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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평등한 삶의 가치-중

“팔경법 들먹이며 으스대는 비구는 참 수행자일까요?”

▲ 대만의 비구니스님과 재가불자들이 불광산 선방에서 명상수행을 하고 있다.대만 불광산 제공

“부처님께서 이모가 석가족 여성 오백 명을 이끌고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는 것을 허락하였지만 부처님 열반 후 제자들이 경전을 결집하였는데 우리 남성 비구들이 무슨 원인에서인지 여성을 경시하는 ‘팔경법’을 제정하여서 여성의 지위를 굳이 낮추고자 하였습니다. 공경하면서 마음으로 따르면 남녀의 구분이 중요하지 않은 법입니다. ”

빈승은 청소년 시기에 특히 생물학에 관심을 많이 가져 모든 생물은 태어나서 자라고 번식하고 사망하는 현상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돼지, 말, 소, 양 등 동물과 생선, 새우 등 해산물을 먹지 않는 것은 그것들에게 태어나고 자라서 번식하고 사망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푸른잎 채소와 뿌리채소, 과실류 역시 자라고 번식하고 사망하는 현상이 있는데 어찌하여 먹는 것인가요? 저는 많은 분들에게 물었지만 의혹을 풀 수 없었습니다.

동물과 식물에는 심식(心識)이 있고 없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점차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물에게는 심식이 있어서 당신이 먹으려고 하면 그 동물은 무서워서 두려움으로 몸부림칩니다. 동물이 태어나서 자라고 번식하여 사망에 이르기까지 심식의 활동이 있기에 먹으면 안됩니다. 식물에는 심식이 없기에 생장하고 번식하여 사망하는 현상은 단지 물리적인 반응인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생명을 말할 때 ‘심식’에서부터 말합니다.

수십 년 이래로, 저는 세간에는 넓은 의미의 생명과 좁은 의미의 생명이 있다고 여겨왔습니다. 좁은 의미로는 위에서 말한 동식물처럼 심식으로 구별하여 판단하며 넓은 의미의 생명은 우주만유의 모든 생존이 다 생명인 것으로, 넓고 큰마음을 내어서 모든 우주만유의 함께 존재하는 생명 모두가 평등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저는 삼보귀의 수계법회를 자주 봉행했었는데 오랜 기간에 걸쳐서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오계를 수지했지만 빈승은 이 사람들을 모두 저의 제자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참가자들에게 삼보에 귀의함은 불교를 믿고 따르는 것으로, 나는 단지 여러분들을 위해서 수계 증명하였을 뿐이라고 말해왔습니다. 1000여명의 출가제자들에게도 저는 단지 ‘삼할의 사제관계이고 칠할의 도반’이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제자 가운데는 음악에 뛰어나고 목소리도 좋아서 범패독송 소리가 저보다 월등하기도 하고 미술과 만화, 서예 등에 뛰어나서 저보다 훌륭한 제자들도 있고 영어와 일어 등 갖가지 언어에 뛰어나서 저를 능가하는 제자들도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특기와 장점이 있기 마련으로 자신에게 장기가 있다고 남의 단점을 우습게 보면 안됩니다. 장단점은 각각 그 쓰임새가 달리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평등이란 관념을 세우기에는 매우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중국은 예로부터 남자들이 아내와 첩을 여러 명 둘 수 있었고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여성들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측천무후는 본래 아주 뛰어난 여 황제였지만 단지 여성이었기 때문에 1000년이 넘도록 조롱과 비난을 받아왔습니다.

