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3. 평등한 삶의 가치-하

“불광산 비구니들의 홍법역사는 경이롭습니다”

▲ 불광산의 개산을 주도한 성운 대사와 비구니 제자들.대만 불광산 제공

“‘불광대사전’ ‘불광대장경’ ‘세계불교미술도설대사전’ 등이 모두 비구니들의 손을 거쳐서 편집되고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이 외에도 많은 비구니들이 대학에서 교수로 있고 중고등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을 하고 있으며 신문사, TV방송국, 독서회, 감옥포교 등 다른 영역에서 자신이 가진 장기를 발휘하고 있는 경우는 더욱 많습니다. 사실 역사적으로도 성취를 이룬 비구니들이 매우 많습니다. ”

여러 비구니들이 홍법역사에서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나중에 불광산을 창건하면서 빈승은 출가자와 재가 여성들을 각종 불교사업에 투입하면서 부처님의 평등교의를 실천하고자 꾸준히 애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보고 ‘여성 업무팀 팀장’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지만 저는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이 여성제자들도 자기 역할을 잘 해내면서 불법을 널리 펼치는 여정에서 수많은 역사를 써내게 되었습니다. ‘불광대사전’ ‘불광대장경’ ‘세계불교미술도설대사전’ 등이 모두 비구니들의 손을 거쳐서 편집되고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이 외에도 많은 비구니들이 대학에서 교수로 있고 중고등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을 하고 있으며 신문사, TV방송국, 독서회, 감옥포교 등 다른 영역에서 자신이 가진 장기를 발휘하고 있는 경우는 더욱 많습니다.

사실 역사적으로도 성취를 이룬 비구니들이 매우 많습니다. 부처님 시대에 ‘지혜제일’의 선상(善相) 비구니, ‘신통제일’의 연화 비구니 등이 있고 중국으로 불교가 전래된 이후 강소성 쉬저우(徐州) 죽림사(竹林寺)에 정검(淨檢) 비구니는 중국에서 첫 번째 비구니 승단을 세웠습니다. 절강성 후저우(湖州) 백작산(白雀山) 도적총지(道迹總持) 비구니는 남조시대 양무제의 공주로 달마 스님의 제자인데 “나의 살을 받았다”는 인증을 달마조사로부터 받기도 했습니다. 2015년 4월, 중국 후저우 법화사(法華寺) 인가(印可) 스님이 육신불로 남아있는 총지 비구니를 위해서 보탑을 지어 봉안하고자 기공법회에 저를 초청하였고 저는 기꺼이 참석하였습니다. 현지 당서기와 시장 등 역시 적극 참여하였는데 이는 중국대륙 비구니 스님의 명예이기도 했습니다. 총지비구니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전해오고 있기에 저는 “총지비구니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로세. 진신전을 새롭게 지으니 세상 사람을 널리 보살피시네.(總持比丘尼 觀世音化身 重建身殿 普蔭世間人)”라고 법문을 했습니다.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우수한 비구니들로 인해 저는 불광산 불타기념관 보리광장 양쪽으로 18분의 나한님을 모셨는데 그 중 여성 나한이 세 분 계십니다. 사실 부처님 시대에 나한을 증득한 여성이 어찌 수백 수천명뿐이겠습니까?

전에 어느 기자로부터 “스님! 스님 제자들 가운데는 여성제자들이 남성제자들보다 더 많은 것 같아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유머를 담아서 “제 눈에는 남성도 보이지 않고 여성도 보이지 않고 단지 출가 스님만 보이고 부처님의 진리만 보이네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공경하면서 마음으로 따르면 남녀의 구분이 중요하지 않은 법입니다.

불교에서 출가와 재가, 승가와 신도 사이는 비록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전후가 있을 수 있지만 불성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부대중이 공유하고 승가와 신도가 평등하다(四衆共有 僧信平等)”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창설한 불학원은 불교를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재가와 출가를 막론하고 남녀가 모두 입학해서 공부할 수 있습니다. 남성은 남중학부(男衆學部)에서 공부하고 여성은 여중학부(女衆學部)에서 공부하는데 승속 이부대중의 평등한 권익을 보장합니다. 저는 또한 불광회 회원들에게 “승가와 신도 이부대중은 마치 사람의 두 팔과도 같고 새의 두 날개와도 같은 것으로 불법을 널리 펼쳐서 생명을 이롭게 하는 책임을 함께 짊어져야 한다(僧信二衆 如人之雙臂 鳥之雙翼 要共同擔負弘 法利生的責任)”라고 말하였습니다.

마치 근대 손장청양(孫張淸揚 : 손입인 장군의 부인. 손입인 장군은 중국 국민당의 유명한 장군이었으나 정변혐의를 받고 장개석에 의해 33년간 연금되었다가 장개석 아들 장경국 사망 후 자유를 얻었고 모략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인물. 역자 주)여사가 당초에 장개석 부인 송미령이 예수교를 믿으라는 권유를 거절하고 신앙적인 논쟁을 하면서 평생 불교를 지키고자 최선을 다했던 것과 같습니다. 대만의 첫 번째 ‘대정장’은 바로 손부인이 패물을 팔아 일본에서부터 모셔와 복사하여 유통시킨 것입니다. 손부인 왕생 이후 유골을 불광산에 모셨는데 우리는 손부인을 존중하고자 탑을 지어서 기념하였습니다. 비록 여성이지만 불교를 보호하고 지키고자 하는 용기는 그 누구보다 못하지 않았습니다.

