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8. 고은의 ‘웃음’

기자명 김형중

삶은 돼지머리 놓고 나라와 국민
평안 축원하는 모습 그려지는 시

삶은 돼지대가리
그 웃음 앞에 서서

부디부디 이렇게만 너그러워라

‘삶은 계란’서 시상 얻은 선시
미소는 사람들 얼굴에 핀 꽃
중생들 얼굴에 미소 있으면
그곳이 바로 부처님의 세상

설날 고향 가는 야간열차 안에서 홍익회 판매원이 “삶은 계란이요. 삶은 계란이요”하고 리드미컬하게 외치던 가난한 시절이 있었다. 긴 여행을 하면서 간식이라고는 삶은 계란 밖에 없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우리의 삶이 계란 같다고도 생각했다. 계란처럼 알을 까는 인생은 대박이 난다. 실수하여 땅에 떨어뜨리면 끝장이다. 배가 출출할 때는 ‘삶은 계란’의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고은(1933~현재)은 ‘웃음’의 시에서 우리의 삶은 ‘삶은 돼지대가리’라고 노래하고 있다. 삶이 ‘삶은 돼지머리’처럼 환하게 웃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웃음은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 영험 있는 영약이다. 오쇼 라즈니쉬는 “웃음은 핵무기보다 강하다”고 했다. 쇼펜하우어는 “많이 웃는 사람은 행복하고, 많이 우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했다. 행복한 사람이 웃는 것이 아니라 웃는 사람에게 행복이 찾아온다.

‘돼지대가리’가 끓는 물속에 들어가면서 모든 분노와 원망을 놓아버린다. 방하(放下)하고 대자유인으로 새로이 태어난다. 모든 생명 있는 무리를 위하여 환하게 웃는다.

‘나를 먹어라. 나의 살과 껍질까지 모두 먹어라’ ‘돼지대가리’는 대보살의 마음이 되어 자기의 삶을 비로소 완성한다. 비록 더러운 돼지우리에서 평생 살았지만 자기의 한 몸을 온전히 중생을 위하여 바친다. 인간 부처님께 공양을 드린다.

시인의 마음은 우리도 삶을 ‘돼지대가리’처럼 그런 마음만 가지면 아름다운 세상 정토가 이루어진다고 기원하고 있다. 마치 삶은 ‘돼지머리’를 놓고 나라와 조국, 그리고 국민의 평안과 행복을 위하여 축원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시이다. 정유년 새해에 제발 이 어려운 국난을 잘 극복하기를 기원하는 국태민안의 축원이다.

시는 짧으면서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간들아, 삶은 돼지대가리처럼 웃고 살자. 그리고 서로 미워하고 싸우지 말고 너그럽게 화해하고 용서하면서 함께 살자’고 외치고 있다. 이 시는 그의 선시집 ‘뭐냐’에 수록된 짧은 선시이다. ‘삶은 계란’에서 시상을 얻고, 일본 하이쿠의 영향을 받은 시이다. 2연으로 구성된 27자 시이다.

진리는 웃음을 동반한다. 진정한 유머는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조용한 미소에서 나온다. 미소는 사람 얼굴에 핀 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마하가섭에게 이심전심으로 전했던 염화미소(拈花微笑)의 일화가 선종의 기원이다. 부처님이 설법하다가 연꽃을 든 이유를 가섭은 알아차렸다. 언어 문자를 떠난 불가사의한 미소의 공덕이다.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중생들의 고통을 없애주고, 평화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지혜를 가르치기 위함이다.

부처님은 재물이 없는 사람도 이웃을 위해 베풀어 줄 수 있는 일곱 가지 보시인 무재칠시(無財七施)를 설했다. 첫째가 상대를 대할 때 얼굴에 밝은 미소를 띠고 부드럽게 하는 화안시(和顔施)요, 다음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하는 안시(眼施)이다. 중생의 얼굴에 미소가 있으면 부처님 세상이다.

우림시장의 순대집 앞을 지날 때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삶은 돼지머리’가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불현듯 소주 한 잔이 당긴다. 죽어서도 남을 위해 술안주가 되는 보시정신으로 미소를 짓는 하찮은 ‘삶은 돼지대가리’에서 삶의 여유와 지혜를 얻으라는 가르침이다.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고은 시인이 아시아 시인 최초로 며칠 전 이탈리아에서 ‘국제시인상’을 수상하게 된 것을 축하하며, 앞으로는 대한민국의 국보시인이 블랙리스트 1호라는 주홍글씨를 지우고, 시운(詩運)이 마침내 웃음만 있으라는 마음으로 이 시를 소개한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380호 / 2017년 2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