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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얼굴 없는 불상의 비밀-양주서상 그리고 류살하 ②

기자명 오중철

시공과 성속을 뛰어넘은 중생 구제의 순례자

▲ 돈황 장경동에서 발견된 양주서상과 류살하 변상도 중 복원된 일부 장면(사진 왼쪽). 잘려나간 양주서상 옆에 서있는 류살하의 모습에 굳건한 기상이 잘 표현되어 있다. 주위에 양주서상과 류살하에 관한 각종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류살하는 불두(佛頭)의 유무를 통하여 정치적 길흉을 예고하였던 양주서상과 관련된 인물로서, 이 특별한 불상의 출현을 예언하는 배역을 맡고 있다. 각종 문헌과 유적이 전하는 류살하는 단지 서상의 출현을 예고하고 무대 뒤로 사라지는 단역을 부여받은 것은 아니었다. 류살하는 5세기에서 11세기에 걸친 기간 동안 지옥의 목격자, 잊힌 성지의 발굴자, 서상 출현의 예언자로서, 또는 북방민족의 홍법자이자 수호신, 관음보살의 화신으로서 끊임없이 회자되고 칭송받았던 인물이다.

‘고승전’에 처음 등장한 류살하
갑작스러운 죽음에 이은 부활
인도서 석가모니 발우 친견도
범부면서도 감통·신이의 성승

류살하(360~436)가 문헌상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6세기 중엽 편찬된 혜교(慧皎)의 ‘고승전’이다. 이에 따르면 류살하는 병주(幷州. 지금의 산서성 태원시 일대)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사냥을 즐겼다. 서른한 살 때,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맞게 되었는데, 수일 만에 깨어나서 말하기를 지옥을 보고 왔다고 하였다. 지옥에서 한 도인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류살하는 곧바로 혜달(慧達)이라는 법명으로 출가한 후 강남의 단양, 회계, 오군의 아육왕탑상을 순례하였다. 류살하는 감통을 통하여 이 세 지역이 당시 남조 최대의 불교성지였음을 증명하는 역할을 다하였다.

그로부터 약 한 세기가 지난 후 도선(道宣. 596~667)은 ‘속고승전’ ‘집신주삼보감통록’ ‘광홍명집’ ‘도선율사감통록’ 등의 저작들에서 류살하에 관한 새로운 얘기들을 전한다. 도선에 따르면 류살하는 강남으로부터 돌아온 후 지난 회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양주서상의 극적인 출현을 예언하였다. 이로써 류살하는 당시 남조와 북조에서 가장 숭앙받는 서상들과의 긴밀한 관계가 확인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학계에서는 류살하의 행적이 남방과 북방의 정치적 헤게모니에 따라 각각 다른 관점으로 편집되고 창조되었음을 밝히고 있지만, 이는 한편으로 당시 류살하의 신앙적 파급력이 지역적 한계를 넘어선 것임을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돈황문서에서 발견된 ‘류살하 인연기’에는 순례자로서 혹은 예언자로서 류살하의 또 다른 행적을 전하고 있다. 그것은 하서주랑을 거쳐 인도로의 순례 여정인데, 이에 의하면 돈황의 막고굴 역시 “(류살하) 화상의 수기(受記)에 따라 천불동을 이루게 된 것”이라는 믿음이 현지에 만연했음을 엿볼 수 있다. ‘류살하 인연기’에서는 또한 류살하가 인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발우를 친견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법현전’에서 법현이 서역기행 중 만난 동명의 ‘혜달’이라는 승려가 곧 류살하임을 증명하는 논거라고 주장한다.

▲ 막고굴 98굴에 그려진 류살하와 이사인의 만남. 화면으로 보아 이 순간 류살하는 어떤 설법을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부분에 해당하는 비문의 내용은 훼손되어 확인할 길이 없다.

