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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황폐했던 20세기 초의 경주

기자명 이병두

척불로 쇠락해진 조선불교 실상

▲ 1909년 일제의 ‘조선고적조사’ 사업에 참여했던 야쓰이 세이이쓰가 촬영한 분황사 9층 전탑 모습.

우리 국민 대다수가 중·고등학생 시절 경주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추억을 갖고 있다. 그래서 천 몇백 년 전 신라인들이 남긴 찬란한 불교문화 유적에 가졌던 감격을 잊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다시 찾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학생시절의 형식적인 수학여행에 질려서 아예 ‘가장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경주를 꼽는 이들도 적지 않다. 어쨌든 경주는 근대화 물결 속에 빠른 속도로 바뀐 우리나라에서 옛 모습을 그래도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고, 그 덕분에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경주 사랑에 빠져드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천년 고도(古都) 경주가 이 정도라도 옛 모습을 되찾은 것은 최근 들어서였다.

문화재 복원 착수한 건 일제
불교계 과거 통렬히 반성하고
스스로 지켜내려는 서원 필요
정부에 의존하는 관행 버려야

위 사진은 일제가 본격 병탄에 앞서 1909년에 실시한 ‘조선고적조사’ 사업에 참여했던 야쓰이 세이이쓰(谷井濟一)가 촬영한 분황사 9층 전탑의 모습이다. 탑 위 곳곳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고, 언제 무너져 내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상태에 있는 벽돌들을 인왕상이 힘겹게 버텨내고 있다. 탑을 지켜야 할 돌사자(石獅)도 제 역할을 잊은 채 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외롭게 뒹굴고 있다.

이 탑과 함께 ‘조사보고서’에 수록된 불국사·석굴암과 첨성대 등을 비롯한 경주를 대표하는 거의 모든 유적의 사진을 보아도 온전한 곳이 거의 없이 모두 반쯤 무너져 내려 폐허와 다름없는 상태였다. 척불(斥佛)을 내세웠던 조선 조정의 무관심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근근이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던 불교 집안에서도 아예 손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슬프지만, 이렇게 깨지고 무너진 경주의 문화재 조사와 복원에 눈을 돌린 곳이 우리를 강점한 일제(日帝)였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일제가 이 사업을 펼친 이유와 목적은 오로지 ‘식민 통치’를 위한 것이었고 그 복원 과정의 잘못으로 그 후유증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잘못이 아무리 컸다고 해도, 우리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과오를 통렬하게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1945년 민족 해방이 되었지만 곧바로 이어진 남북 분단과 좌우 갈등 상황에서 불교 집안도 자유롭지 못했고, 이승만 정권 때부터 20여년을 끌어온 ‘비구-대처’ 갈등과 분쟁으로 불교계 스스로 경주를 비롯한 전국의 불교문화 유적과 유물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비구-대처’ 간 다툼이 겉으로 마무리된 뒤에도 그 역할을 담당한 곳은 불교계가 아니라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자신의 친일 행적을 감추기 위해 ‘민족문화’를 내세웠던 박정희 정권이었다. 정부 주도로 펼치는 유적 조사와 복원 과정에서 불교계는 거의 발언권을 갖지 못했고 그냥 지켜볼 뿐이었으니, 슬픈 역사의 되풀이였다.

민주화 이후 상황이 달라져서 불교가 더 이상 정치권력에 끌려다니며 쩔쩔매던 시절은 사라지고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지 오래 되었지만, 아직도 일제 강점기와 독재 정권 시절에 익숙해진 관습과 관례에 젖어 1700년 동안 축적해온 유산을 “오직 우리의 힘으로 지켜내겠다!”는 서원(誓願)을 하지 못한 채 정부에 의존하고 있다. 100년이 넘게 이어져 온 관성(慣性)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인데, 붕괴 직전의 분황사 탑과 석굴암 사진을 보면서도 이를 깨닫지 못하면 되겠는가.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381호 / 2017년 3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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