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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정은이의 졸업, 그 이후

기자명 성원 스님

힘들다더니, 그래도 좋았나 보다

 
지난주 졸업식을 했다. 어린 시절 주일학교라는 게 있었다. 일요일마다 천진한 어린 시골아이들을 교회로 모이게 해서 원조물품의 언저리쯤 되는 물품들을 간간히 나누어 주기도 하고, 주일교사가 된 언니 오빠들이 기독교 교리들을 열심히 가르치기도 했다. 사상이 뭔지도 모를 나이에 그저 교회는 일상이 되기 십상이었다.

합창단 졸업생된 사춘기 소녀
혼자만의 시간 갖고 싶다더니
한달에 한두번 오겠다고 다짐
수년간 함께한 보람에 ‘짜릿’

지금도 그때 배운 동화수준의 이야기들이 간간히 기억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대부분 깊은 망각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유독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면 음률을 타고 머리가 아닌 우리 몸 어디쯤인가에 머물러 있다가 나도 모르게 흥취가 되어 흥얼거리게 된다.

음악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의 뇌에 기억되지 않는 게 분명한 것 같다. 문장을 암기하는 능력보다 음악을 통한 가사 암기는 훨씬 쉽고 오래토록 기억된다는 것을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음률을 담아 암송하다보면 경전도 훨씬 외우기가 쉽다. 몸을 흔들흔들 거리면서 글을 읽노라면 어느새 암기가 되어 버리기 일쑤다.

찬불동요 중에 ‘십대제자’라는 노래가 있는데 노래를 부르다보면 외우기 힘든 십대제자의 이름을 다 외우게 된다. 우리 사람들은 태고적부터 바람의 소리와 햇살의 감미로운 리듬으로 육신이 길들여져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현)정은이는 언니를 따라 절에 오기 시작했으니 족히 6년 넘게 일요일마다 빠짐없이 약천사에서 시간을 보냈다. 입단하기도 전부터 색동 한복을 입고 세배하러왔다가 거침없이 춤을 얼마나 잘 추던지…. 그 숨은 영상을 보니 어제 같은데 이젠 사춘기가 되어 투덜대기 일쑤고 예전 같으면 절에 올 때마다 스님을 졸졸 따라다녔는데 요사이는 가까이 오지도 않으려하니 빨리 이 격랑의 사춘기가 지나가야만 될 것 같다.

어린 시절 볼 때마다 기쁨이 먼저 앞섰던 정은이도 졸업하게 되어 법당 문을 나서 떠나니 가슴이 너무 휑했다. 선임단원 이름을 붙이긴 했다지만 그래도 서운함을 숨길 수는 없다. 마치 어미오리가 품었던 알을 깨고나온 오리들을 병아리인줄 기르다가 물가로 가자마자 떠나가 버리는 것을 바라만 보는 어미닭의 마음도 이랬을까?

바라밀이라는 불명까지 받은 정은이는 일요일 합창단 연습에도 나오지 않고, 늦잠도 자고,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했었다. ‘피안의 세계로 건넌다’는 도피안의 의미가 담긴 불명 바라밀의 의미처럼 매주 연습하느라 힘겨운 세계를 떠나 이제 마음 가득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피안의 세계로 큰 걸음을 나섰을 거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의 마음도 잠시였다.

다음날 만난 정은이 어멍(어머니의 제주도 방언)은 말을 꺼냈다. 집에 돌아와서는 본인도 합창단 떠나는 것이 서운했는지 갑자기 “선임단원이 되었으니 한 달에 한두 번은 일요일마다 꼭 리틀붓다합창단 연습에 갈 거다”라고 했단다. 수년을 함께한 보람이 짜릿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일요일마다 쉬지 못하고 연습 오는 일이 힘들다고 했던 단원들도 마음 한 켠에는 본인의 의지보다 크게 합창단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었나보다. 무엇보다 졸업한 단원들 일생동안 어린 시절 리틀붓다합창단에서 배운 많은 부처님 노래들이 본인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살아간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다.

이제 어엿한 바라밀보살이 되어 떠난 정은이와 졸업단원들이 보고 싶어진다. 그들이 추억을 그리워 할 때쯤이면 삶에서 붓다의 향이 메아리처럼 울리고 또 울려 퍼지리라 자꾸 믿고 싶다. 한번 리틀붓다는 영원히 우리의 어린 부처님이다.

성원 스님 sw0808@yahoo.com
 

[1386호 / 2017년 4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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