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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승과 지옥도

동자는 청정한 성품 상징
무명 일깨우는 보살 화신
아이들 슬픈 세상이 지옥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오면서 봉축행사가 잇따르고 있다. 어린아이들이 삭발하고 어엿한 스님으로 생활하는 동자승 단기출가도 그중의 하나다. 올해도 서울 조계사를 비롯해 속초 신흥사, 부산 홍법사 및 내원정사, 대구 대관음사 등 여러 곳에서 동자승 출가행사를 가졌거나 가질 예정이다. 가사장삼을 입은 동자승들은 5월3일 부처님오신날까지 다양한 행사에 참여한다.

불교에서 동자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남자아이’라는 동자(童子)의 한자적 해석을 넘어 때 묻지 않은 청정한 성품을 상징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절에서 생활하는 동자들은 법회나 의례가 있을 때면 이를 돕거나 큰스님이 출타할 때 모시는 역할을 담당했다. 근대 보육시설이 정착되기 전까지 사찰에서 버려진 아이들을 도맡아 키웠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한국불교사에서 동자는 매우 친숙한 존재다. 5살 된 아이가 관세음보살의 보살핌으로 살아나 마침내 도를 이루었다는 설악산 오세암 이야기처럼 불교설화에도 곧잘 등장한다.

그렇다고 동자가 항상 어린아이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열반경’의 사구게 중 전반부 게송인 ‘모든 것은 덧없이 흘러가니 태어나 죽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네(諸行無常 是生滅法)’를 듣고 난 뒤, 후반부 게송인 ‘나고 죽는 그 일마저 사라져 버려야 거기에 고요한 즐거움이 있네(生滅滅已 寂滅爲樂)’라는 구절을 듣기 위해 기꺼이 뛰어내린 설산동자. 그리고 문수보살 가르침을 받고 선지식을 찾아 남쪽으로 순례를 떠난 선재동자는 숭고한 구도의지를 상징한다.

동자가 아예 불보살의 화현으로 등장하는 경우들도 많다. 문수보살을 ‘문수사리동자보살’ ‘문수사리동자’ ‘문수동자’라고 부르는 것처럼 지혜의 인격화인 문수보살의 다른 측면인 ‘천진무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지독한 피부병으로 고생하던 조선 세조가 상원사 옆 계곡에서 목욕하다가 문수동자를 만나 병이 나은 것처럼 동자는 중생이 겪고 있는 고뇌를 해결해주고 어리석음을 깨뜨려 지혜를 완성하도록 이끌어준다.

지난 4월4일 대구의 한 사찰에서는 올해 첫 동자승 삭발·수계식이 열렸다. 꼬마스님들은 민숭민숭한 자기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재미있어 했다. 법당에서 깔깔거리며 뛰노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지켜보는 어른들도 잠시나마 풋풋한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이재형 국장

 

 

그러나 같은 날 새벽 지구의 반대편인 시리아에서는 참변이 벌어졌다. 시리아반군 거점 지역의 주택가에 정부군 소행으로 추정되는 화학무기 공습으로 1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중에는 어린아이 30여명이 포함돼 있었다. 이날 인권단체가 공개한 사진에는 경련을 일으키고 숨을 쉴 수 없게 된 아이들이 시든 꽃처럼 축 처져있었다. 호흡기를 댄 아이들도 이미 죽음의 강 저편에 다다르고 있는 것 같았다. 시리아 젊은 남성이 하얀 보자기에 싼 2명의 아기 시신을 꼭 감싼 채 처절하게 울고 있는 사진이 소셜네트워크(SNS)에 소개되기도 했다.

동자는 다양한 방편으로 중생의 무명을 깨치는 존재다. 2015년 해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시리아 꼬마난민 쿠르디, 호흡기에 의지해 가냘픈 숨을 이어가는 창백한 아이들, 아빠 품에 안긴 쌍둥이는 어쩌면 처절한 메시지로 세상을 일깨우려는 동자일 수 있다. 지옥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다. 아이들이 슬픈 세상이 바로 지옥이다.

이재형 mitra@beopbo.com

[1387 / 2017년 4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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