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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두가지 방법

기자명 하림 스님

오래 전 사형스님의 말씀이 아직까지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사형은 삶의 온갖 질곡을 겪어가며 살아가고 있는 분입니다. 그 삶에서 딱히 배울 점이 있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때 사형의 “산다는 것은 별거 아니야. 그냥 사는 거야”라는 그 한마디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벌써 10년도 지난 일인데 왜 내 가슴에 그토록 오래 자리 잡고 있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 분이 모범적으로 잘 살아오셨다면 아마 지나가는 말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온갖 고민과 어려움을 달고 사시는 분에게서 들은 말이라 더 강하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함께 하자는 제안 거절한
도반 스님에 서운했지만
‘자신의 길 걷겠다’ 용기에
승려로서 존경심을 가져

저는 살기 위해서 별것을 다하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뭔가 성취하고 이루기 위해서 삽니다. 그것이 삶의 의미라고 믿고 힘들어도 그것에 매달려서 살아갑니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삶의 의미는 없는 것이라고 믿으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사형의 그 말씀이 자꾸 떠오릅니다.

요 며칠 20년 동안 가깝게 지냈던 도반스님에게 어떤 일을 함께하자고 조르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 도반스님이 주변 인연을 위해서 꼭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 스님은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아무리 여러 번 생각을 해 보아도 그 일이 중요하고 소중한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내 깊은 진실한 마음에서는 그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주변의 인연들로부터 비난받고 버림받을지라도 나는 내 깊은 내면의 목소리 그리고 수행자로서 본분에 충실하고 싶다”고 말이지요. ‘조금은 실망스럽고 이기적이지 않나’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서운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 스님의 말이 지극히 당연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어떤 일을 할 때  그곳에 나아가서 돕고자 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러다 보니 삶이 번잡해지고 인연의 낚시에 자주 걸려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스님은 조용히 앉아서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저보다 더 많이 가집니다.

순간 ‘누가 더 행복해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반스님은 자신의 내면을 잘 성찰하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삶을 삽니다. 그래서 삶이 단순하고 많은 시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누군가 찾아가고 싶으면 그곳에 가면 그 스님은 계십니다. 그런데 저는 바쁩니다. 누군가 찾아오면 저는 자리에 없습니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 밖에 나가서 돌아다닙니다. 삶이 번잡합니다. 다니느라 힘들고 쉽게 피곤을 느낍니다. 그냥 집에서 쉬면 좋아질 것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합니다. 뭔가를 하려고, 직접 나서서 꼭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저는 그들을 돕는 것으로 존재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그 일이 잘 될 때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힘이 듭니다.

오늘도 거의 하루 종일 그 일로 대화를 해 왔습니다. 늦은 시간이지만 좀 전에 전화가 왔습니다. 도반 스님은 자신의 길을 걷겠다고 결정했습니다. 한편으로 참 ‘승려답다’는 생각이 먼저 떠오릅니다. 올 곧게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사람이 잘 가는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의 용기가 부럽고 존경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달래봅니다.

하림 스님 행복공감평생교육원장 whyharim@hanmail.net


[1385호 / 2017년 3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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