류살하가 대중들에게 널리 회자되고 존숭받았던 이유가 단순히 성지순례자로서의 역할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도선의 ‘집신주삼보감통록’권3에 의하면, 류살하는 본래 계호(稽胡)라는 북방민족 출신으로, 불법에 귀의한 후 자신의 고향에서 한동안 홍법활동을 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불교를 숭상하지 않았던 계호족은 류살하를 통하여 불교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류살하는 백성들로부터 “마치 일월을 우러러보듯” 지극한 공경과 추앙을 받았다. 이때 류살하는 “낮에는 단상에 올라 설법을 하였고, 밤이 되면 누에고치(繭)에 들어가 스스로 몸을 숨겼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누에고치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도선의 조사에 의하면 ‘살하’라는 이름 자체가 계호족의 언어로 누에고치라는 의미에서 연유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활동했을 당시에 이미 류살하는 대중들 사이에서 일종의 죽음으로부터의 ‘부활’, 혹은 범부에서 성승으로의 ‘변신’의 아이콘으로서 널리 알려졌던 것으로 보인다. 출신배경에 있어 일반 민중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 범부이면서, 한편으로 각종 감통과 신이를 보이는 성승으로서 류살하가 갖는 양면성은 중국의 서북지역을 중심으로 그에 대한 신앙의 저변을 확산시킨 근본 요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민간신앙의 대상으로서의 류살하의 성격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바로 이사인(李師仁)이라는 사냥꾼과의 일화이다. 무위시에서 발견된 이른바 ‘양주어산 석불서상 인연기’라는 8세기경의 비문에는 류살하와 양주서상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류살하가 예언을 남긴 지 86년이 지난 어느 날 이사인이라는 사냥꾼이 어산에서 사슴을 쫓다가 문득 한 스님과 조우하였다. 이사인이 스님에게 예를 올리고 고개를 드니, 어찌된 일인지 스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신기하게 생각한 그가 돌무더기를 세워 표식을 남기고 떠나려던 순간, 갑자기 우렛소리와 함께 산에서 상서로운 불상이 출현하였다. 이 비문에서는 도선의 기록과는 달리 양주서상 출현의 현장에 류살하와 이사인이라는 사냥꾼을 등장시킨 것이다.

막고굴 61굴과 98굴에는 각기 이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61굴 주존의 배병(背屛) 후면의 벽에 묘사된 중앙의 양주서상, 그 좌우로 자리 잡은 이사인과 류살하의 삼각구도를 통하여 우리는 양주서상과 류살하 사이에 새롭게 정립된 관계를 읽을 수 있다. 사슴을 좇는 이사인은 바로 출가 전에 사냥꾼으로서 살생을 일삼았던 류살하의 모습과 다름이 없다. 이 장면은 사냥꾼이란 직업의 동일성을 이용하여 류살하와 이사인의 만남을 중생의 과거(살생의 업보를 지닌 사냥꾼)와 미래(환골탈태한 성승)의 교차라는 개념으로 실현한다. 이러한 교차를 통하여 류살하 개인이 겪은 ‘변신’의 과정은 신분상 그와 다를 것 없는 제반 중생의 삶의 영역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이때 출현한 양주서상에 있어서는 불두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더 이상 중요한 관심대상이 아니다. 여기서 양주서상의 역할은 류살하와 이사인 간의 교차에 대한 인증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류살하와 양주서상 간의 역할이 전도되는 순간이며, 양주서상의 의의가 정치적 서상에서 중생 구제의 인도자로 전환하는 순간이다.

류살하의 행적은 허구와 신화로 점철되어 있어 그 본래의 모습이 무엇인지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도선은 류살하가 입적했다는 주천(酒泉)의 어느 고찰에 새겨진 류살하의 비문의 내용을 전하고 있다. “나는 특별한 성자가 아니라네. 오직 떠도는 것을 업으로 삼을 뿐, 심지어 글도 모르는 무식쟁이에 지나지 않는다네(吾非大聖, 遊化爲業, 文不具矣).” 어쩌면 류살하에 대해 전해지는 수많은 이야기들 중 오직 이 한 구절만이 진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허구’와 ‘신화’가 대중의 신앙과 염원이라는 양분 속에서 창출되고 성장한 것임을 읽어낸다면, 곧바로 이 특별할 것 없는 ‘떠돌이 객승’의 고백이 겸손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오중철 중국 사천대학 박사과정 ory88@qq.com
 

[1383호 / 2017년 3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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