중화민족의 문화 속에서도 여성이 남성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든다면 ‘전국책(戰國策)’에 조나라(趙) 위후(威后)가 나라를 돌보게 되자 제나라(齊)에서 축하하고자 사신을 보내 왔습니다. 조위후는 사신을 보고 “제나라의 수확은 어떠한지요? 제나라의 백성들은 다들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나요? 제나라의 국왕께서는 국정을 잘 살피시고 건강하신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제나라 사신은 매우 불쾌하여 “어찌하여 우리나라 국왕을 가장 나중에 물으십니까? 먼저 천한 것을 물으시고 귀한 것을 나중에 물으실 수 있는 것입니까?”라고 조위후에게 물었습니다. 조위후는 “이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만약 수확이 없으면 백성이 어찌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며 만약 백성이 없으면 어떻게 국왕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방금 내가 물은 말은 아주 순서에 맞게 안부를 물은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중국 2000여년 전 여성이 이렇게 민주적이고 평등한 관념과 사상을 가졌다는 것에 남성들은 어찌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마치 중국 신화전설에서 반고(盤古)가 하늘과 땅을 갈라 만들고 여와(女)가 돌을 골라 하늘의 구멍을 메운 것처럼 남녀가 똑같이 기여를 하지 않았습니까? ‘법화경’에 8세 용녀가 성불하였고 7세 묘혜동녀가 설법을 하니 일곱 부처님의 스승인 문수보살도 정례를 올립니다. ‘화엄경’에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참방하는데 그 가운데는 여러 명의 여성들이 있으며 그 분들 모두 불법에 대해서 뛰어난 증득을 몸소 이루신 큰 선지식들입니다.

다시 역사를 돌아보면 여성 가운데 나라를 사랑하고 불교를 지킨 영웅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부처님 시대에 ‘파사닉왕’의 말리부인은 황궁을 도량으로 삼아 경전을 강설하고 설법하여 불법을 펼치면서 민간의 행사에 동참하였습니다. 승만부인은 황후의 신분으로 교육을 펼쳐 어린 인재를 키우고 대승불법을 널리 알렸습니다. 아쇼카왕은 딸 승가밀다를 스리랑카로 보내 출가시켜 비구니 승단을 세워 스리랑카 불교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당나라 문성공주는 불교를 믿었는데 멀리 티베트로 시집을 가서도 당나라문화를 티베트지역에 널리 알렸습니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만년에 포악한 성질로 대신을 살해하고 억울한 누명을 씌웠는데 다행히도 불심이 깊은 마황후가 가능한 살생을 하지 말 것을 권유하면서 억울한 옥살이를 면한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이렇게도 많은 위대한 여성들의 공헌은 모두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습니다. 이 많은 여성들을 남자보다 못하다고 여기면서 우리가 이들을 우습게 볼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이 현대사회에서 남녀가 평등함은 영원불변의 이치입니다. 서양세계의 영국 엘리자베스여왕과 독일 메르켈 총리, 미국 전 국무장관 힐러리부터 동양의 미얀마 인권운동가 아웅산수치 등은 현재 세계 각 나라의 지도자들과 동등한 권력과 지위에 있는 우수한 여성으로 우리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과 기타 많은 여성정치인들도 절대 뒤지지 않고 있습니다.

양계초(梁啓超 1873~1929, 중국의 근대 사상가이자, 개혁가, 문학가) 선생은 자신의 저술 ‘음빙실전집(飲冰室全集)’에서 불교의 이치 가운데 여섯 가지가 자신의 마음을 끌리게 하여 자신이 불교를 신앙한다고 특별히 언급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불교 신앙은 평등하여 차별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입니다.

이렇게도 많은 우수한 여성들이 오늘날에도 불법을 위하고 진리를 위하고 사회를 위하고 나라를 위해 기여하는 정신으로 수행하고 있는데 우리가 어찌 여전히 과거 남존여비 시대의 남자만 잘났다는 낙오된 관념 속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종족평등의 진리 명언을 몸으로 느끼고 부처님의 뜻을 절대 거슬러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자신이 재가자보다 높다고 여기거나 남성이 여성보다 높다는 불평등한 사상을 갖고 있는 안하무인의 오만한 출가자가 아직 있는 것을 보게 되면 이는 낙오되고 꼴불견인 것으로 있어서는 안 될 언행이자 사고방식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금강경’에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이라고 하였는데 우리는 아직도 상(相)에 집착해서 우습게 봐야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약란생, 약태생, 약습생, 약화생……, 나는 모두를 다 무여열반에 들게하여 생사유전을 벗어나게 하리라. 이렇듯 셀 수 없이 무수한 중생들을 멸도시켰지만 실제로는 멸도를 얻은 중생이란 없다.(若卵生 若胎生 若濕生 若化生……,我皆令入無餘涅槃而滅度之 如是滅度無量無數無邊衆生 而實無衆生得滅度者…….)”라고 하셨습니다. 이 단락의 경전 문구는 실로 우리들 불제자가 지극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생각하고 생각해야 할 부분입니다.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380호 / 2017년 2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