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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제 봉은사 시설과장-하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건 신심

 
신혼에도 집에 들어가는 날보다 봉은사에서 먹고 자는 날이 더 많았다. 일요일이 가장 바쁘고, 남들 노는 날이면 더 북적이는 곳이 봉은사였다. 딸 아이 둘을 뒀지만 휴일에도 아이들과 놀러 한 번 갈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집안 어른 환갑잔치가 있어 경북 고령에 내려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그날 영암 스님 방의 보일러가 고장을 일으킨 것이다. 다급하게 연락이 왔다. 잔치는 보지도 못하고 그 길로 올라와야 했다. 그뿐이 아니다. 설날 아침 봉암사 선방에서 보일러가 고장 났다며 급히 와 줄 수 있겠냐는 연락이 왔다. 설날이니 다른 기술자를 부를 수도 없고, 오죽 다급하면 서울에 있는 내게 연락이 왔을까 싶었다. 이곳저곳에 수소문을 해 가까스로 새 보일러를 구해 차에 싣고 그 길로 봉암사로 갔다. 눈이 잔뜩 쌓인 산중 선방은 냉골이었다. 보일러를 갖고 들어서는 나를 보더니 수좌스님들이 “이제 살았다”며 기뻐했다.

절에서 먹고 자는 경우 다반사
휴일도 가족과 시간 못 보내
“내 집 일 하는데 이유 있나”

집안 식구들이야 불만이 많았겠지만 기뻐하는 스님들의 모습을 볼 때 느끼는 보람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났을 때는 현장으로 달려가 구조대에게 라면을 끓여줬고, 강원도 진부에서 수해가 났을 때도 15일 동안 5000여명 분의 밥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며칠씩 집에 못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봉은사를 떠나볼까’라는 생각을 해 본적도 있다. 특히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하나 둘, 태어나자 경제적인 고민이 커졌다. 하지만 봉은사를 나가려고 맘을 먹으면 곧바로 건강에 이상이 왔다. 이직을 결심했다가도 ‘몸이 좀 나아지면 생각해 봐야겠다’며 넘어가곤 했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는 사이 ‘봉은사가 내 집’이라 생각이 더욱 커졌다.

봉은사와 인연이 벌써 37년이나 됐다. 돌이켜 생각해봐도 대웅전 복원불사를 회향했을 때가 가장 기뻤고 봉은사 뒷산에 심었던 모종들이 큰 나무로 자라난 것이 가장 큰 보람이다. 처음 봉은사에 발을 들였을 때와 비교해 보면 북극보전과 영산전을 제외하고는 어느 것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봉은사가 내 집처럼 느껴지는 것은 변함이 없다.

▲ 2010년 조광제 과장은 30년 장기근속한 공로로 표창장을 받았다.

2009년 부처님오신날에는 총무원장스님으로부터 표창장도 받았고 2010년엔 장기근속 공로로 상장도 받았다. 30년 근속상으로 사중에서 해외여행을 보내줘 아내와 함께 태국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여전히 나는 부처님법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저 마음 답답한 일이 있으면 법당에 들어가 잠시 앉아있다 나오는 것이 고작이다. 아마 출가를 했어도 그리 훌륭한 수행자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서든 누가 스님이나 불교에 대해 험담을 하면 듣기 싫고 그냥 넘어가질 못하니 이런 것이 불자인가 싶기도 하다.

이제 정년퇴임도 얼마 남지 않았다. 퇴임 후에는 고향 합천에 내려가 허름한 시골집을 짓고 농사나 지으며 살고 싶다. 그 전까지는 내게 주어지는 일을 열심히 할 뿐이다. 서울 시내에서 나 같이 넓은 마당을 갖은 집에 사는 이는 없을 테니 말이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379호 / 2017년 2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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