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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내면의 불꽃을 비춰주는 것들

기자명 재마 스님

가끔은 의도적이라도 크게 웃어보세요

정월대보름은 전국 선원에서 동안거를 해제하는 날입니다. 마음의 본성을 찾는 단호하고 치열한 집중수행을 갈무리한 수행자들이 창조적이면서도 윤택한 방식으로 저마다의 여정을 다시 떠나는 날입니다. 제가 아는 선배스님은 미얀마의 고아원으로, 도반스님은 호스피스 병동으로, 또 다른 스님은 복지관 등 시설로, 혹은 스승님들을 찾아뵙고 공부를 점검받으러 떠났습니다. 제가 모르는 또 다른 스님들도 제각각 삶이 부르는 수행현장으로 스스로 등불이 되어 떠난 날이기도 합니다.

동안거 해제일 달맞이 의식
마음으로 달을 맞이한 순간
경계·시비·성냄에서 벗어나
본성 엿보는 선물같은 시간

저는 그날 밤 서울 하늘아래 어느 조용한 계곡에서 시민춤꾼들과 달맞이 의식을 함께 했습니다. 멀리서 촛불집회현장의 마이크 소리가 간간이 들리기도 했지만 사위가 어둠과 적막으로 내려앉은 공간이었습니다. 참여자들의 손에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이들과 같은 마음으로 평화와 행복을 바라는 작은 등(燈)이 하나씩 켜져 있었습니다. 달맞이 장소가 어두운 계곡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저마다의 손에 들려있는 등은 우리 각자의 희망과 바람이기도 했습니다. 달을 기다리는 시간과 공간은 매우 춥고 어두웠습니다. 그러나 환하게 떠오르는 달빛으로 추위와 어둠은 한 순간에 물러갔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매우 힘들고, 앞이 캄캄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한 순간만이라도 우리 존재의 선한 의도를 기억하고 일으킨다면 그 선한 의도 덕분에 힘듦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행복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달이 떠오르길 기다리면서 낭송되었던 누군가의 목소리에 조각달 같이 흩어졌던 제 마음이 만월처럼 조금씩 모아지고 커지는 것 같았습니다. 신경림과 서정주의 시(詩)는 저를 바깥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차단시켜 새로운 제3의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침내 다시 고요가 찾아오고 둥근 서클을 만들어 땅과 하늘을 연결하며 옆 사람과 손을 잡고 모든 존재들이 평화롭고 안전하기를 바라며 춤을 추었습니다. 우리들 손에 각각 들고 있던 등불을 바닥에 내려놓으니 땅에 내려앉은 달과 서클 달, 하늘의 달의 세 개가 빛났습니다.

춤을 추면서 서클과 우리들 마음 안으로 달을 맞이했던 순간은 너와 나의 경계나 옳고 그름의 시비나 성냄을 벗어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것은 감탄과 경이의 신비로운 현존을 경험하는 기도였습니다. 음악과 하나 된 몸짓이 잦아들자, 각자의 염원을 품고 은빛 달의 황홀한 축복에 머물렀습니다. 그 속에서 어둠과 달과 별, 나무와 물과 바위, 숲 등을 만남은 모든 존재여행자들과 연결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마음을 서클에 내어놓으면서 고마움과 내면의 목소리를 나누었습니다. 나눈 단어와 문구들은 그대로 한편의 시(詩)와 노래가 되어 서로의 마음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존재여행에서 이처럼 특별한 순간들은 어쩌면 우리의 본성을 흘깃 엿보는 선물 같은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어린 시절 즐겁고 신나게 놀았던 기억들이 있으신가요? 학교 숙제도 잊어버리고, 동생이나 심부름 등을 깡그리 잊어버릴 만큼 몰두해서 그 시공간 이외엔 다른 것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순수한 현존으로 놀았던 기억이 있으신가요? 바람에 흩날려 퍼져나가는 천진난만한 웃음소리처럼 온 세상을 향해 열정적으로 열려있었던 적은 있으셨나요? 가끔은 의도적으로 경쟁과 중독에서 벗어나 크게 웃어보세요.  

각박한 현실에 함몰되어 존재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지낼 때, 가끔 자연으로 나가보시길 권합니다. 드넓은 하늘을 볼 수 있는 곳에 가서 땅바닥에 누워 두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시야가 하늘처럼 넓어지는 경험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하늘을 일깨워줄 수 있습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은 우리의 빛나는 마음의 성품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직은 맵지만 신선한 바람이 얼굴과 온몸을 스쳐가는 것을 느껴 보십시오. 혹은 새벽 공원을 산책하거나, 반짝이는 이슬과 새벽 별을 마주하면서 우리 존재여행을 풍성하게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요즘 같이 시린 날에 붉게 지는 노을과 함께 침묵 속으로 깊이 침잠해보시면 어떨까요? 

재마 스님 jeama3@naver.com
 

 [1380호 / 2017년 2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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