목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국정농단 내상 입은 나그네도
침묵 속 넓은 품으로 안는 절
태고적 바람 안은 3층 석탑
범종 소리 얹어지니 더 장엄
푸른 남해-노인성도 조망관측

“이런 나라에 살고 있었나!”

이 사태의 중심에 선, 그래서 대통령 직무가 정지 된 피의자는 말한다. ‘난, 결백하다.’ 뇌물, 직권남용, 공무상 비밀 누설 등의 범죄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언들이 잇따르고 있어 대통령  탄핵이 확실시되어가는 상황에서, ‘세월호 7시간’ 동안 청와대서 무엇을 했는지조차 속 시원히 말 못하는 피의자는 또 말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한마디로 거짓말로 쌓아올린 커다란 산이자 가공의 산이다. 오래전부터 누군가 기획하고 관리한 것 같다.’

“정말, 이런 나라에 살고 있었나!!”

▲ 법계사 범종의 무게는 1080관이다. 시방세계 유무정의 번뇌를 걷어내려는 발원이 담겨 있는 듯하다.

잠시, 촛불을 내려놓고 산으로 간다. 분노를 삭이며 평정의 심연으로 침잠해 보고자 잠시나마 속계를 떠나 법계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지리산 천왕봉 5리 길 아래의 해발 1400m 부근에 법계사(法界寺)가 동남쪽을 향해 앉아 있다고 했다. 그곳에서라면 붉게 떠오르는 해를 안을 수 있고, 하늘이 허락한다면 남해 바다도 조망할 수 있으리라!

새벽 4시. 산에 드는 이 아무도 없다. 외롭지만은 않다. 달 하나 밤하늘에 또렷이 박혀 있고, 무수한 별들이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을 달려와 곁에 서 있지 않은가! 2시간 남짓 오르다 뒤를 돌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노인성(老人星)이 보이려나?

▲ 저 일주문에 들어서는 순간 속계를 벗어나 법계에 들어서는 셈이다.

지구에서 310광년 떨어져 있는 카노푸스(Canopus)라는 별을 노인성이라 불러 왔다. 육안 관측 가능한 하늘에서 태양을 제외하면 시리우스 다음으로 밝은 빛을 내는 별임에도 한국과 중국, 일본을 포함한 동양권 국가에서는 보기 어렵다고 한다. 그 별을 남해 보리암, 제주 존자암, 그리고 지리산 법계사에서 볼 수 있다는 전언을 들은 터이다.

중국에서는 사람의 수명을 관장하는 성좌로 여겨 이 별을 보면 오래 산다고 믿었는데 ‘노인성’이라는 이름은 여기서 비롯됐다. 전쟁이 발발하거나 나라가 극심한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면 보이지 않다가 평화가 찾아오면 보인다고도 한다. 그 별, 지금 떠 있다면 광장의 함성은 이내 희망의 메아리로 돌아올 터이다.

허나, 이내 걸음을 재촉한다. 노인성은 지평선이나 수평선 부근에서나 관측 가능하다. 이제 산 중턱을 넘었을 터인데, 천왕봉에서도 날씨가 좋아야 보인다는 남해가 보이겠는가?

▲ 법계사는 천왕봉 아래 앉아 있다.

조선 영남사림파의 핵심인물이자 사관(史官)을 보았던 김일손은 훈구파의 정치모략으로 극형에 처해진 인물이다. 그러나 사관에 따른 직필(直筆) 정신만은 후학들의 사표로 남아 있다. 최석기 저서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에 따르면 김일손도 봄날 이 길을 걸어 법계사로 향했다.

‘대 숲 속을 헤쳐 가니 산이 모두 돌이다. 칡덩굴을 더위잡고 굴면서 올라가 숨 가쁘게 십여 리를 걸어서 한 높은 고개를 오르니,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으므로, 그 별경계를 기뻐하여 꽃 하나를 꺾어서 머리에 꽂고 따라오는 일행에게도 모두 꽂고 가게 하였다.’

산의 정취에 취해 머리에 봄을 얹고 산을 오르는 그의 모습에서 호방함과 순진함이 동시에 읽힌다. 진실한 사람이었기에 직필의 힘도 축적하고 있었을 것이다.  

 
▲ 일출 빛이 세존봉을 넘어 절로 들어차고 있다.

법계사는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가 통일신라 때 부처님 사리를 봉안하며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잦은 방화로 소실됐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며 법당 건물이 다시 하나둘씩 들어섰다. 방화 주범은 일본이다.

고려 말 우왕(禑王) 때인 1380년 2만여명의 왜구가 500여척의 군선과 함께 진포(군산)에 상륙했다. 이때 최무선이 화포로 무장한 군선 40여척으로 왜구의 군선을 격퇴시켰으니 진포대첩이다. 퇴로를 잃은 왜구들은 해안 마을을 거쳐 함양, 남원 등의 내륙으로 들어와 약탈을 일삼았는데 그때 수장이 ‘아지발도’다.

