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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마음 평온하게 하는 언어 필요한 때

기자명 가섭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7.04.11 16:38
  • 수정 2017.04.11 16:40
  • 댓글 0

장미대선으로 ‘검증’언어 난무
잘못 들추는 5개 기준 지키면
상처 없는 인연 이어갈 수 있어

주말마다 새로운 포교사들을 맞이하기 위해 연수원을 오간다. 산꽃이 핀 길을 접어 들면 먼저 두엄냄새가 반긴다. 논밭에 뿌려진 거름의 짙은 냄새는 건강한 먹거리를 위한 농부들의 첫 번째 작업의 결과물이다. 두엄냄새는 봄비와 함께 대지에 스며들어 우리에게 싱싱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그런 벅찬 기대 때문인지 차창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싫지 않다.

며칠 뒤 곡우이니 농번기로 접어드는 절기다. 과수농사를 짓는 이들은 겨우내 웃자란 가지들을 정리한다. 묵은 나뭇가지치기는 작년보다 더 좋은 결실을 얻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새로운 가지를 성장시켜 더 많은 과실을 얻기 위함이다. 묵은 가지를 그냥 두면 열매의 결실보다는 나무 성장에 집중되어 과실이 부실해 지기 때문에 꼭 필요한 작업이다. 묵은 나뭇가지치기처럼 우리들의 생각도 적절한 때 정리를 해야 새로운 생각들이 올라올 수 있다. 생각뿐만이 아니라 말과 행동도 그러하다.

요즘 장미대선 때문인지 뉴스는 온통 후보들을 ‘검증’하는 언어들로 날카롭다. 반면에 검증이라는 명분으로 예전보다 더 심각한 가짜뉴스들이 넘쳐난다.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무작위로 확산되는 잘못된 정보들은 뉴스를 많이 접하는 젊은층보다 그렇지 못한 노년층에게 더 심한 문제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만큼 중요한 것이 사실에 입각한 주장이다. 부처님께서는 남의 잘못을 들춰낼 때 다섯 가지 기준을 갖추길 당부하셨다.

어느 날 붓다에게 지혜제일인 제자 사리불은 예를 갖추고 아뢰어 여쭈었다. “남의 잘못을 들춰내야 할 때, 어떻게 하면 마음을 평온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습니까?” 붓다께서 대답하시길 “남을 잘못을 들춰낼 때는 다음의 다섯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째는 들추려는 잘못이 사실인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둘째, 시기가 적절한지를 살펴야 한다. 셋째, 이치가 상대방이나 제 3자에게도 이익이 있어야 한다. 넷째, 부드럽고 조용하며 시끄럽게 하거나 까다롭지 않아야 한다. 다섯째, 사랑하는 마음을 꾸준히 유지하며 성내지 않아야 한다”고 하셨다.

‘잡아함’의 ‘거죄경(擧罪經)’ 말씀이다. 타인의 잘못을 말할 때는 사실이어야 하고 적절한 시기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결과이어야 한다. 또 번잡하지 않으며, 자비한 마음으로 화를 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지켜지면 우리는 어떠한 경우라도 상처가 남지 않는 인연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입장에서 본인이 이해한 만큼만 보고 말한다. 특히 권한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이런 오류를 범하기 쉽다. 

가섭 스님
조계종 포교부장
 

대략 1년 전의 일이다. 축하할 자리에 초대를 받고 행사장으로 가는 길에 평소 믿고 의지하던 어른께 인사차 들렸다. 그런데 그 어른은 “그 행사는 아무나 참석하는 건가”라는 핀잔 가득한 말 한마디로 오랜 세월 법의 스승으로 삼았던 믿음에 금이 갔다. 매우 당혹스러웠다. 신중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그 어른의 무심한 한마디. 경책하거나 잘못을 꾸짖는 말이 아닌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말 한마디가 준 아픔은 지금도 생생하다.  경북 예천에 가면 ‘언총(言塚)’이 있다고 한다. 말무덤인 셈이다. 굳지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나 누구에게 상처가 되는 말은 사발에 뱉어 담아 주둥개산에 묻는데, 그 뒤로 마을에 다툼이 없어지고 평온해졌다고 한다. 수많은 검증의 말이 홍수처럼 넘쳐나는 시절, 서로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언어들이 간절하다. 우리에겐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언총, 즉 말무덤이 필요한 때이다.     

 

[1387 / 2017년 4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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