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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김은정 작가

기자명 김영욱

연화와 담수, 붓으로 그려나가다

▲ 김은정 作, ‘법주사 연담당 세홍 진영 현상모사 초본’(좌), 현상모사 완성본(우), 비단에 채색, 117×78cm.

무심한 선사(禪師)의 방을 엿본다. 삭발한 선사가 꼿꼿이 앉아있다. 이마에 패인 가로주름과 찌푸린 듯한 미간의 주름살에서 참선의 공력이 읽혀진다. 태산처럼 고요하다. 백색의 내포에 옅은 회색의 장삼을 입고 있다. 장삼 위로 붉은색 가사를 걸친 선사는 한 손에 염주를 쥐고 다른 한 손은 주장자를 세워 잡았다. 그 모습 조용하고 편안하니, 곧 안온(安穩)한 사찰의 선사 그대로다.

무한겁 시간 속 수백번 붓질
진영이 지닌 오랜 시간 공유

충북 보은 법주사에 있는 ‘연담당 세홍 대선사 진영’을 현상모사한 작품이다. 진영은 선승의 초상화를 말한다. 이 진영은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방석 위에 결가부좌한 선승이 한 손에는 주장자를, 다른 손에는 염주를 쥐거나 무릎 위에 올려놓는 자세를 취한 조선후기 진영 양식을 보여준다. 작가는 법주사와의 인연으로 원작의 현재 모습을 그대로 옮겨 그리는 현상모사를 시도하였다. 법주사 진영이 지닌 오랜 기억의 시간을 공유한 것이다.

김은정은 최근 창덕궁과 창경궁 일대를 그린 동궐도(東闕圖) 형식을 차용하여 새로운 작업을 시도한 사람이다. 그런 까닭에 그의 불교회화와의 대면은 어찌 보면 낯선 새로운 만남일 것이다. 하지만 그 만남이 현재를 살아가는 신진작가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작가는 학부시절 졸업작품을 불교회화로 전향하며 불교예술에 마음을 열었다. 불화와의 만남은 작업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던졌다고 한다. 그가 불교회화를 선택한 이유는 시간과 재료를 이용하는 성실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끝없는 무한겁의 시간 속에서 수십 수백 번의 붓질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그 성실한 매력에 이끌려 불교예술로 발걸음을 점차 옮겨나갔다. 최근에 그린 ‘연담당 세홍 대선사 진영’은 흡사 원본인 듯 매우 치밀하고 꼼꼼한 필력을 보여준다. 작가의 성품처럼 말이다.

졸업 이후에는 다양한 면모를 선보이며 대중에게 알려졌다. 앞서 언급한 동궐도 형식을 차용한 새로운 궁궐 그림을 선보인 계화(界畵)나 채용신이 그렸다고 알려진 고종 황제 어진의 현상모사는 가히 발군이었다. 다만 작가는 작금(昨今)의 전통회화 모사 방향에 대한 회의를 품고 있다. 나아가 전통을 주제로 하는 창작에 대한 망설임도 지니고 있다. 어찌 보면 이 두 문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작가들 또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젊은 작가들에게 있어 당대예술에서 전통의 위치를 재조명하는 작업은 필연이자 숙명이다. ‘당대’는 과거와 단절된 현재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현재를 말한다. 당대예술의 현상, 특히 전통과 직면한 젊은 작가들의 도전은 과거로부터 축적되어 온 깊이와 역사의식을 화면 속 이미지를 통해 어떻게 변모시켜 계승할 것인가이다. 김은정 작가와의 짧은 인터뷰는 이 시대 젊은 작가들의 고민을 대변한다.

앞선 두 차례 원고가 오롯이 작가와 작품만을 소개했다면, 이번 원고에서는 김은정이 말한 당대예술에서의 전통회화의 환경을 공유하고자 한다. 복제와 모사는 전통을 환기시키는 수단이고, 창작은 전통에 관한 강박적인 관념에서 탈피한 문화 생산 작업일 수 있다. 분명 작가는 당대예술에서 불교미술을 통한 전통의 현상과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 그러기에 자신의 분야에 접근하여 자신만의 생각으로 풀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눈을 돌려 연담당 세홍 선사 진영을 바라본다. 연담당은 세홍 선사의 호다.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본받고 오랜 시간 수양을 통한 마음으로 배운 연화(蓮花)이자 담수(潭水)인 것이다. 연화와 담수는 이루기 어렵다. 그러나 체득해 가는 과정에서 얻는 바가 있으며, 하나를 얻음으로써 깨달음의 발판이 될 것이다. 문하생 운파성수(雲坡性修)의 짧은 찬문이 김은정 작가에게 하나의 선문답이 되길 기원한다.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385호 / 2017년 3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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