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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한 송이 국화꽃은 온 우주가

한 사람이 깨달으면 전 군집이 깨달음 얻는다

어떤 이가 이 경전을 읽고 마음이 깨어난다면, 사실은 그가 무한한 과거에 쌓은 복의 힘이다.

우리는 고립된 개체 아닌 군집
인류라는 집단의 전생이 역사
역사 통해 인간 본성에 눈 떠
개체 깨달음도 더 쉽게 찾아와

어떤 한 위대한 인물이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라도 위대한 사상과 작품을 내는 것은 그 사회가 장구한 역사를 통해 비축한 문화의 힘이다. 

현대문명이, 아마존 밀림의 야노마뫼족과 아프리카 밀림의 부시맨과 다른 종류의, 영웅을 배출하는 것은 문화와 역사의 힘이다. 그 형성과정이 피와 눈물로 점철되어 있어도 그게 문화다. 고통의 탑 위에 쌓아올린 상륜부 황금 장신구이다. 민중이 몸으로 건설한 라사 조캉 사원과 포탈라궁 꼭대기에 위치한 황금 법륜이다.

크게는, 라스코 알타미라 동굴벽화와 크로마뇽인 무덤에서 발견되는 장신구들이, 변화(卞和)의 화씨벽과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거쳐, 티파니의 보석과 피카소의 게르니카로 발전한 것이다. 고기를 제공해 (인간의) 육신을 지탱하던 동굴벽화 속 사슴이, 어두운 동굴에서 나와 밝은 태양 아래서, 법륜을 좌우에서 수호하는 협시 사슴으로 바뀌어 진리를 제공하며 (인간의) 마음을 지탱한다. (그리하여 녹야원에서 무심히 뛰어놀던 사슴들이 구도자들의 마음동산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상나라 갑골문자가 광개토대왕비문을 스쳐, 이백과 두보를 거쳐, 휴정의 선시를 지나, 노신의 ‘광인일기’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과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와 최인호의 ‘길 없는 길’로 귀착한다.

오페라 라보엠에 나오는 수많은 가난한, 그래서 때로 얼어죽고 굶어죽은, 시인 화가들을 배출한 인류집단의 선행에 의한 것이다. 이게 ‘불어일불이불이종선근 이어무량불소 종제선근’의 의미이다.(바다와 육지에서 고기밥이 되고 객사하며 해상 실크로드와 육상 실크로드 상에서 스러져간 구도자들이 없었다면, 불교가 지금과 같은 감동을 자아내지 못한다.)
자유민주의의 역사 또한 그렇다. 미국 헌법을 기초한 이신론자 제퍼슨의 출현은 수만 년 동안 씨족장 부족장 왕정 아래서 ‘이게 과연 유일무이한 최선의 정치체제일까’ 하고 고민한 선현들의 사유와 투쟁의 결과물이다.

오페라 토스카는 세속적 신학적 왕정을 찬양하던 구세대의 음악에 대한 반란이다. 베토벤의 에로이카는 세속 황제 나폴레옹에게 헌정한 음악이고, 하이든의 천지창조는 하늘나라 황제 하나님에게 봉헌한 음악이다. 이런 음악을 거쳐서 음악은 권력의 시녀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의 노래로 비상한다. 말러의 대지의 노래(당나라 시인 이백 전기 왕유 맹호연의 시)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으로 날아오른다.

크로마뇽인 무덤에서 발견되는 뼈에 구멍을 뚫은 골피리로부터, 현대의 금속에 구멍을 뚫은 플루트로 발전한다. 귀로 듣는 음악이 마음으로 듣는 내적 운율로 발달한다. 소리 없는 음악으로 진화한다. 위대한 철학을 담은 저술을 읽고 사유할 때, 거대한 교향곡을 듣는 듯하다. 영양가 풍부한 주제에, 맛이 좋게 운율을 넣고, 씹기 좋게 장을 나누고, 소화하기 좋게 잘 짜여진 구조는 미증유의 추상적 식도락의 기쁨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런 일은 결코 한두 사람의 힘이 아니다. 까마득한 세월의 무수한 음악가들과 사상가들과 구도자들의 힘이다.

법은 시공간에 한때 머무른다. 법은 그 시공간에 사는 중생을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고해를 건너는 뗏목일 뿐이다: 지아설법 여벌유자. 시공이 변하면 과거의 법은 효용이 다한다. 비법으로 전락한다. 수겁을 살았어도 과거의 낙은 오늘 한줌 고를 당하지 못한다. 지난 수겁 동안 누린 천상의 낙도, 오늘 하루 지옥고를 당하지 못한다. 지혜로 법에 집착하지 마라. 법의 유효기간을 살펴라. 오늘의 법도 머무르지 않아 미래에는 비법이 되는데, 하물며 어찌 이미 비법이 된 과거의 법을 취하랴: 불응취법. 또 처음부터 법인 적이 없는 태생적 비법을 어찌 취하랴. 법이 아닌 것은 취하지 마라: 불응취비법. 법도 버리는데 하물며 법이 아닌 것이랴: 법상응사 하황비법(괴테가 말한 것처럼 ‘새로운 진리가 옛날의 오류보다 더 해로울 것은 없다’).

당신이 어떤 경전을 읽고 지혜가 생기고 마음이 열려 눈물을 흘리며 감동할 때, 지금의 당신을 있게 한 과거의 수많은 선인들이 같이 기뻐한다. ‘드디어 우리의 노력이 결실을 얻었노라’고.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하신 ‘여래가 멸한 후 후오백세에 계를 지니고 복을 닦는 자가 이 책에 감동받는 것은, 사실은 그가 과거 무량한 천만불소에 선근을 심었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은 바로 이런 뜻이다.

우리는 고립된 개체 같지만 사실은 군집이다. 공간적으로도 그렇고, 시간적으로도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연결된 군집이다. 산호와 개미와 벌은 군집생물이지만 개체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하지만 의식과 지성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 역시 군집생물임이 인간에게 드러난다. 이에 대한 자각이 대승불교이다. (자각은 다시 군집성을 강화한다. 칸트가 통찰했듯이 국제무역에 대한 자각이 세계평화를 증진했고, 다시 세계평화는 국제무역을 증진한다. 이렇게 세계는 하나가 되어간다.) 깨달음은 개인에게 국한되면 안 된다. 전 군집에 퍼져야 한다. 한 사람이 깨달음을 얻을 때 전 군집이 깨달음을 얻는다. 우리는 우리의 개체적인 전생을 보지 못하지만, 집단의 전생을 본다! 그게 역사이다. 역사를 통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눈이 뜨임으로써, 군집의 구성원으로서의, 개체에게 깨달음은 더 쉽게 찾아온다.

한 송이 국화꽃은 윤회를 하지 않지만 천둥은 비바람 속에서 울며 피워낸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지난 35억 년 동안을 울었다. 하물며 고귀한 인간이랴!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388호 / 2017년 4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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