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 어느 부인의 마음의 안경

“여보! 난 행운의 별에서 태어났나 봐요”

▲ 그림=근호

한 남자가 말했다.

낙천적인 아내, 왼팔 다치고도
오히려 다행이라며 크게 환호
선입견 결정하는 것은 자신
긍정적인 안경 쓸 때 행복해

“어떤 일이 생겨도 그것이 행운으로 바뀌는 사람, 심지어는 불운까지도 행운으로 바뀌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믿겠습니까. 당신이 믿거나 말거나 그런 사람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제가 그런 사람을 한 사람 아는데, 그게 바로 저의 집사람입니다. 제 아내는 불운하고는 애당초 인연이 없는가봐요. 언제나 행복할 뿐아니라 어쩌다 남들이라면 불운이라고 여길 만한 일이 생긴다고 해도 그게 금방 행운으로 바뀌어 버리니까 말이죠.”

이번 여름에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길을 가다가 넘어져 팔목이 접질리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내의 신기한 행운의 시대도 이것으로 끝나겠군.’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일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병원에서 간단한 사고 처치를 받고나서 직장에 사정을 말한 다음 사흘 동안 집에서 쉬었습니다. 그때 아내는 자기 친구 한 사람에게 전화로 그 일을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친구가 물었습니다.

“그랬구나. 그런데 부상당한 쪽은 오른쪽 팔목이니, 왼쪽 팔목이니?”
“왼쪽이야.” 아내의 친구가 기뻐하며 외쳤습니다. “참 다행이다, 얘! 넌 오른손잡이잖니? 잘못해서 오른손을 다쳤으면 낫는 동안에 얼마나 불편하겠니?”

이러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내는 “그렇지? 난 역시 행운아야!”하며 친구의 말에 동의했고, 그렇게 말하고보니 그렇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에게 그 말을 전해 들은 나는 아내의 친구가 너무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친구에게도 전화를 해보라고 권했습니다. 이번에는 틀림없이 아내가 지금 자신에게 참으로 오랜만에 불운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될 거라고 기대하면서 말이죠.

나의 부추김을 받아 아내는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팔을 다쳤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물었습니다.

“앞으로 넘어졌니, 뒤로 넘어졌니?”
“앞으로 넘어졌어.”

그 친구가 외쳤습니다. “얘, 얼마나 다행이니! 뒤로 넘어졌다면 넌 틀림없이 머리를 다쳤을 거야. 머리를 다쳐서 뇌가 손상되면 큰일이잖니? 머리를 다치는 것보다 손을 다치는 게 백 번 낫지, 안 그래?”

“네 말을 듣고보니 난 참 운이 좋았어!”

아내는 이 일을 또다른 친구에게도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 역시 반문했습니다.

“허리는 다치지 않았지?”
“응 허리는 멀쩡해.”
“정말 다행이구나! 내가 작년에 허리를 다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는 너도 알잖니? 내가 겪어보니까 말야, 허리는 몸의 기둥 같은 거야. 기둥이 무너지면 나머지가 따라서 다 무너진다고!”
“그렇구나! 그러고 보면 난 운이 좋았어!”

아내는 감동하여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때 그 장소에 행운의 여신이 있었던가봐요. 그녀가 나를 도운 게 틀림없어요.”

이뿐이 아닙니다. 아내는 심지어 이런 말까지 하더라니까요.

“여보! 난 정말 행운의 별 아래서 태어났나 봐요. 왜 무슨 일이든 좋은 쪽으로만 일어나고 풀리는 거죠? 난 늘 재수가 좋아요. 이번 일만 해도 그래요. 우선 그 날이 공휴일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이에요? 만일 공휴일이었으면 병원이 쉬기 때문에 곧장 치료를 받지 못해 애를 먹었을 게 아녜요? 또 다행히 당신이 내 곁에 있을 때 사고가 났잖아요? 만일 아무도 없는 데서, 또는 한밤중에 혼자 길을 가다가 사고가 났어 봐요. 내가 얼마나 쩔쩔 매었겠어요? 그렇지만 난 당신과 함께 가다가 사고가 났고, 그 바람에 당신과 난 병원에서 하루 종일 데이트를 할 수 있었잖아요? 당신이 일 때문에 너무 바빠서 결혼한 이래 우린 하루 종일 데이트 한 게 두 번밖에 없었는데 말예요!”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야!”라고 말해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곤 덧붙여 말했지요.

“그리고 당신과 함께 사는 나는 세상에서 두 번째로 행복한 사람이고. 그렇지?”

아내는 행복하기 그지없는 웃음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러고는 다치지 않은 오른팔에 시장 바구니를 끼고 집을 나섰습니다. 연신 즐거운 콧노래를 부르면서 말입니다.

인간은 물이라 보는 것을 천신은 보배로 보고, 아귀는 피고름으로 보고, 물고기는 보금자리로 본다(一水四見). 왜 그러한가. 겉마음 밑에 전제되어 있는 선입견이 다르기 때문이다.

선입견은 마음의 눈 위에 씌인 안경으로 작동한다. 검은 안경을 쓰면 보이는 모든 것이 검게 보이고, 무지개 안경을 쓰면 보이는 모든 것이 무지개빛으로 보인다. 안경을 벗고 볼 때에야 비로소 사물은 제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사물을 실상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보게 하는 선입견은 일차적으로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다. 천신은 하늘에서 살기 때문에 하늘의, 아귀는 아귀계에서 살기 때문에 아귀계의, 물고기는 물에서 살기 때문에 물의 영향을 받는다.

하늘 세계는 바람이 모두 충족되는 행복한 곳이다. 따라서 천신의 눈에 물조차도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보인다. 아귀계는 배고픔으로 고통스러운 곳이다. 따라서 아귀의 눈에는 물조차도 먹을 수 없는 피고름으로 보인다. 물고기는 물 속에서 산다. 따라서 물고기의 눈에 물은 자신의 집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선입견은 환경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늘 세계, 아귀 세계, 물고기의 세계는 전생에 지은 행위의 과보를 받는 영역이지만, 인간계는 전생에 지은 행위의 업보를 받는 영역이기도 하고, 내생의 과보를 짓는 영역이기도 하다. 이는 인간계가 사물을 바꿔서 보는 자유가 보장되는 세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부처님이 하늘 세계가 아닌 인간계에 출현하시는 것, 깨달음이 인간계에서만 성취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인간계에서 선입견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 자신이다. 그런 의미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앉아 조용히 물어보자. 나는 나에게 닥쳐 있는 상황을 부정적인 안경을 쓰고 보고 있는가, 긍정적인 안경을 쓰고 보고 있는가, 또는 안경을 벗고 보고 있는가? 삼계유심(三界唯心)! 불교는 나에게 내 마음의 안경에 대해 묻는다. 그 대답에 따라 나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김정빈 소설가·목포과학대 교수 jeongbin22@hanmail.net
 


[1382호 / 2017년 3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