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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규환지옥

기자명 김성순

끓는 쇠솥 안에서 오르락내리락
옥졸들이 찌르는 창에 비명 난무

이번 호에서는 네 번째 근본지옥인 규환(叫喚)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기로 하겠다. ‘규환(叫喚)’이라는 제목이 붙은 것은 지옥에서 울리는 죄인들의 고통과 회한에 가득 찬 비명소리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규환’이란 지옥 죄인들의
고통과 회환에 찬 비명소리
술을 자주 즐겨 마시거나
스님들께 권하면 가는 지옥

그렇다면 규환지옥은 죄인들이 어떠한 고통을 겪는 곳이기에 이런 이름이 붙게 된 것일까? ‘장아함경’ 제19권에서는 옥졸들이 죄인을 잡아 큰 솥에 던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큰 솥 안으로 던져진 죄인은 뜨거운 물속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비명을 지르지만 그 죄가 다하기 전까지는 죽을 수도 없다. 이 규환지옥의 옥졸들은 죄인을 잡아 큰 쇠독, 큰 가마솥, 작은 쇠솥, 번철 등에 번갈아가며 내던져서 삶고, 튀기며, 굽고, 지져댄다.

이곳의 죄인들은 이런 고통들을 다 겪고 나서 허겁지겁 규환지옥을 벗어나려 구원을 요청하지만 전생에 저지른 죄의 업력 때문에 결국 흑사(黑沙)지옥과 한빙(寒氷)지옥으로 이끌려가게 된다고 한다.

‘정법념처경’에 의하면 이 규환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주요 업인은 바로 ‘술을 자주, 그리고 많이 마시는 것’이다. 본인이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청정한 수행을 행하는 불자나 승려에게 술을 권하고 마시게 하는 것도 이 규환지옥에 떨어지게 하는 업인이 된다. ‘장아함경’에서는 규환지옥의 죄인들을 뜨거운 물이 끓고 있는 쇠솥 등에 번갈아가며 집어던지는 고통을 묘사하고 있는데 비해, ‘정법념처경’의 규환지옥에서는 옥졸이 쇠집개로 죄인의 입을 벌려 뜨거운 구리물을 들이붓는다. 죄인의 입을 통해 들어간 뜨거운 구리물은 입술, 잇몸, 혀, 목구멍을 차례로 태우고, 몸 안의 생장과 숙장까지 다 태운 다음에 밑으로 나오게 된다.

이 지옥에서 물이 끓는 쇠솥에 거꾸로 잠기기, 쇠까마귀에게 쪼아먹히기, 입속에 끓는 구리물 들이붓기 등의 고통을 당하고 난 죄인은 육신을 조이는 허기와 목마름으로 인해 정신없이 시원한 호수를 찾아 달려가게 된다. 맑은 물을 마셔보려고 너덜너덜해진 육신을 끌고 달려왔건만 호수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물이 아니라, 끓는 백랍물이다. 더군다나 호수 안에는 엄청난 힘을 가진 거대한 자라가 있어서 목욕하러 들어온 죄인을 잡아서 끓는 백랍물 속에 담가 골고루 익혀버린다. 수백 수천 년 동안 죄인을 백랍물 속에 붙들고 있던 자라는 그 죄업이 다한 후에야 호수 밖으로 풀어주게 된다.

자라에게서 풀려난 죄인이 허둥지둥 도망치다 보면 어느새 지옥의 옥졸이 죄인을 쫓아오면서 기다란 창으로 온몸을 찌르기 시작한다. 죄인은 불길을 머금은 지옥 옥졸의 창이 자신의 몸을 사정없이 찌르고 뚫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계속 비명을 지르게 된다. 문제는 다른 지옥의 죄인들이 스스로의 업력으로 인해 이 비명소리를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듣게 된다는 것이다. 그 소리에 이끌려 규환지옥에 들어오는 이웃지옥의 죄인들 역시 이내 똑같이 창과 칼에 베이고 찔리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

전생의 죄업이 다하도록 한량없는 고통을 당하던 죄인은 수백 수천 년 후에 마침내 이 지옥을 벗어나 비척대며 도망가다가 어떤 마을을 발견하게 된다. 많은 인가와 강, 호수가 있는 마을이 좋아 보여서 죄인이 힘들게 그곳에 들어가면 어느 샌가 모든 집들이 문을 닫아건 채로 마을에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사람의 흔적을 볼 수 없는 그 마을에서 죄인을 맞이하는 것은 불길로 몸을 감싸고, 금강처럼 단단한 입과 날카로운 어금니를 가진 지옥의 벌레들뿐이다. 이 규환지옥의 지옥 교설 중에 눈에 띄는 것은 술을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권하는 것에까지 죄업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본인이 술을 많이 마시는 것도 문제이지만, 다른 이에게 술을 많이 먹게 하는 것 역시 술로 인한 죄업의 인(因)을 제공하는 것이라 하여 무척 엄하게 경계시키는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결국 이 규환지옥에서는 술을 권하여 마시게 함으로써 상대방이 술 취해 저지른 업의 과(果)까지 모두 감당해내야 하는 것이다.

김성순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연구원 shui1@naver.com
 

[1387 / 2017년 4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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