▲ 적멸보궁의 아침.

일설에 따르면 그 아지발도가 법계사에 불을 질렀다고 한다. 장수가 고지까지 올라오기는 만무하니 병사를 시켰을 터이다. 또 하나의 설이 있다. 아지발도는 남원의 운봉 황산에서 이성계와 이지란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 이성계와 연관된 칼바위도 저 아래에 서 있다. 적장 잃은 왜구들은 지리멸렬해지며 패퇴하니 황산대첩이다. 당시 왜구들은 도망을 치면서도 법계사에 올라 불을 질렀다고도 한다. 왜구들이 법계사에 천착한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과 일본의 민가에 전해져 내려오는 속설이 있다.

‘법계사가 흥하면 일본이 망한다!’

고려 말에 소실된 법계사는 1405년 정심(正心)선사에 의해 중건됐는데 구한말 일본군에 의해 또 다시 불태워졌다. 의병의 근거지라는 게 이유였다. 지리산 천왕봉과 법계사를 잇는 길목에서 쇠말뚝이 발견됐다. 혈맥을 끊어 놓으려 일본인들이 박아 놓았던 것인데, 2005년과 2006년에 걸쳐 뽑혀졌다.

현재 법계사는 나날이 흥하고 있다. 적멸보궁과 극락전, 산신각, 요사채를 안고 있는 법계사는 2014년 1080관(4050Kg)의 범종도 걸었다. 사격을 갖춘 절이니 이제 하늘 아래 첫 암자가 아니라 하늘 아래 첫 산사라 해야 맞다.

▲ 산봉우리들이 파도처럼 밀려가는 듯하다. 오른쪽 높게 솟은 봉오리가 산청의 금오산인 듯싶다. 그 너머가 남해다.

법계사 범종 무게가 1080관인 이유는 무엇일까? 1080은 108의 10배인 법수다. 범종 소리 들을 때마다 108번뇌 10번 닦으라는 메시지일까? 어쩌면 이 종소리로 시방세계(十方世界)에 존재하는 유무정의 108번뇌마저도 다 사라지라는 염원의 메시지일수도 있겠다.

법계사다. 노인성 찾아 볼 요량으로 남쪽 하늘 끝을 바라보았다. 헛일이다. 여명이 밝아오자 별들은 제 빛을 거두고 있었다. 그 별은 떠 있었을까?

적멸보궁을 참배한 후 곧바로 고려 탑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보물 473호) 앞으로 다가가 합장을 올렸다. 큰 바위에 별다른 장식도 없이 여여하게 앉아 있다. 천왕봉에서 내려 온 바람을 저 탑은 태고적부터 안아 저 아래 사하촌과 남해로 흘려보냈다. 이제 그 바람에 범종 소리까지 얹을 수 있으니 법계 공간은 더 장엄해질 것이다.

하루의 첫 해가 붉게 떠오른다! 법계에 내려앉은 붉은 빛이 속계의 어둠을 걷어낼 것이다. 한반도 땅에 드리워진 어둠도 결국은 우리가 들고 있는 촛불에 의해 걷힐 것이다.

 
그 누구도 내상 입은 국민들을 치유해 줄 수 없었다. 하여, 시민들은 스스로 촛불을 들었고, 그 촛불은 천만 불길로 타올랐다.

‘우리는 안다, 세상은 달라져 / 이제 우리가 힘을 가졌다는 것을, / 땀과 피와 싸움으로 얻은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다시는 빼앗기지 않을 힘을 가졌다는 것을. / 이게 나라냐, 라는 한탄 속에 밴 나라 사랑도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이제, 우리 손에는 낫 대신 몽둥이 대신 촛불이 들렸다. / 쇠파이프 대신 짱돌 대신 촛불이 들렸다.’(시집 ‘천만 촛불 바다’의 신경림 ‘원무(圓舞)’ 중)

시민혁명의 신호탄이었고, 한국사회 대변혁의 염원을 담은 빛이다. 속계와 법계를 관통하는 빛이다.

채문기 본지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도·움·말]

 

 


길라잡이

들머리는 지리산 중산리 탐방 안내소. 탐방 안내소서 10분 남짓 오르다 왼쪽으로 통천길 표지판이 보이면 그 길로 들어선다. 칼바위를 지나면 천왕봉 법계사와 장터목대피소로 나눠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서 법계사까지의 2.1km 구간은 가파르기 때문에 2시간 정도 걸린다. 등산 시간은 3시간30분. 하산은 2시간. 아이젠 지참은 필수. 법계사서 천왕봉까지 오를 경우 2시간은 잡아야 한다.

[1379호 / 2017년 2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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