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가을. 청담, 성철, 향곡, 우봉, 자운 스님 등 당대 젊은 수좌들이 문경 봉암사에 모였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혼탁해진 한국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젊은 수좌들의 당찬 결단이었다. 그들은 대처·식육 등 파계가 만연한 한국불교를 재건하는 것은 오직 ‘부처님 법대로 사는 것 뿐’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리곤 서슬 퍼런 계율을 세우고 목숨을 건 구도행을 발원했다.
대외적인 선언은 없었다. 오히려 산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수행에만 몰두했다. 젊은 수좌들이 봉암사에서 뿜어내는 구도열기는 바람을 타고 세간에 전해졌다. 비록 완전한 결사로 회향하지는 못했지만 젊은 수좌들의 치열한 구도행은 혼탁한 한국불교를 경책하는 장군죽비였다. 또한 그들이 보여준 수좌정신은 바닥으로 추락했던 한국불교의 위상을 바로 세우고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한 토대가 됐다.
문득 70년 전 봉암사 결사를 되짚게 된 것은 3월23일 전국선원수좌회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기자회견 때문이다. 제방선원에서 수행에 매진하는 수좌들의 모임인 전국선원수좌회는 한국불교의 마지막 보루이자 조계종단의 정신적 상징이었기에 이날 기자회견은 시작부터 적지 않은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기대가 씁쓸함으로 바뀌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자회견은 종단 집행부를 향한 수좌스님들의 날선 비판으로 시작해 구체적인 대안 없는 ‘총무원장 직선제’ 도입 요구로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이날 수좌 스님들은 최근 불자수 300만 감소 사태로 대변되는 한국불교의 현실을 “종권과 이권에만 탐착하고 종권연장을 위한 담합과 매수에 골몰하는 권승과 범계승들의 부도덕성 때문”이라고 진단했고, “조계종의 일부 권승들이 파당을 만들어 종권을 장악하고 유력사찰의 주지를 차지하는 비승가적 양태를 보이며 본사와 말사의 주지까지도 자파의 세력으로 채워 승가의 자율성과 역동성을 말살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 송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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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5호 / 2017년 3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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