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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지역단 북부지역 병원포교팀 박현-상

기자명 박현

겨울 새벽 뚫고 달린 엄마의 시린 마음이어라

▲ 56, 관음성
“오늘 아침에 가셨는데요.”

언니 둘 먼저 보낸 어머니
병 잦던 자식 업고 병원행
병원 포교하며 마음 헤아려

완화병동 간호사의 말을 뒤로하고 병원문을 나서는 마음이 허전하고 아프다. 요즘 회자되는 “뭣이 중헌디…” 라는 말이 헛헛하게 새어나온다. ‘어제 왔어야 했는데….’ 가고 옴에 끄달리지 않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지만 그래도 가고 옴은 화려하게 마지막을 불태우다 떨어지는 낙엽처럼, 아름답고도 허망하다.

남편 고통을 생각하면 얼른 보내야 하겠지만, 이렇게라도 곁에 있는 것이 좋아서 잡게 된다고, 그래서 남편에게 죄를 짓는 것 같다고, 그렁그렁 눈물 한 가득이던 아내의 눈빛이 그토록 간절했건만.

오랜 시간 병원에 있었지만 스님도, 불자도 만난 적이 없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니 생소하지만 반갑다고 했다. 오늘 아침에는 수녀님이 오셔서 기도를 해주고 가셨고 남편이 가고나면 천주교로 개종을 할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다음날은 일정이 있어서 하루 지나 왔더니 아내의 마음 한쪽을 가느다란 빛으로 지탱해주던 분이 그예 길을 떠나셨나보다. 자다가도 지긋한 사랑의 눈으로 바라봤다던 눈길이 거둬진 세상에 아내는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

나는 왜 이 길을 가고 있는 걸까. 수시로 찾아오는 물음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활동도 많은데 왜 병원포교를 하겠다는 마음을 낸 것일까. 그것은 어린 날부터 늘 내 주위를 도사리던 죽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날이 갈수록 내 삶으로 들어왔다.

내가 태어나던 해는 지독히도 눈이 많이 왔었다고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잔병치레를 많이 했다. 엄마는 새벽 통금이 풀리자마자 나를 들쳐 업고.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 속에 병원을 찾았노라고 하셨다. 시집온 지 1년밖에 안된 새댁이 불이 나서 폐허가 된 스산한 시장을 무서운 줄도 모르고 지나갔노라고, 무슨 정신으로 그 길을 다녔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병원비로 쓴 돈을 묶으면 지금 네 몸보다 더 클 거라고 이야기하면서 웃곤 했었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머리로 이해한 것일 뿐. 생과 사가 교차하는 현장에서야, 그 길을 뛰어가며 어머니가 어떤 마음이셨을지 아주 조금 알 듯하다.

엄마는 오빠 둘, 남동생 셋, 여동생 둘 중에 맏딸이었다. 엄마 위로 이모 둘이 있었는데 모두 어린 나이에 죽었다. 어렸을 때는 흘려들었던 이야기가 요즘 가슴 저리게 다가온다. 먼저 가버린 두 언니를 두었던 엄마가 아픈 아이를 들쳐 업고 눈발을 헤치며 뛰던 심정이 어떠했을까. 그 시절에 눈발 가릴 옷인들 변변했겠으며 눈길에 푹푹 빠지는 발을 온전히 덮어줄 신인들 변변했겠는가. 변변했다한들 그 시린 마음은 어찌했겠는가.

먼저 가버린 언니들을 따라가지 못했던 미안함. 그래서 당신의 부모와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그 삶의 고단함. 그리고 자신의 몸을 빌려 태어난 생명을 죽음으로부터 지켜야한다는 그 절실함. 그 간절함 때문에 엄마 또한 모두들 죽을 거라고 이야기했다는 그 시기를 무사히 건넜고, 나를 지켜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병원포교 현장에 있는 것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연장된 나의 삶. 그래서 멀쩡히 다니던 학교에 명퇴를 신청하고 내 삶 전체로 회향하겠다는 건방진 발원을 가졌던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이들을 만났다. 청소년미혼모, 재소자, 범죄 피해자들. 환자들, 환자의 가족들….

정토마을 홈피만 들락거리다가 2007년에 연을 맺었다. 그 뒤로도 몇 년을 교육 스텝으로, 교육팀장으로 활동하였다.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광주전남지부장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포교사로서 병원임상 활동으로 연결되었다.

hyunmokpo@hanmail.net
 

[1385호 / 2017년 3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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