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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성제의 진리도식 ②

기자명 김권태

고통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진단과 처방 제시

어느 공장에서 기계가 고장이 났다. 수리공을 불렀는데, 수리공은 한동안 고장 난 기계 이곳저곳을 살펴보다가 어느 한곳을 망치로 세게 내리쳤다. 기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전처럼 정상적으로 작동했고, 며칠 후 수리비로 200달러의 청구서가 날아왔다. “고작 망치질 한번에 200달러라니!” 화가 난 직원은 수리공에게 구체적인 명세서를 요구했고, 그 명세서에는 ‘망치로 치는 일 5달러, 망치로 칠 곳을 찾는 일 195달러’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인연생기하는 연기적 시각 필요
복잡한 현상들 이해 위한 이론
세간 개념 불교용어로 풀어써야

유명한 수리공이야기다. 사성제의 진리도식은 어떤 문제에 대해 ‘진단과 처방’을 제시한다. 진단은 ‘왜?’라는 질문과 함께 문제의 정확한 원인을 찾아보는 일이며, 처방은 ‘어떻게?’라는 질문으로 그 문제의 해결방법을 도모하는 일이다. 고(문제)→고집(문제의 원인)→고멸(문제의 해결)→고멸도(문제의 해결 방법)의 순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다.

최근 상담현장에서는 해결중심의 단기상담이 주목받고 있다. 동굴 속의 만년 된 어둠일지라도 단 한 번의 불빛으로 환하게 밝혀질 수 있듯이, 굳이 어둠의 원인을 분석하지만 말고 여기에 새로운 불빛을 들여와 어둠을 밝히자는 말이다.

물론 훌륭한 방법이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을 헤아리고 치유하는 일은 정확한 진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가령 앞 편에서 소개한 정신분열증에 걸린 제자에게 과연 집착하지 말라는 교설이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부정관과 자비관을 통해 탐욕과 분노를 지우고, 연기관을 통해 이 고통이 모두 연기적 가합임을 자각하여 스스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라는 질문 제시가 오랫동안 내담자를 가둬왔던 문제에서 벗어나 해결방법의 추구라는 즉각적인 사고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정신분석과 발달심리, 성격심리는 인간의 마음구조와 그 형성과정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이해를 제공해 준다. 인간의 마음은 무엇으로 단정 지어 결론내릴 수 없지만, 거칠게 더듬어보면 타고난 기질과 발달단계, 외부환경의 영향, 심리적 외상 등으로 종합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기질에 대한 탐구는 에니어그램의 아홉 가지 성격유형이나 히포크라테스의 네 가지 기질론, 이제마의 사상체질, 명리학의 음양오행에 따른 십간·십이지의 기질분류 등을 들 수 있고, 발달단계는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장년기, 노년기 등 생애주기에 따른 보편적 심리 발달을 들 수 있다. 또 외부환경의 영향은 부모형제, 지역, 민족, 국가, 언어, 문화, 윤리, 종교 등의 영향을 들 수 있고, 심리적 외상은 살아오면서 개인이나 집단이 겪게 되는 충격적 경험 등을 들 수 있다. 나라는 인간의 독특한 심리적 현실은 바로 이러한 요소와 경험, 상호작용 등으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복잡한 마음의 구조에 대해 불교는 어떻게 소화하고 정리하여 현대인에게 새롭게 제시하고 응용할 수 있을까? 바로 이 지점에서 필요한 것이 ‘모든 것은 인연생기(因緣生起)하고 상의상대(相依相待)한다’는 불교의 연기법적 시선이며, 복잡한 현상에 대해 간결한 보편적 준거 틀을 제시할 수 있는 사성제의 진리도식이다.

이러한 방법은 세간의 이론과 개념들을 불교적 용어로 치환하고 차용해 풀이하는 불교의 세속화가 아니라, 분명한 불교적 관점에서 세간의 이로운 이론과 개념들을 소화해내며 세속의 불교화를 꾀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에는 ‘일수사견(一水四見)’이라는 오래된 비유가 있다. 하나의 물이 존재에 따라, 그 존재의 감각기관에 따라 저마다 다르게 인식되고 감각된다는 이야기다. 천신에게는 빛으로, 인간에게는 물로, 아귀에게는 피고름으로, 물고기에게는 보금자리로 경험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비유는 ‘사견사수(四見四水)’로 바꾸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지만, 그 한 곳은 결코 모두에게 동일한 경험을 주지는 않는 것이다. 

김권태 동대부중 교법사 munsachul@naver.com
 

[1381호 / 2017년 3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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