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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여윤구·이민영 작가

기자명 김영욱

모녀, 불가에 어우러지다

▲ ‘죽림정사 대웅전 1250나한’.

봄비가 내린다. 봄비 소리에 백곡이 잠에서 깬다. 그러고 보니 곡우(穀雨)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고 하는데, 연이은 비 소식에 올해는 풍년일 듯하다. 부정한 사람은 볼 수 없다던 볍씨는 한 해 풍년을 기원하는 농부의 손에 담겨져 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본래 현상을 훼손하지 않고
예배 대상으로서 부처 구현

향 피어오르듯 아지랑이 오르는 골목 지나 작은 건물들 앞에 이르렀다. 길 찾아 헤매는 손님 탓에 이민영 작가가 밝은 미소로 마중 나왔다. 좇아 올라간 작업실 안에 있던 여윤구 작가가 살가운 인사를 건넨다. 작업 중인 불상과 여러 좌대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완성된 작품은 자기 절집 찾아가기 위해 하얀 포장재로 감싸여 있다. 으슬한 봄비 기운 떨어뜨리고자 끓여준 황차(黃茶)는 맑고 담백했다.

단야불교미술원은 단야 여윤구(문화재수리기능 제3315호) 작가가 운영하는 작업실이다. 본래 불자(佛者)는 아니었다. 제부가 만든 불상의 개안(開眼)을 맡게 된 일을 계기로 불자의 길을 걸어왔다. 한때 노동운동의 고되고 기나긴 투쟁의 삶도 선림원에 들어간 이후 참선을 통해 평정된 삶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일상에서의 혼란과 우울도 불상의 채색으로 승화시키는 즐거움에 매료되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한 해, 한 해 다작을 하면서도 참선을 통한 마음가짐, 즉 ‘심(心)’의 정도(正道)를 걷고자 노력한다고 말한다.

어느덧 20년의 공력이다. 그는 ‘봉림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 제980호)’을 개안하고 좌대를 시대 양식에 맞게 수복(修復)하는 굵직한 불사(佛事)에 참여하였다. 이외에도 ‘선종사 종틀 단청’, ‘대원사 대웅전 목각신중탱화’ 등 크고 작은 사찰들의 의뢰가 있었다. 본래의 현상을 훼손하지 않고 경건한 예배대상으로서의 부처를 구현한다는 것이 작가의 신념이다. 신념에 의한 자아 성숙의 위안은 절집을 방문하는 불자에게도 전해진다는 소신이 담겨 있는 것이다.

단야의 작업이 흥미롭게 다가온 것은 목조 불상 또는 좌대에 불교적 색채를 가미하는 일련의 과정 때문이다. 종이나 삼베, 그리고 비단에 그려지는 평면성을 띤 불화에서 느낄 수 없는 입체적인 조각에 채색하는 느낌은 어떠할까. 나의 호기심에 작가는 말했다.

“단청과 탱화의 중간 단계라고 본다. 다만 천차만별의 형상에 맞도록 저마다의 선묘와 채색을 상상하는 매력을 지닌 작업이다.”

▲ ‘대원사 대웅전 목각신중탱화’.

사실 두 작가를 선정하게 된 동인(動因)은 비단 이 뿐만이 아니다. 이민영 작가가 참여한 ‘죽림정사 대웅전 1250나한’이 바로 그것이다. 이민영은 여윤구 작가의 여식이다. 모친의 작업을 도와주던 어린 초등학생이 어느덧 성년이 되어 묵묵히 모친을 이어나갈 만큼 성장했다. 대학에서 전통회화와 수묵화를 전공한 이후에 전통 안료의 채색기법과 개금에 관한 금박 사용기법을 공부하고 있다. 그러한 까닭에 ‘죽림정사 대웅전 1250나한’에는 다채로운 채색감과 참신한 구성이 엿보인다.

일천 이백 오십분의 나한상은 제각기 다른 복식과 지물(持物)을 보여준다. 이민영은 몇몇 지우(知友)들과 함께 뜻을 모아 작업했다. 하여 자유로운 나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통적인 불상의 지물에서 보이지 않는 현재의 청년작가들이 그려낸 새로운 도상이다. 이는 불교미술에 입문한 올깨끼와 늦깨끼의 손이 어우러진 불국토를 보여준다.

여윤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삶의 행복을 찾기 위해 수도와 참선의 길로 들어선다. 젊은 시절부터 내리 치달려온 고단한 삶을 불가의 깨달음으로 승화시키기 위함이다. 따라서 단야불교미술원은 젊은 이민영이 이어나갈 것이다. 벌써 5년 전이다. 국회의사당 로비에 걸린 그의 수묵화를 본 적 있다. 나즈막한 산과 한적한 동네를 뒤로 하고 서 계신 할머니를 그린 수묵화다. 하얀 여백과 먹의 농담 효과에 의한 느낌은 맑고 담백했다. 그리고 지금 그가 담당한 좌대의 연꽃을 보았다. 청아하고 산뜻하다. 여윤구 작가의 손에 의해 올곧은 성품과 기상을 이어받은 작은 볍씨가 성장하여 보여줄 이민영 작가만의 풍성한 불국토가 기대된다.

따스한 봄기운의 여운 간직한 청량한 여름이 다가오면, 한적한 산기슭의 절집으로 마실 나갈 생각이 간절해진다. 정적 가득한 사찰 전각의 불상들이 어떤 미소로 반겨줄까 하는 설렘이 문득 드는 만남이었다.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389호 / 2017년 4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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