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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화인들의 합(合)지옥

기자명 김성순

날카로운 잎이 죄인 몸 찌르고
불꽃부리 솔개가 두개골 부숴

이번 호에서는 ‘정법념처경’에서 설하고 있는 중합지옥, 즉 합(合)지옥의 업인과 고통의 양상들을 들여다보기로 하겠다.

애욕에 불타 저지른 죄업과
무리지어 악행 저지른 과보
기본적 사회 질서 준수 경책

‘정법념처경’에서는 도둑질과 살생, 그리고 삿된 행을 두루 짓고, 완전히 이루며, 많이 짓는 이가 바로 이 합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이 합지옥에서 죄인들이 받는 기본적인 고통의 양상은 ‘장아함경’에서 설하는 퇴압지옥과 상당 부분 겹치지만, ‘정법념처경’에서는 새로운 고통의 내용들도 추가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합지옥에는 도엽림 즉, 칼잎의 숲이 있는데, 불꽃이 이글대는 칼잎의 나무 위에는 아름답게 꾸민 여자가 앉아있다. 애욕을 참지 못한 죄인들이 허겁지겁 여인을 향해 나무를 올라가면 그 칼잎들이 저절로 아래쪽을 향해 숙이며 죄인들의 몸을 찌르고 저민다. 죄인이 욕망에 이끌려 피가 낭자한 채로 나무 위로 올라가면 어느새 그 여인은 아래쪽에서 죄인을 향해 웃으며 유혹한다. “당신을 그리며 이곳까지 힘들게 왔는데, 어찌하여 제게로 와서 안아주지 않는 건가요?”

다시 애욕이 불타오른 죄인이 서둘러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면 칼잎은 다시 스르르 위를 향하며 죄인의 몸을 난도질한다. 근육과 살이 다 베이고 헤진 채로 뼈가 드러난 죄인이 땅에 내려오면 그 여인은 어느새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가 있다. 이렇게 끝없이 실체도 없는 여인을 쫓아 오르내리게 되는 것은 죄인이 지닌 애욕의 업력 때문이며, 그렇게 제 마음에 속아 지옥의 고통 속을 헤매고 다니는 것이다.

이 합지옥 안에는 취변(鷲遍)이라는 산이 있는데, 고통을 당하던 죄인들이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그곳으로 달려가면 불꽃부리를 가진 커다란 솔개가 이들을 맞이한다. 이 솔개는 구원을 찾아 달려오는 죄인들을 붙잡아 머리와 눈알을 취한 후에 두개골을 부수어 골수를 꺼내 마시고는 아무 데나 던져 버린다. 머리와 눈이 없는 상태로 다시 빠져나갈 곳을 찾아 합지옥의 이곳저곳을 헤매던 죄인은 전생에 지은 죄의 업력 때문에 다시 거대한 솔개의 뱃속으로 들어가 화인(火人)이 된다.

마치 좀비에 물린 사람이 바로 좀비가 되듯이, 솔개 뱃속에 있는 화인들에게 잡아먹힌 죄인 역시 화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전생에 남의 아내를 탐하여 범한 자들이 합지옥에서 이러한 고통을 받게 되는데, 그의 영혼과 양심을 잠식한 애욕의 불길을 ‘화인’이라는 존재로 상징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합지옥에는 ‘무변피안(無邊彼岸)’이라는 이름의 강이 흐르는데, 죄인들의 눈에는 끓는 구리물이 가득 찬 그 강 너머에 온갖 깨끗하고 좋은 음식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생의 죄업으로 인해 신기루처럼 시원한 나무그늘이나, 좋은 자리, 맛난 음식 같은 것들이 나타나 보이는 것이다. 죄인들끼리 서로를 외쳐 부르며, 패거리를 지어 강 너머로 달려가던 죄인들은 뜨거운 백랍물 혹은 구리물에 빠져 마치 치즈덩이처럼 녹거나 불까마귀에게 잡아먹히게 된다.

‘정법념처경’에서는 전생에 세력을 지어 악업을 행했던 인연들이 이 지옥에서 오랜 고통을 받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설하고 있다. 이 죄인들이 한량없는 고통 후에 악업이 다하고, 전생에 약간의 선행이 있어 인간으로 다시 나더라도, 평생 빈궁하고, 수명이 짧으며, 아내가 있더라도 다른 남자에게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중합(衆合)’ 또는 ‘합(合)’이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지옥은 이권을 취하기 위해 무리의 힘을 합세해서 저지르는 악행과, 애욕에 불타서 저지르는 성적 교합(交合)에서 생기는 죄업으로 인해 떨어지는 곳이다. 탐욕을 매개로 합쳐진 패거리들이 금방 윤리적 감각이 무뎌지듯이, 애욕 역시 기본적인 인간사회의 룰을 무너뜨리기 쉽다는 점에서 이 중합지옥의 고통이 경고하는 바가 크리라 생각된다.

김성순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연구원 shui1@naver.com
 

[1381호 / 2017년 3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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