빈승은 불광산을 세우는 과정에서 남녀평등을 주장하였습니다. 과거 불교에서 남성은 앞자리 여성은 뒷자리에 앉고 남성은 가운데 여성은 옆자리에 있는 것이 흔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본성적인 관념에서 이러해서는 안된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불광산 교단에서는 법당에서의 법회, 발우공양 등에서 남성대중은 동쪽 편에 여성대중은 서쪽 편으로, 동서 각각의 위치에 자리하여 앞뒤로 설 필요가 없으니 평등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성취하는데 남녀의 차이는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러한 이념을 펼치기까지는 매우 쉽지 않았습니다. 창건초기, 신도가 부처님께 과일공양을 올리면 “부처님께 올린 과일을 내려서 어떻게 대중들에게 나누어주느냐?”고 물으면 일부 남성대중이 얼른 나서서 하는 말이 “우리 남성대중들에게 나누어 주어야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남성대중들의 이러한 우월감에 대해서 심히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요사채가 새로 지어지면 “이 건물에 누가 먼저 들어가서 살면 좋을까?”라고 물어도 남성대중들은 항상 “우리 남성대중들이 먼저 살아야지요”라고 말했습니다. 남성대중은 무슨 근거로 우선 조건을 내세우는 것일까요? 이 건물 대부분의 불사금과 건축경비는 모두 여성신도가 내어놓은 것입니다. 당신은 여성대중들을 전혀 존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서양에서 여성은 천사, 평화의 여신으로 비유되면서 여성을 위해서 신사는 길을 양보하고 여성을 먼저 자리에 앉도록 합니다. 심지어 국제적인 사교예절에서 여성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남성이 악수를 할 수 있으며 이로운 점을 먼저 여성들에게 양보하고 비상시에도 남성은 부녀자와 어린이를 먼저 배려하는데 이러한 것은 모두 여권 존중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중국인은 여성을 어미호랑이, 암탉, 부엌데기 등으로 봤습니다. 아름다운 여성이라도 전갈미인이라고 하였는데 오랜 세월 속에서 이러한 것들은 남성이 여성을 비하해온 부끄러운 언어입니다. 특히 불교에서는 누군가 계율을 지키지 않고 음식을 함부로 먹어도 잘못이라고 하지 않으면서 누군가 여성과 조금이라도 왕래를 하면 가장 큰 모욕으로 여기고 최대한으로 추악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부부가 같이 절에 오면 절의 지객 스님은 남편은 동쪽에 위치한 객당으로 데려가고 그 부인은 서쪽에 위치한 객당으로 보내곤 합니다. 부부간 윤리적이고 합법적인 행위는 부처님께서도 허락하셨는데 그 사람은 왜 그들을 갈라놓으려는 것일까요?

저는 남녀 똑같이 불도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순(印順) 스님은 ‘불법개론’에서 “네 가지 출신계급 모두가 다 평등하여 잘나고 못난 차별의 다름이 없다(四種姓者皆悉平等 無有勝如差別之異)”는 ‘아함경’의 부처님 말씀을 인용하였는데 재력적인 면에서나 법률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인 면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여인소생설(女人所生說)’과 ‘수업수보(隨業受報) 수도해탈(修道解脫)’로 말하여도 사성(四姓)은 완전히 평등한 것으로 사성은 단지 직업적인 나뉨일 뿐이어서 불도를 이루는 데 있어서나 지혜해탈에 있어서 남녀는 구별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부처님께 절을 할 때 부처님이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분별하지 않으며 보살상에 예를 올릴 때에도 남성보살인지 여성보살인지 구분하지 않으면서도 어찌하여 여성에게는 굳이 구분을 두고 경시하는 것일까요? 관세음보살은 남성일까요 여성일까요? 만약 남성이면 왜 여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나요? 만약 여성이라면 큰스님이고 비구인 당신도 예를 올리고 있지 않습니까? 불보살이기에 남녀의 구분이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모가 석가족 여성 오백 명을 이끌고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는 것을 허락하였지만 부처님 열반 후 제자들이 경전을 결집하였는데 우리 남성 비구들이 무슨 원인에서인지 여성을 경시하는 ‘팔경법’을 제정하여서 여성의 지위를 굳이 낮추고자 하였습니다. 공경하면서 마음으로 따르면 남녀의 구분이 중요하지 않은 법입니다.

불광산 창건 초기 열악한 군인대우에 공군 직업군인이 “다섯 명의 자녀를 키울 수 없다”면서 갓 지어진 불광산 육아원에 아이들을 맡기고 저에게 보살펴달라고 하였습니다. 1~2년이 채 안되어 어디에서 출가했는지 그 사람이 스님의 모습으로 불광산에 아이들을 보러 왔습니다.

이는 사람 인정으로 당연한 일이라서 우리도 그 사람을 정중하게 대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 사람을 접대하였을 때 그 사람은 저에게 “성운 스님! 스님께 건의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여기 불광산의 자혜, 자용 등 비구니가 저를 보고서도 절을 하지 않던데 그러면 팔경법에 위배되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저는 이 말을 듣고 매우 못마땅하게 여겨졌습니다. 자혜, 자용 스님은 일본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불법을 배우고 출가한지 이미 10여년이 된 비구니 중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삭발하여 중년 출가한 사내가 자기에게 절을 하라고 한다면 그러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불교에는 물론 깨어있는 비구대덕도 있지만 오만하고 공부를 갓 시작해 삭발한 사내들도 일부 있으니 실로 장단을 맞춰주기 어렵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공경이라는 것은 남이 기꺼이 원하는 마음으로 기쁘고 달가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 우리를 공경하라고 남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에서의 홍법 과정을 되돌아보면 빈승이 대만에 처음 왔을 때 보았던 비구니들은 언제나 절에서 밥을 짓고 차를 따르고 있고 재가 여성불자들은 환경정리 청소하는 것만 보아 왔는데 당시 저는 왜 저들은 다들 뒤에서 하는 일만 하고 있을까 하면서 아주 이상하게 생각했었습니다.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379호 / 2017년 2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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