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젋음의 특권을 수행에 투자하자

기자명 원빈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7.02.20 14:03
  • 수정 2017.02.20 14:04
  • 댓글 0

“아~ 여기도 절 하나 있으면 진짜 좋겠네요."

제주도 여행하며 만난 ‘붕암’
스러지는 육체를 암자에 비유
젊음 교만한 자신에 부끄러움
미루지 말고 지금 바로 수행

지찬 스님과 제주도 자전거 여행 중 우도를 들어가게 됐습니다. 우도를 한 바퀴 돌아보며 온 바다를 다 둘러보고 우도봉도 올라가보고는 그 아름다움에 감동해서 했던 말입니다.

해안가를 다 돌아보는데 2시간 정도 소요된 후 점심을 먹고 나니 갈등을 하게 되더군요. 배를 타고 제주도로 나갈까… 아니면 해안가가 아닌 우도 마을 중앙을 자전거로 한 바퀴 더 돌까… 결국 우도의 중간 길로 자전거 라이딩을 시작했습니다.

우도는 땅콩이 특산물인지 마을 어르신들이 여기저기서 땅콩을 탈곡하고 있었고, 마을 초등학생들이 학교가 끝났는지 재잘재잘 뛰어다니더군요. 이곳저곳에 풀려진 개들과 묶여 있는 말 그리고 미로 같이 쭉 연결된 제주도 돌담들이 서울촌놈들에게는 낯설지만 신비한 풍경을 제공했습니다.

“이야~"
“우와~"

감탄사를 연발하며 우도를 탐방하던 우리들 앞에 나타난 현판 하나.

‘금강사’

“우와~ 진짜 여기 절이 있네요^^"

너무 반가운 마음에 부랴부랴 자전거를 끌고 절로 들어가 대웅전에 참배를 하고는 여기저기를 둘러봤습니다. 우도봉의 등대와 아름답게 매치된 대웅전이 제 마음을 이끌더군요. 하지만 불쑥 찾아온 객중 노릇을 하기에는 금강사 스님께 죄송해서 소리 없이 돌아가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 때 마법처럼 다실 문이 열리고 금강사 스님이 활짝 웃으며 반갑게 나오시더군요.

“스님들~ 어디서 오셨어요? 차 한잔 하세요!"

그렇게 우도 첫 방문에 우도에서의 템플스테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도 금강사는 태고종 절인데 주지스님은 덕해 스님입니다. 다실을 꽉 채우고 있는 아기자기한 작품들이 인상적인 예술가 스님이신데요. 불쑥 찾아간 객중들에게 귀한 차와 커피 그리고 맛있는 공양과 최고의 객실을 내주셨습니다.

밤 늦게까지 나눈 차담은 제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요. 스님이 본인이 오랫동안 선방에 다니시며 수행하시던 이야기를 해주실 때 특히 마음에 감동이 있었습니다. 선방에서 몇 자 끄적이셨다는 글로 만든 다포를 주셨는데 담백한 글귀 마지막에 “붕암崩庵에서 사문 덕해” 이렇게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스님께 질문했습니다.

“스님 붕암은 어디 있는 암자에요?"

알고 나니 참 바보 같은 질문이더군요. 이것은 몇 일전 있었던 실수와 똑같이 무식이 드러나는 질문이었는데요.

제주도 해안가를 돌다가 팻말 하나를 만났습니다.

‘용두암’

제가 지찬스 님에게 말했죠.

“스님, 용두암이라는 절이 있나봐요. 우리 거기 가보죠."

용두암에가서 지찬스님과 한참을 웃었는데… 비슷한 실수를 붕암에서 저질렀습니다. 덕해 스님이 자상하게 설명해주시길 붕암은 암자가 아니라 무너져가는 자신의 육체를 작은 암자로 비유해서 붙인 표현이라고 합니다. 젊은 시절 패기 넘치게 정진하시던 수좌가 세월의 무상함을 육체로써 느껴감을 표현한 단어였던 것이죠.

그 설법을 듣는 순간, 스스로의 무식함이 드러남이 창피함과 교차해 젊음을 교만하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 역시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곧 무너질 육체를 이끌고 게으름 피고 있는 내 모습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죠.

부처님은 세납 35세에 일체지의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합니다. 이제 제게는 2년도 채 남지 않은 그 때까지 전 부처님의 발끝만치라도 쫓아갈 수 있는 수행인연을 지을 수 있을까요? 오늘도 참 부끄럽고 또 부끄럽습니다.

젊다는 것은 특권이 분명합니다. 실수가 용납되기도 하고, 어느 정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느낌이 있는데 그것은 ‘지나간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만큼 짧게 느껴진다는 것’ 입니다. 짧은 것이 분명한 이 젊음의 특권을 수행을 위해 투자해야겠죠.

▲ 원빈 스님
행복명상 지도법사
죽음의 염라왕은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때가 되면 우리를 데리러 옵니다.

‘저놈이 아직 수행 조금 밖에 못했으니 기다려주자.’

이런 경우는 결코 없죠. 그러니 내년부터, 다음달부터, 내일부터가 아닌 지금 이 순간 우리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을 수행의 시간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스스로가 붕암임을 억념하며 더욱 용맹하게 수행에 박차를 가하죠.

원빈 스님 cckensin@hanmail.net
 

 

 [1380호 / 2017년 2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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