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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는 일

기자명 최원형

전기 절약도 채식도 나무를 심는 일입니다

이 땅의 많은 숲들이 온통 헐벗었던 때가 있었다. 놀라운 건 그런 시절에도 사찰 숲은 울창하게 푸른 숲을 유지했다는 사실이다. 천리포수목원을 세운 민병갈 원장의 자서전을 읽다보면 1950년대 대한민국 산을 묘사한 장면이 나온다. 미군으로 6.25 전쟁에 참전했던 그는 우리 산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이 땅에 정착했고 귀화해서 평생을 한국인으로 살다 갔다. 그가 묘사한 50년대 이 땅의 산림은 전쟁의 화마가 할퀴고 간 데다 땔감, 식량 등을 구하느라 온통 민둥산이 돼버린 모습이었다. 그런데 유독 절이 있는 곳 주변의 숲은 아주 잘 보전되어 있다고 감탄을 했다. 민 원장은 그렇게 숲이 잘 보존될 수 있었던 까닭으로 스님들의 노력을 꼽았다. 절마다 산감을 두고 숲을 지켜낸 결과였다. 산중 사찰 어디든 절을 품고 넉넉하게 드리워져 있는 숲은 보기만 해도 큰 위안을 준다. 게다가 뭇 생명들이 공존하는 숲과 불살생계의 가르침은 잘 어울린다. 그런 숲이 스님들의 노력으로 지켜졌다는 걸 알고 나면 절로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숲 헐벗었을 때도 울창했던 사찰림
절마다 산감 두고 숲 지켜낸 결과
지구 위기요인 기후변화와 관련돼
숲 지키는 일 일상과 가깝게 연결

민둥산을 울울창창한 숲으로 가꾸느라 애쓴 노력의 한 복판에 식목일이 있다. 그런데 오늘 이 땅의 숲은 그리고 나무들은 정말 안녕한 걸까? 서울 북한산 둘레길을 걷다 보면 군데군데 녹색 천막을 뒤집어쓰고 있거나 잎이 누렇게 변해버린 소나무를 종종 본다. 재선충으로 소나무들이 몸살을 앓는 중이다. 크기 1㎜ 안팎의 실 같은 재선충이 소나무 속에 들어가 급속히 증식하면서 수분과 양분 이동통로를 막아 소나무를 말라 죽이기 때문이다. 재선충이 소나무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솔수염하늘소나 북방수염하늘소 같은 매개곤충을 통해서다. 소나무재선충은 1988년 금정산에서 시작해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해마다 4월이면 재선충으로 죽은 나무속에 들어있던 솔수염하늘소와 북방수염하늘소 애벌레가 날개를 달고 나와 다른 나무로 날아가 재선충을 옮기기 시작한다. 고사한 나무 주변으로 퍼져나가면서 5월부터 8월에 걸쳐 집중 창궐한다.

원시 상태의 한반도 숲에는 느티나무와 참나무 같은 활엽수가 가장 많았다. 소나무 숲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중기 무렵부터다. 인구가 늘어나고 숲에 대한 인간의 간섭이 증가하면서 사람들의 주거지 주변으로 소나무 숲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산림천택이 농지로 개간되었고 농지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을 중심으로 사람들은 더 넓게 숲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숲을 훼손하기에 이르렀다. 숲에서 가축을 기르고 먹이를 채취하고 땔감을 구하고 숲 바닥에서 거름을 채취했다. 이 과정에서 숲의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많은 유기물들이 숲 밖으로 이동했다. 우거진 숲이 땔감으로 사라지고 숲 바닥이 척박해지자 소나무가 자라기 적당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마을과 가까운 숲은 소나무 숲으로 변해갔다. 어떤 연유에서든 이렇게 해서 형성되어 사랑 받던 남산 위의 저 소나무가 소나무재선충으로 조만간 한반도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고사한 나무를 제거하고 피해지역에 광범위하게 항공, 지상방제도 하고 매개충인 하늘소를 페로몬으로 유인해서 제거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해도 재선충은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그 까닭은 일시적인 노력으로는 변화시키기 힘든 기후와 밀접하기 때문이다. 고온과 가뭄은 재선충 번식에 유리한 조건이다. 충청도, 강원도 등 일부 지역은 몇 해째 가뭄을 겪고 있다. 해마다 여름은 최고 기온을 갈아치우는 중이다. 기후가 이러하니 아무리 눈앞에 보이는 재선충을 없앤다고 해도 고작 1mm 크기의 재선충을 박멸하기란 좀체 어려운 일이다. 기후변화는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를 괴롭힐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작년 다보스포럼이 발표한 ‘지구위기 보고서’에 상위 랭크된 위기 요인들이 모두 기후변화와 관련한 것들이었다. 숲이 사라지는 것이 기후변화를 일으키는데 일조했고 이제 기후변화로 숲이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데 숲을 없애고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모든 원인에 우리 인간 활동이 있다. 우리의 능력이 나무를 심고 가꿀 수도 있지만, 숲을 없애고 거기에 더해 기후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식목일에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는 일을 생각해본다. 전기를 절약하는 것도, 채식을 하는 것도 나무를 심는 일이다. 통도사, 범어사, 불국사 등 대찰들이 품고 있는 멋진 소나무 숲, 그 숲을 지키는 일과 우리의 일상이 아주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86호 / 2017년 4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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