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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박재철 작가

기자명 임연숙

꽃과 나무가 전하는 희망

▲ 박재철 작가의 ‘봄은 아프다’.

따뜻한 햇살과 쌀쌀한 바람이 묘하게 공존하는 계절이다. 힘든 계절이 가고 금방이라도 좋은 날이 올 것 같다가도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찬 바람은 ‘아직도?’ 라고 묻게 한다. 올 듯 말 듯, 2월에서 3월이 그렇다.

나무 위 상처 틈서 핀 꽃
치유의 과정이자 자비심

최근 다시 활동을 시작한 박재철 작가의 그림에는 차가운 도시의 보도블록 위의 식물들, 동네 어귀에 허술한 공간위에 핀 꽃, 작고 수수하기만 한 눈길 한번 주기 어려운 풀꽃들이 그 어느 화려한 꽃들보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등장한다.

전통회화에서 화훼(花卉)와 초충(草蟲)은 오랜 시간 작가가 즐겨 그리는 소재이자, 주제였다. 매(每), 난(蘭), 국(菊,) 죽(竹)으로 대변되는 사군자는 식물이 가지고 있는 성격을 인간이 갖추어야 할 품성으로 여겨 화가들과 문인들이 즐겨 그렸다. 부처님께 드리는 육법공양에서도 꽃은 열매를 맺기 전 수행의 과정을 상징하는 상징물이다. 동시대 작가에게 식물은 어떤 의미일까. 정물화처럼 묘사의 대상이기도 하고, 평면성을 강조하여 화면을 장식하는 전면화의 주제이기도 하며, 형태의 상징성으로 내면을 표현하는 상징적 아이콘이 되기도 한다.

박재철 작가에게 있어서 식물은 생활 그 자체이기도 하고 희망과 절망을 표현하는 상징적 소재이기도 하다. 1999년 첫 개인전 이후 17년만의 전시에서 ‘아물지 않는 상처’라는 주제로 자전적 이야기들을 보여준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아픈 기억,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과 같은 본인의 상처를 숨기거나 피하기보다는 정면으로 주시하는 듯한 표현을 통해 뭔가 새로운 전환점을 모색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이며,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재료와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천성이 밝고 위트가 넘치는 작가는 그저 우울하지 만은 않게 그림 속에 무언가를 던진다. 불법의 말씀이 우리의 상처난 마음을 치유하듯이 작가의 꽃과 나무의 생명체는 희망의 씨를 심어주고 다시 어떤 용기를 내보리라 결심하게 한다.

전남 강진 출신으로 홍익대와 같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였고, 화가의 길을 걷던 중 생계를 위해 동화책 작업을 시작했다. 쓰고 그린 책으로는 ‘행복한 봉숭아’ ‘봄이의 동네 관찰 일기’ ‘팥이영감과 우르르 산토끼’, 그린 책으로 ‘난지도가 살아났어요’ ‘옛날에 여우가 메추리를 잡았는데’ ‘연습학교’가 있다.

동화책 작업 역시 익숙한 재료와 익숙한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으며, 여러 서평에서 섬세한 필치와 관찰을 통해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바위 같은 중압감의 수레바퀴 아래서 숨을 헐떡이며
서서히 죽어간 한스가 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출세도 성공도, 어머니와 형제도 떠나
십몇 년을 숨어 살았다.
그것이 내가 한스가 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 중략-
나약하거나 예민한 인간의
아물지 않은 상처만이 드러난다. (2016 작가의 작업노트 중에서)

나무 위의 상처 틈으로 핀 꽃은 굳어지고 무뎌진 상처의 흔적이 아닌 여전히 예민함으로 드러나 있는 아물지 않은 상처이다. 이 상처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 자체가 치유의 과정이자 매일을 새로운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작은 생명도 돌아보는 자비의 마음일 것이다. 봄은 새로운 생명을 틔우기 위해 숨죽여 아픔의 시간을 견디는 시절이기도 하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전시팀장 curator@sejongpac.or.kr


[1382호 / 2017년 3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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