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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오이디푸스 ①

기자명 김권태

운명을 거부하는 일이 곧 운명을 실현하는 일

오이디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베의 왕이다. 그는 왕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거라는 신탁으로 인해 태어나자마자 두 발이 쇠꼬챙이에 뚫린 채 산속에 버려졌다. 그러나 다행히 한 목동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건졌고, 자식이 없는 이웃나라의 왕에게 입양되어 왕자로 자랐다. 청년이 된 오이디푸스는 우연히 신탁을 물으러 갔다가 거기에서도 또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거라는 신탁을 받고 그 나라를 떠났다. 그는 방랑 중에 괴팍한 노인의 일행과 시비가 붙어 우연찮게 살인을 저지르고, 테베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수수께끼를 내고 인간을 잡아먹는 스핑크스를 물리쳤다. 스핑크스를 물리친 공로로 테베의 왕이 된 오이디푸스는 홀로 된 그 나라의 왕비와 결혼해 2남 2녀를 낳았다. 그러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역병이 도시에 번지고, 그것은 어떤 패륜아로 인해 신이 노한 탓이라는 신탁을 들었다. 패륜아를 찾아 반드시 벌하리라고 다짐한 오이디푸스가 찾아낸 것은 결혼하여 아이를 낳은 왕비가 실은 자신을 낳은 친모였고, 길에서 죽인 노인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이었다. 이를 안 왕비는 목을 매 자살을 하고,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두 눈을 찔러 참회하며 일생을 방랑하다 죽었다.

진실 외면 않고 실체와 대면한
오이디푸스는 운명 수용한 영웅
‘부은 발’은 자신의 정체성 상징
한 단계 성장하는 인간의 서사

고대 그리스 비극인 ‘오이디푸스 왕’이다. 오이디푸스(Oedipus)는 ‘부은(oedi) 발(pus)’, 혹은 ‘발(pous)을 안다(oida)’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직립의 인간에게 ‘발’은 자신의 정체성을 상징하며, 또 성장을 의미한다. 오이디푸스의 부은 발은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불완전한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해나가는 우리 내면의 모습이다. 발을 알아 버린 자 오이디푸스는 어두운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실체와 대면해 당당히 운명을 수용하는 영웅의 상징이다.

대개 영웅 신화는 ‘고난→조력자와의 만남→귀환’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고통스런 ‘통과의례’를 거쳐 한 단계 도약하는 인간의 성장 서사다. 부모와 애정 대상과 고향과 분리되어 한 인간으로 독립되고 개별화되는 전 생애의 역사다.

조력자는 우리가 세상에서 홀로서기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해준다. 우리는 걷기, 말하기, 어울리기, 학습하기 등을 숙달해가며 세상에 홀로 설 수 있는 아이템을 하나씩 확보해나간다. 오이디푸스는 이 모든 홀로서기의 원천인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있는 자이다.

그가 신탁을 받은 곳은 태양의 신 아폴론의 신전이다. 그곳은 ‘대지의 자궁’이라는 뜻인 델포이 신전이다. 신전 중앙에는 ‘옴팔로스’라는 둥근돌이 세워져 있다. 그곳은 제우스가 서로 반대방향으로 날린 두 마리 독수리가 세상을 돌아 한 자리에서 만난 세상의 중심이다. 그래서 옴팔로스는 ‘세계의 배꼽’이라는 뜻이다.

신전 문 위에는 “그노티 세아우톤”, 즉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경구가 새겨져 있다. 모든 것을 안다고 자만하는 네가 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앎만이 오직 진실이라는 것이다. 마치 세상 모든 것은 무상한 것이며, 이 무상함이야말로 영원히 변치 않는 진실이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그곳은 무지(無知)의 지(知)만이 참다운 지(知)가 되고, 무상(無常)과 무아(無我)만이 영원(永遠)이 되는 역설의 자리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각이 나를 해체하고 고통 속에서 나를 구원한다.

오이디푸스는 살아가는 것이 곧 죽어가는 과정이며, 떠나는 일이 곧 돌아오는 일이라는 진실을 획득했다. 운명을 거부하는 일이 실은 운명을 실현하는 일이며, 내가 찾는 것이 이미 내 안에 있음을 발견했다.  

“종일 봄을 찾아 헤맸으나 봄은 얻지 못하고,/ 짚신 발로 언덕 위 구름 속까지 서성였네./ 돌아오며 때마침 매화나무 아래를 지나노니,/ 봄은 이미 매화가지 위에 가득 걸려있었구나.(盡日尋春不得春 芒鞋踏遍?頭雲 還來適過梅花下 春在枝頭已十分)”

그는 두 눈을 잃고, 비로소 새로운 봄을 보았다.

김권태 동대부중 교법사 munsachul@naver.com        

[1389호 / 2017년 4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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