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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제주 여행

기자명 최원형

고운 모래밭 속에 쓰레기 뒤범벅된 제주 속살

초목에 움이 돋기 시작한다는 우수가 지났고 경칩은 멀지 않았다. 아직 기온이 차다해도 공기 속에서 묻어온 봄기운은 완연하다. 바쁜 일상을 잠시 밀쳐두고 제주로 봄 마중 다녀왔다. 제주도는 우리나라 땅이면서도 식생이 달라 이국적인 풍광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제주도에는 휴가로, 출장으로 줄잡아 예닐곱 번은 다녀왔던 것 같다. 제주도에 가면 어디를 가야하고 무얼 먹어야하고, 하는 것들이 늘 따라다닌다. 뭍과 다른 문화의 영향도 클 거라 생각한다. 제주도에는 박물관도 정말 많다. 갈 때마다 새로운 이름을 단 박물관이 우후죽순처럼 생긴다는 걸 체감한다. 점점 제주의 자연이 밀려나고 있다는 아쉬움이 크다.

여행 동안 쓰레기 최소화 결심
인공관광지 대신에 오름길 선택
쓰레기 문제도 결국은 생명문제

여행의 딜레마가 내겐 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과 자연을 만나고 알아가는 기쁨이 크면서도 일회용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는 괴로움이 그것이다. 여행하는 동안은 가볍고 편리하다는 핑계 뒤로 생태적인 생활패턴을 잠시 접어두곤 했다. 일회용품이 흔치 않던 시절일수록 여행은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그의 책 ‘사피엔스’에서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것도 일종의 상상의 질서를 따르는 것이라 했다. 하라리는 19세기 낭만주의와 20세기 소비주의 신화의 결합을 통해 가장 내밀한 개인적 욕망조차 상상의 질서에 의해 프로그램된 것에 이끌려간다고 했다. 오늘날 사람들이 휴가에 많은 돈을 쓰는 이유가 그들이 낭만주의적 소비지상주의를 진정으로 신봉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여행은 완전히 다른 세계를 거니는 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 소비에 대해 평소 경계하던 고삐마저 쉽게 풀려버리곤 했다. 이번 여행을 생각했을 때 이전과는 결을 완전히 달리한 여행을 하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던 까닭도 이런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쓰레기 남기는 것을 최소화할 것과 인공적인 시설에는 방문하지 않을 것, 그리고 사전 계획을 세우지 않고 최대한 느린 여행을 해보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표였다. 바쁜 일상에 쉼표를 찍으려는 게 여행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였기에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가능할 것 같았는데 첫 번째 목표는 과연 가능할까 싶었다. 일단 쓰레기가 분명해질 생수 이용을 하지 않을 방법으로 텀블러를 챙겼다. 아침에 숙소에서 나올 때 우려 놨던 찻물을 챙겨 나왔고, 중간에 점심을 먹는 식당에 들렀을 때 빈 물통을 채웠다. 이렇게 하니 생수를 마실 일이 사라졌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는 반찬을 남기지 않기 위해 맛난 반찬도 더는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니 쓰레기는 자연스레 줄었다. 집에서 가져간 누룽지 담은 비닐봉지 두 장, 그리고 커피 종이 필터 두 장을 남겼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관광지는 가지 않고 대신 거문오름과 솔오름 숲을 구경했다. 숙소로 잡은 곳은 호텔이나 리조트가 아닌 태양광발전기로 생산한 전기를 쓰는 도미토리였다. 그 발전기로 전기자동차 충전도 가능했다. 숙소 곳곳에는 ‘수건 1장=세제 1/4 스푼 + 물 3리터’같은 글귀들이 붙어있었다. 숙소 관리인은 사용하지 않는 콘센트를 모두 뽑아 대기전력을 차단했다. 사람에 따라 이런 것들을 피곤해 한다고 숙소주인은 전했다. 아침은 전날 장본 것을 도미토리 공동 부엌에서 해먹었고, 음식물쓰레기를 남기지 않으려 식사량은 조금 모자란 듯 준비했다.

쓰레기 남기는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 배경이 실은 따로 있었다. 제주는 지금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중이다.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려 요일별 재활용 분리배출한다는 현수막을 제주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제주 해변은 언뜻 보면 고운 모래밭이지만 들여다보면 플라스틱 병 뚜껑이며 라이터 등 온갖 플라스틱, 스티로폼 등의 쓰레기들이 모래와 뒤범벅되어 있다. 물론 그 쓰레기들 가운데는 어민들이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방치한 어구들도 제법 된다. 해류를 타고 떠밀려온 해양쓰레기도 엄청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결국 ‘우리’가 버린 것들이다. 얼마 전 희귀한 부리고래과 고래 한 마리가 노르웨이 해안에 쓸려왔다. 고래가 심한 고통을 느껴 안락사를 시켰는데 고래 뱃속에서 약 30여개의 비닐 백과 쓰레기들이 나왔다. 해류에 일렁이는 비닐봉지를 오징어 등의 먹이로 인식하고 먹은 고래의 위와 내장은 쓰레기로 꽉 채워졌고 결국 아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오늘 해양쓰레기문제는 비단 한 나라, 한 바다의 문제가 아니다.

여행하는 내내 쓰레기를 남기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를 썼고 그 덕에 애초 목표한 바는 얼추 이루었다. 그런데 그 쓰레기문제의 끄트머리에서 고래를 만났다. 결국 생명의 문제였다. ‘모든 생명은 더불어 행복할 수는 없을까?’ 고타마 싯다르타의 고뇌가 떠오른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81호 / 2017년 3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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